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의 힘은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성향에 대해 답하는 조사 방식에 있다. 당연히 결과가 틀릴 수가 없다. 내 답을 기반으로 성향이 나왔으니 그 성향에 대한 설명은 일종의 동어반복인데도 '와 맞아맞아'라며 감탄한다.
이는 혈액형이나 사주팔자와 다른 점이다. 이들의 입력 데이터는 타고난 값으로 실제 성향을 반영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중 설득력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올수밖에 없고, 이는 이 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과 회의를 부른다.
그러나, 아주 과학적이여 보이는, 스스로 답하는 이 방법에도 (어쩌면 철학적인) 두 가지 문제가 있다.
1. 내가 생각하는 내가 나일까?
우리는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난 이걸 좋아해, 난 이런 성향이 있어라고. 그런데 그게 진짜 나일까? 간혹 누군가가 내 생각과 다르게 '넌 이런 사람같아'라고 말한적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무조건 틀린것인가?
세상의 구성원으로서 따진다면 다른사람이 보는 내가 나일 수 있다. '나'는 스스로에 대한 생각과 말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하는 행동과 선택이 결정하는 것일 수 있단 얘기다. 내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나는 어떤사람이라고 말하는가보다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한 나에 대한 설명은 아닐까.
2. 내가 생각하는 나일까 내가 원하는 나일까
심지어 내가 그리는 나의 모습은 실재보다는 이상향에 가까울 수 있다. 즉, 실제 내 모습을 그리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모습을 투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설문은 이 함정에 빠지기 쉽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응답하는 과정에서 질문의 의도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여 원하는 결과값을 유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모습,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MBTI에서 사람들이 각기 다른 자기 유형에 대한 만족도가 대체적으로 높은 이유가 이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