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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승민 Nov 23. 2021

민지는 왜 꼰대가 싫을까

최근 직장에서 주요 꼰대층으로 여겨지는 50~60년대생은 이들은 단군 이래 가장 자존감이 높은 세대라고들 합니다. 이들은 한국전쟁이라는 격변을 정통으로 맞은 30~40년대생의 터울 진 동생이나 자녀 정도 됩니다. 영화 '국제전쟁' 세대를 부모 또는 형/누나로 둔 세대라고 보면 됩니다. 


이들은 그 부모와 형/누나가 당장의 생존과 생계에 몰입해야 했던 것과 달리 그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한 장기적인 사회적 계층 상승을 노렸습니다. 드라마에서 어머니가 국밥을 팔고, 큰 누나가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공부 열심히 해서 법대에 들어가는 막내동생 같은 거죠. 


이 환경에서 가족의 희망은 국밥집과 공장이 아니라 동생의 검사 되기 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비해 양육자인 국밥집 어머니와 공장 다니는 누나는 동생보다 교육 수준이 낮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양육자로부터 듣는 지시라고 해봐야 "밥 챙겨 먹어라" 정도고 "믿는다"는 말은 귀에 따갑게 듣고 자랍니다. 


실제로 이 세대는 나름의 성공 스토리를 써갑니다. 집안의 기대에 부응해 대학을 나왔고, 대학에선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 몸 바쳤으며, 쉽게 취직했고, 어쩌다 들어간 회사는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그러다보니 회사에서 많은 경험을 쌓아봤고, 마침 윗사람들은 IMF에 잘려나가 승진도 빨리 한 편입니다. 


자라나는동안 누린 능동감과 가족들의 신뢰, 제대로 된 고등교육의 첫 세대로서 느낀 지적우월감, 실제 사회에서 경험한 성공. 이 세대가 자존감이 충만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자, 그럼 MZ세대는 어떨까요. MZ 세대의 범위가 워낙 넓어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대충 이들은 앞의 세대를 부모로 둔 세대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태어나자 마자 넘사벽이 앞에 있습니다. 부모는 민지보다 공부를 잘했고 더 좋은 대학을 나왔습니다. 부모는 직장도 괜찮고 소득도 괜찮은데, 민지는 취직도 어렵고 지금 버는 돈을 봐선 부모만큼 벌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부모는 학생운동 하면서 감방도 갔다왔다는데 민지는 공부하느라 사회 참여 경험도 적습니다. 경제성장률을 봐도 부모세대를 쉽게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 것 같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부모처럼 계층 이동을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민지가 불안했던지 50~60년대생은 그들 자신은 겪어보지 않은걸 아이들에게 강요합니다. 학생일 때는 그들의 학업 스케줄을 관리하고 어떤 시간에 어떤 경로로 움직일지를 정해줍니다. 어떤 대학에 가서 어떤 전공을 하고 어떤 회사에 취직해야 할지도 코칭해주죠. 능동감을 느낄 만한 요소가 적습니다. 


최근 MZ의 꼰대에 대한 불만은 이렇게 누적된 불만이 사춘기를 지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에 터져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필 사회생활의 지배층은 능동감과 자존감이 충만한 세대고,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은 능동감과 자존감이 바닥입니다. 위에서는 자신의 방식에 확신이 있는 만큼 그것을 강요하게 되고, 아래에서는 안 그래도 어릴때 맘껏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어른이 돼서도 간섭을 받게 생겼습니다. 결국 이때쯤 되자 더이상 꼰대가 하는 말도 싫고 방식도 싫고 다 싫은 거죠. 


그래서 간혹 이들은 굉장히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고 요구하지만, 때때로 그 논리가 빈약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후 관계가 꼰대가 잘못해서 그들의 행동과 방식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싫어서 비판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즉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꼰대다'가 아니라 '꼰대이기 때문에 비합리적이다'가 되는 거죠. 


이렇게 선후관계를 바꿔 인식을 앞에 둘 때는 그 대상집단을 싸잡아서 판단해버리면서 부작용을 낳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종차별이나 종교차별에서 자주 관찰되는 모습이죠. 따라서 그리 건전한 모습이라고 보이진 않습니다


다만, 이는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MZ을 그저 '어리기 때문에'라고 싸잡아 판단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또 다른 맹점은 내가 꼰대라 불리는 이유가 특정한 꼰대의 언행을 했기 때문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은 이미 스스로가 젖어있는 평생의 경험과 그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간극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원인을 사소한 한두가지의 행동에서 찾으려는 거죠. 어느쪽이든 갈등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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