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 몇 분을 머리 굴린 후에야 떠올린 '잘 사는' 나의 모습이란 기껏해야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모습이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가지고.
"여전히 타인의 인정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마음 치료사인 형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물, 곧 생산성. 나는 생산적인 삶을 원했다.
이제는 땅 표면을 뚫고 알을 깨는 고통과 떨림보다는
화려하게 핀 꽃을 보고 싶었다. 열매 맺고 싶었다.
새해의 첫 미션으로 형님은 내게 못 그려도 좋으니 매일 그림을 그려보라 했다.
점 하나를 찍어도 좋으니 무엇이든 그냥 한 번 해보라고 했다.
흰 도화지 앞에 서는 두려움을 회피하지 말고 결과에 얽매이지 말고 내 몸을 일으키는 한 해를 시작해보자 했다.
점 하나. 단지 점 하나. 나는 그런 마음으로 책상에 앉았다.
그런 날이 일주일에 두 번이 되었다가 세 번이 되었다.
형님은 그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말했다.
내 몸에도 나무가 자란다
사랑은 어떤 색일까
눈물도 바스락바스락
청포도에서 태어난 청개구리
"가영 씨가 원하는 것은 생산성이 아니라 생명력이었군요."
일련의 내 그림을 보아온 형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 순간 나는 그동안 내게 결핍되어 있던 게 무엇인지 제대로 보게 되었다.
"자신의 삶이 메마르다고 느끼나요?"
별 것 아닌 그 질문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도 바스락바스락>이란 그림에서 나는 눈물조차 낙엽처럼 바스러지는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설레고 싶었고 사랑이 하고 싶었으며 <사랑은 어떤 색일까> 궁금했다.
<내 몸에도 나무가 자란다>에서 내 안에 있는 생명력을 느꼈고 <청포도에서 태어난 청개구리> 같은 것도 상상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생산적인 삶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삶임을 'Just do it'이란 마음으로 그린 그림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형님은 수십 장의 '감정 카드'를 내게 건넸다.
'지금'의 내 감정을 나타내 주는 단어를 선택해 보라 하였다.
오늘 아침엔 알람이 울리자마자 재깍 일어났다.
의자에 몸을 깊이 누이고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는 붓을 잡고 그림을 그렸다.
'사랑은 나비처럼'이라는 문구가 생각났고 파스텔 톤 포스트잇에 그것을 크게 써놓았다.
'사랑은 나비인가 봐'와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란 노래가 생각났고, 그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받아 적었다.
새 노트에 '나비인 줄 알았더니 벌이었기에 가시를 세웠다'라는 문장과 함께 장미꽃을 그려 넣었다. 꽤 그럴싸한 문장이라 생각했다.
완벽한 아침이었다.
그래서 내가 뽑은 감정 카드는 '뿌듯하다', '힘나다', '자신만만하다', '기대된다'였다. 형님은 이 단어들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뿌듯하다', '힘나다', '자신만만하다'가 하나, '기대된다'가 또 하나였다.
"전자의 단어들은 무언가를 통해 얻게 되는 감정들이죠. 오늘이 다른 날과 달리 힘차고 뿌듯했던 이유는 일찍 일어나 생산성 있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뿐이죠. 하지만 '기대된다'는 감정은 그것과는 상관이 없어요. 지금 무엇이 없어도, 무언가 이루지 못했더라도 '있을 것을', 아니 이미 '있음'을 인식하는 거죠. <더 해빙 The Having> 같은 것이죠."
형님은 더불어 내가 정말 기쁠 때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내가 기쁠 때. 보통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또는 빳빳한 새 노트를 펼쳐 무언가를 적었다.
"만약 내가 지금 기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 중이면 어떡해요? 막상 끄적이고 싶은데 새 노트가 없으면 어쩌죠? 그래도 그 기쁨이 유지되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부재중인 엄마의 휴대폰, 적재적소에 필요한 것이 없을 때의 불쾌감이 한껏 들떴던 마음을 빠르게 식게 했기 때문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는 쉬워요. 하지만 긍정적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고 유지하는 데도 우리는 익숙해져야 해요.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질 수 있도록 감정을 의식적으로 끌어올릴 장치를 찾는 거죠."
나는 내가 기쁠 때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을 적어보았다.
내가 기쁠 때 하는 일들
형님은 그중 두 가지를 골라냈다.
예쁜 포스트잇에 메모를 하는 것이나 예쁜 물건을 모으는 것은 또다시 외부적인 것에 기대는 것이었다. 포스트잇이 없어도, 마음에 드는 소지품이 없어도 '나' 그 자체로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또 우울의 늪으로 추락하려 할 때 의식적으로 그것들로 하여금 감정을 일으켜 세울 수 있고, 나를 살릴 수 있어야 했다.
나는 기쁠 때 무의식적으로 노래를 부르며 몸을 움직였다(그루브, 막춤). 이제는 단지 그 행동을 함으로써 생명력을 느끼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잘 사는' 방법이었다.
올해는 내게 꽃피우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얻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노래하고 춤 춤으로써 내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음을 알았다.
올해는 그렇게 살아보려 한다. 춤추고 노래하는 해. 그런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