"태국에서 꼭 먹어야 할 과일은 뭘까요? 1위는 망고스틴. 2위 망고. 3위가 몽키 바나나!"
태국에서 맞이하는 첫날, 엄마와 나는 조식으로 먹은 파인애플이 순위에 없음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럼 도대체 다른 과일들은 얼마나 맛있는 거야?"
그날 밤 야시장에서 산 망고를 먹으며 엄마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 인정! 한국에서 먹은 냉동 망고나 망고 주스의 맛으로 태국 망고의 맛을 상상하려 했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지고. 태국의 망고는 정말이지 너무나 맛있다!
하지만 그런 망고보다 먼저 먹게 된 과일이 있었으니 바로 몽키 바나나.
"자, 이제 수상 시장에 도착했습니다. 다들 몽키 바나나 한 손씩 사드셔 보세요."
롱테일 보트를 타고 강을 건너 도착하게 된 수상 시장은 그냥 패키지여행에 한 줄 추가하려고 넣은 여행사의 속셈이었는지 사실 볼 것도 없었다. 여느 나라에서처럼 철길이나 강둑에 위태롭게 삶을 비집고 살아가는 빈민촌 사람들이 있었고 관광객이 탄 보트에 가까이 와 과일이나 수공예품 몇 개를 파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무슨 불만이 있으랴. 몽키 바나나 한 손을 천 원에 팔고 있는데.
우리가 탄 보트에 가까이 노를 저어 와 몽키 바나나를 팔던 태국인 아저씨
끝내주게 달콤한 몽키 바나나
몽키 바나나는 평소 먹던 필리핀 바나나와는 달리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밖에는 안 되었다. 마트에서 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먹어본 적은 없었다. 아직 태국의 망고를 영접하기 전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갈망했던 허니버터 칩과 흑당 버블티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후 내 마음속에는 하늘 아래 새로운 맛은 없다는 깊은 좌절감이 있었다. 바나나가 바나나 맛이겠지 뭐, 하는 생각을 갖고 껍질을 벗기는데,
보라, 저 영롱한 빛깔을. 얇은 겉껍질 속 숨겨진 바나나의 속살은... 노랗다!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라고 주장하던 바나나 우유 업체의 상품명과는 달리 몽키 바나나는 정말 샛노란 색을 띠고 있었다. 살짝 한 입 베어 물으니, (만약 치아에 미각이 있다면) 치아 끝에서 적셔오는 그 달달함에 패키지여행 광고에 낚였구나, 새벽 사원에 간다더니 그저 배를 타고 지나갈 뿐이잖아, 하며 분노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그렇게 몇 개를 먹고 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입안에 몽키 바나나를 채워 넣고 있는데, 순간 태국인 가이드가 눈에 들어왔다.
태국은 자국민들의 삶을 위해 현지 여행사에 자국민 가이드를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한다. 그래서 태국 여행에는 한국인 가이드가 현지인 가이드(세컨드 가이드)와 팀을 이뤄 활동한다. 특히 사원이나 공항 등 특정한 장소에는 아예 한국인 가이드의 출입을 금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세컨드 가이드로 고용된 현지인 가이드는 대체로 한국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 사원을 방문하는 오전 일정의 경우 한국어가 가능한 현지인 가이드가 이 시간만을 위해 따로 배치되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몽키 바나나를 사서 정신없이 먹고 있는 이때, 혼자 앞만 보고 앉아 있던 이 태국인 가이드에게 눈길이 갔다. 이것이 그 후 몇 날 며칠을 신경 쓰이게 한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콩 한쪽도 나눠 먹는 한국인의 특성이 왜 그때 그렇게 발현되었던 걸까. 나는 혼자 먹고 있던 것이 미안해 바나나 몇 개를 뜯어 그 가이드에게 드렸다.
"이것 좀 드세요."
나름 두 손을 모아 한 움큼 가득 담았다 생각하고 그의 손에 건네주는데, 낱개로 뜯겨나간 바나나 몇 개의 모양이 왜 그렇게 볼품없어 보이던지. 아, 괜한 짓 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러고 나서 왓포 사원으로 향해 관광을 하는데 바나나를 먹는 그의 모습은 결코 볼 수 없었고, 나 역시 그의 눈을 제대로 마주칠 수 없었다.
