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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승민 Nov 26. 2021

태초에 맞벌이가 있었다?


인간은 아주 독특하게도 생식기능이 사라진 뒤의 생존 기간이 길다는 것 아시나요? 예전에 이런 얘기를 듣고 그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맞벌이가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워봤습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45세 전후에 폐경을 맞이하는데, 이후 더 이상 생식을 할 수 없음에도 꽤 긴 기간을 더 살다가 죽습니다. 엄밀하게 여기에 해당되는 건 '인간'이라기보다 '인간의 여성'일 겁니다. 남성의 경우 생식기능이 서서히 저하될지언정 완전한 상실은 아니니까요. 


어쨌든 인간의 이런 특징은 자연에서 굉장히 독특한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생식활동이 끝나 순간, 또는 생식기능을 잃을 때가 되면 그 일생의 과업을 다 마친 것 마냥 산화합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생식활동 중에 암컷에게 목이 잘리는 사마귀나 태어나는 새끼들의 영양공급원이 돼버리는 거미처럼 아예 생식 자체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합니다. 인간과 가까워보이는 침팬지 암컷도 생존기간 내내 새끼를 낳죠. 즉 일반적으로 동물에게 '신체 노화 기간=생식기능 노화 기간'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때로 그 일생을 보며 안타까워 하는 하루살이나 매미가 '노멀'이었던 거고, 사람이 아주 독특한 사례인 셈입니다.


이런 특징이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더 기가막힐 일입니다. 진화라는 건 결국 본질적으로 후손의 수를 증가시키는 형질을 가진 유전자가 오래 남는다는 건데, 폐경이라는 건 암컷이 건강하게 살아 있음에도 생식기능을 억제해 후손을 더 남길 가능성을 차단하는 거니까요. 언뜻 불리해보이는 이런 시스템이 인간이라는 종에게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그럴듯하게 해석하려면 인간에게는 생식능력이 사라진 뒤에도(또는 그 뒤에야) 후손 늘리기에 유리한 뭔가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뭘까요. 


저는 이게 할머니의 육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즉 직접 생식활동에 참여해 새끼를 낳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그 유전자를 물려줄 손주의 육아를 돕는 것입니다. 찾아보니 학계에서 이걸 '할머니 가설'이라 하더군요. 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봄으로써 가족에게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여성들이 재생산의 시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이상 더 생존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에 맞물려 생각해볼 수 있는게 여성의 경제적 생산활동입니다. 즉 제 생각은 단순히 양육 인원 한명을 늘려 아이를 더 잘 돌보는 게 아니라, 아예 할머니가 육아를 대체함으로써 어머니가 육아에서 벗어나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 몸에 흐르는 인류의 유전자 형질은 원시 수렵/채집 시절에 형성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습관과 본능들이 몸에 자리잡고 있죠. 그런데 이 시절 엄마는 동굴이나 움막에서 가만히 애만 보고 있었을까요? (선사시대 성역할에 대한 의견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여성은 채집활동이라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게 훨씬 더 생존에 도움이 될테니까요. 


농경시대도 그렇습니다. 흔해 농경시대에 여성은 집 안에서 출산과 육아를 통한 노동력 재생산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 지금 농사를 짓는 시골의 모습만 봐도 여성의 노동력이 꽤 큽니다. 가사노동뿐 아니라 실제로 나가서 많은 일을 하죠. 출산은 출산대로 이어가면서 경제활동도 지속합니다. 이 시간에 육아를 책임지는 할머니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다음과 같은 특징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다른 동물에 비해 임신과 육아 기간이 길고, 무리지어 산다는 점이죠. 임신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인간은 육아 기간이 상당히 긴 동물입니다. 젖먹이는 기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독립하기까지 오래 걸리죠. 이는 반대로 보면 누군가 육아만 해준다면 그만큼의 시간과 에너지가 생긴다는 말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무리를 지어 살고, 그 규모가 큰 편에 속합니다. 즉 누군가가 대신 애를 봐줄만한 환경이 돼줄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그 역할은 그 육아를 대신해줌으로써 간접적으로 번식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혈연관계 중 하나가 맡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이 때 여러 젊은 여성이 있는 상황에서 각각의 아이를 돌보느라 묶여있기 보다 소수가 여러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효용성을 더 높일 수도 있게 됩니다. 


무리 내 여러 아이를 돌보는 형태는 아니지만 이런 행태는 현대 우리사회에서도 많이 보이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맞벌이가 보편화되면서 할머니의 육아가 많이 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제 상상이 일리가 있다면 이런 모습은 새로운게 아닌 겁니다. 오히려 수렵채집부터 농경시대를 지나고 산업화와 분업이 본격화 하면서 잠깐 멀어져 있었을 수도 있죠. 남자만 일하는 세상은 비교적 짧은 과거일 수도 있는 겁니다. 


전 개인적으로 맞벌이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만.. 그건 다음에 또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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