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승민 Jun 05. 2020

'조만간'의 길이는 얼마일까


조만간은 일상 대화 중 미래의 특정 시간을 확정하여 지정할 수 없을 때,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조만간 밥 한 번 먹자’와 같이 쓰이죠. 그런데 이 말은 굉장히 두루뭉술합니다. 정확히 언제쯤 밥을 먹자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조만간이 의미하는 시간은 얼마일까요.


주위에 물었더니 답변은 다양했습니다. ‘밀물을 뜻하는 조만(潮滿)이기 때문에 하루 내의 짧은 시간이다’ ‘큰 숫자인 조만(兆萬)이라서 굉장히 긴 시간을 말한다’ ‘불교에서 유래한 말로 억겁의 세월을 일컫는다’ 등이 있었습니다. 


실제 의미는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한자로 쓰면 조만간(早晩間)으로, 뜻을 그대로 풀면 ‘이르든 늦든 간에’ 정도가 됩니다. 어원대로라면 시간을 나타낸다기보다는 '금방이면 좋고 나중에라도 언젠가는 해야 하는' 당위와 필요성을 나타내는 말에 가깝습니다.  


다만 국립국어원에서는 “한자의 뜻이 우리말에서 거의 사라져서 쓰이지 않을 경우 통용되는 의미만 사용한다”며 조만간을 ‘앞으로 곧’으로 정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쓰니까 원래 의미보다는 ‘머지 않은 시간’으로 정한다는 얘기죠. 


그럼 통용되는 시간은 어느정도 일까요? 조만간의 길이를 얼마로 생각하는지에 대한 설문조사가 있었습니다. ‘3일~1주’라는 답변이 27%로 가장 많았습니다. ‘1~2주’ ‘1~3일’이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조만간을 길어야 2주 미만의 시간으로 여긴다는 얘기입니다.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해야하는 일'이라는 원래 의미이든, '머잖아 곧'이라는 바뀐 의미이든, 조만간은 정말 그 뜻으로 쓰이고 있을까요? 


솔직해지자면 우리는 모두 조만간을 당위나 짧은시간의 의미로 쓰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기약하지 못할 긴 시간이라는 속 뜻을 감추고 ‘짧은 척’ 하고 싶을 때 조만간을 쓰곤 합니다. 혹자는 “조만간 보자는 말의 속 뜻은 영영 안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암묵적 동의하에 이뤄지는 면피성 말이라는 거죠.

 

물론 이는 서로의 체면을 세워주는 유용한 처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새 습관적으로 중요한 인연과의 만남마저 조만간으로 미뤄버리지는 않았을까요. 코로나로 조만간을 자주 쓰게 되는 요즘입니다. 이럴때 조만간의 본래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와 삼촌. 당신들이 부럽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