식민지 경험이 없는 태국인들은 자국의 역사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자존심도 매우 세니 혹시라도 그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삼가라는 한국인 가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혹시 내가 태국인 가이드에게 바나나를 준 게 그들에게 기분 나쁜 일이었을까.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혹시 그는 내가 자신을 동정한다고 느꼈던 게 아닐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남의 운명에 관여한 사람은 자신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연민이라는 것은 양날을 가졌답니다. 연민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손을 떼고, 특히 마음을 떼야합니다. (...)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연민은 무관심보다도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초조한 마음>은 선의에서 시작한 연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인생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리가 불편한 에디트에게 찰나의 기쁨이라도, 한줄기 희망이라도 보여주고자 했던 호프밀러의 연민은 결과적으로 에디트를 죽게 한다. 그렇다면 호프밀러의 연민은 나쁜 것인가.
인간관계에서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받아들이는 쪽에서 그 뜻을 곡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어떻게 이걸 저렇게 받아들이지? 하는 마음이 들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선 또 그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사정과 받는 사람의 오해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면 상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 무엇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여기서 '오해하지 않을 의무'에 대해서 생각한다. 말하는 입장에서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고 요구하는 '오해받지 않을 권리'가 아닌 받는 입장에서 서로를 위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로써 말이다. 그러니까 에디트 입장에서도 호프밀러의 선의를 왜곡하지 않을 의무가 있었다는 얘기이다.
나는 남편과 만난 지 반년 만에 결혼했다. 결혼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모두 경악했다. '나 소개팅하러 가!'라는 문자 후 한 달도 안 돼 '나 결혼해'라고 문자를 보냈으니 그럴만하다. 친구들은 '이 남자다!'하고 결혼을 확신한 순간이 있었느냐고 물어왔다. 내 경우는... 있었다.
남편과 세 번째로 만나 데이트를 할 때, 나는 그에게 정말이지 심각한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반대의 경우였다면 나는 이성으로서 심한 모멸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큰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말을 뱉는 순간 당황한 나와는 달리 그는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왜 내게 화를 내지 않느냐고 내가 물어야 할 정도였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난 사람의 의도를 봐. 당신이 내게 나쁜 말을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전혀 기분 나쁠 일이 없어."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말하는 '이 사람이다!' 하는 그 기적 같은 순간이.
그를 만나기 전의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두려워했다. 어린 시절 나는 내가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내가 암만 작은 소리로 속삭여도 사람들이 크게 부풀려 듣지 않을까를 염려하게 되었다.
누군가와 절대 같이 살지 못할 거야, 세상에 나를 온전히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라고 믿던 내가 그와 함께 한 올 한 해를 뒤돌아 보았을 때, 나다운 모습으로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살아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오해하지 않으니 관계가 부담스럽지 않다. 게다가 남편 본인도 남에게 상처 받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결혼 후 그 날 일에 대해 얘기하자 남편은 말했다.
"글쎄,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상처 받을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 내게 나쁜 마음이 있는 사람의 말이라면 새겨들을 이유가 없고, 나쁜 의도가 없는 사람의 말이라면 거기에 내가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으니까."
태국인 가이드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나 역시 그의 태도를 오해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그는 단지 가이드로 일하는 시간에는 음식을 먹으면 안 됐기 때문에 먹지 않았을 수 있다. 오히려 바나나를 건네던 한국인의 따뜻한 정을 느끼고 내게 고마워했을 수도 있다.
내 선한 의도를 그가 잘 못 받아들였어, 하고 오해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을 의무가 내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에도 그 일이 계속 생각나는 건 나의 의도에 정말 나쁜 마음은 없었나 하는 의문이 남아서일 것이다.
분명 한국인 관광객 중에서도 과일을 사 먹지 않은 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그 태국인 가이드에게만 신경이 쓰였던 건 우리나라보다 경제적 수준이 낮은 태국인에 대한 연민이 거기에 조금은 들어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지금까지도 떳떳하지 못하고 양심에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에디트의 죽음에 대해 호프밀러의 책임은 정말 없는 걸까.
호프밀러의 연민 속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그것도 나보다 신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고귀하고 상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귀족 집안의 딸에게 자신이 그렇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음에 대한 우월감이 들어있지는 않았었나.
앤디 워홀은 우리가 정말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치과 의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처럼 호텔 청소원에게도 어떤 것을 요청할 때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상식선의 도덕성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갑질이 잘 못 되었다는 명확한 의식이 있다. 하지만 연민에 대해서도 그 정도의 자각이 있을까.
생각할수록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외국에 와서도 인간 관계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몇 가지 기본 원칙은 명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