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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 Mar 29. 2020

주말마다 리틀포레스트

요즘의 일상

환경과 나

 졸업 후에도 학교 근처에 살다가 이천에 있는 본가에 들어온지 3개월, 꽤나 많은 것이 바뀌었다. 통근 경로, 주말의 모습, 취미의 양상까지. 서울에서는 평일에 집 근처 개천을 뛰어다니곤 했었는데 본가 근처에는 마땅히 뛰어다닐 곳이 없다. 또, 늘어난 통근시간으로 인해 자연스레 평일 운동이 줄어들어 나의 운동은 주말마다 설봉산 등산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중교통이 편리하게 잘 되어있어 딱히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서울과 달리, 본가가 위치한 이곳은 운전을 못하면 불편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라 자차가 없음에도 엄마차 찬스!를 통해 운전을 비교적 능숙하게 하게 되었다. 덕분에 주말마다 예쁜 교외 카페를 가는게 또 다른 취미가 되었다. 

 이런걸 보면 '나'라는 사람의 특성은 그대로지만 그 특성을 발현시키는데에는 환경이 많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사람마다 타고난 특성은 있지만 환경에 따라 발현되는 양상이 달라지는 것 같달까. 작년 1년 동안의 변화보다, 본가에 들어온 후 3개월 간의 변화가 더 큰 것 같다고 느낄 정도면 말 다했다. 현재 몸을 담고 있는 회사의 본사가 제주도인지라 언젠가는 제주 근무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 덕분에 제주에 가서는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배울까 조금 궁금해지기도 했다. 취미에 돈을 쓸 생각이 있다면 골프, 스킨스쿠버, 승마 중 하나를 배우고, 그렇지 않다면 올레길투어, 제주도 자전거 일주, 한라산 등반 중 하나를 하지 않을까. 물론 제주도 명소와 예쁜 카페 투어는 기본으로 두고 가면서 말이다.


자연과 감성

 삼 주째 일주일 간격으로 등산을 가다보니 갈때마다 산의 모습이 달라지는게 눈에 띈다. 올망올망 고운 꽃망울을 수줍게 감추고만 있던 3주 전과 달리, 저번주부터는 성질이 급한 꽃들이 종종 눈에 띄었고, 이번주에는 진달래가 이곳 저곳에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다음주 쯤에는 봄을 맞아 만개한 꽃들이 화사하게 나를 반겨줄것만 같다.

 내가 다니는 설봉산은 뭔가 정겹고 편안하다. 편안한 산이라는게 가장 맞는 표현 같다. 산세가 가파르지도 않고, 절경이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평범하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 편안함같은 것을 느끼기엔 정말 충분한 곳이다.

 서울에서 개천을 뛸 때도 느끼던 거지만, 자연 속에서 사람은 감성을 일깨울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시인'이란 사람과 사물, 그리고 환경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도시나 문명발전을 찬양하는 시보다 자연을 예찬하는 시가 훨씬 많은 것만 봐도 자연이 사람의 감성을 일깨우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전에 영재발굴단인가, 산에 가족들과 함께 살던 꼬마시인이 기억나는데 그 친구가 아름다운 시어로 세상을 수놓을 수 있었던 것도 좋든 싫든 자연스레 자연과 벗삼은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곤 한다.


주말마다 리틀포레스트

 매일매일 서울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지만, 본가에서는 문을 열면 논밭이 보인다. 요리하다 파가 필요하면 앞에 텃밭에서 파를 뜯어오고, 봄이면 엄마가 쑥이며 냉이를 캐온다. 봄향 가득한 냉이 된장국에 안은 부드럽고 테두리 부분은 바삭한 미나리전을 먹을 때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것 같다.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것도 어렵지 않아 굳이 캠핑을 떠날 이유가 없다. 리틀포레스트를 본 적은 없지만 주말마다 리틀포레스트를 찍는 느낌이 든다. 주중엔 빌딩숲에서 일을 하지만, 주말엔 진짜 시골에서 일상을 보낸다. 도시와 시골 감성이 일상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뒤섞이는 이 느낌이 신선하면서도 좋다.  

 하지만 늘 리틀포레스트만 찍을 순 없는 법. 이번주 불금에서는 치킨을 시켜먹었다. 서울에선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때,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같은 배달앱이 필수다. 주소를 입력하고 모바일 결제로 결제도 끝. 하지만 '읍면리' 단위에 위치한 본가에서는 배달앱에 등록된 업소가 거의 없다. 배달이 안되는 음식 종류도 많고, 그 흔하다는 배달음식 치킨조차 배달되는 곳이 두 곳뿐. 그것도 무조건 유선전화를 통해서. 전화를 해서 주소를 떠듬떠듬 말하는데, 주문받는 치킨집에서도 거의 동네 장사다 보니 이렇게 주소를 떠듬떠듬 말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 뉘앙스다. "네? 어디시라고요?" 하시다 주소를 다 듣더니 동생 이름을 말하며 "아 OO이네요?" 하신다. 진작 동생 이름을 말할걸. 이런 시골감성이 아직은 낯설고 그저 재밌는걸 보아하니 내가 서울에서 오래 살긴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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