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은 쉽게 공감하지 못할수도 있겠지만, 육지에서 나고 자란 나로써는 제주는 일상과 비일상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그 어느 지방보다도 이국적이고(야자수가 자란다는 것만으로이미 충분히), 특유의 문화나 방언,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경관 덕분에 이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역할을 하는 제주도.
그런 제주도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일상을 살고 있다가도, 언제든지비일상의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바다가 지척이고 차를 타고 5분-10분만 나가면 관광객들이 자주가는 관광명소가 있으니 말이다.점심시간에 바다뷰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보면 나는 지금 여행을 와있어서 왠지 회사에는 돌아가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착각마저 느껴지곤 한다.
제주의 한 파인다이닝, 에르미타주는 그런 제주의 지역적 특색을 음식에 담뿍 담은 곳이다. 서귀포시의 한적한 주택 골목가, 이런 곳에 파인다이닝이 있을 거라곤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에르미타주.
매달 미리 예약을 받고, 하루에 많은 팀을 받지 않기 때문에 예약은 조금 힘들지만, 예약만 성공한다면 한껏 여유롭게 제주를 음미해볼 수 있다.
파인다이닝은 음식의 맛 외에도 레스토랑의 분위기, 셰프의 접객, 그 위치 등 다양한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일정 수준을 이루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에르미타주는 호텔 다이닝의 화려한 느낌이나 서울 강남에 있는 정통 프렌치 느낌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정성이 담겨 있으면서도 편안하고, 여유로우며, 조금 더 생동감이 넘치며 실험적이다. (다만, 맛 자체의 빼어남을 찾는다면 에르미타주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음식은 그 지역의 기후나 자연환경부터, 문화나 철학까지도 담고 있다. 애월의 유정란, 말고기, 제주 하귤 등 제철의 맛이 어우러진 요리들을 계절마다 다르게 구성하여 제공하는 에르미타주.제주도민으로 와도, 여행객으로 와도 요리에 담긴 제주의 맛을 저마다의 시각에서 풀어내볼 수 있다.
에르미타주는 제철 재료라는 제주의 '일상'을이국적으로 재해석하고 풀어내며 '비일상'을 담아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요리뿐만 아니라 경험을 제공한다. 셰프의 설명을 귀기울여 듣고, 음식을 음미해본다.원재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택한 조리법을 그려본다. 그리고나는 잠시 제주도 북동쪽에 갔다가, 또 서쪽에 갔다가, 제주도 푸른 바다를 보기도 하고, 저 멀리 이탈리아에 가기도 한다.
어느 주말의 여유로운 저녁, 나는 두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그렇게 '일상'과 '비일상'으로의 여행을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