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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Jun 02. 2021

검찰에서도 조정을 해요? : 형사조정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검찰청은 죄 있는 사람을 벌(罰) 주는 기관으로만 인식을 한다. 물론 실제로 검찰의 본연의 임무는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벌주는 것이 맞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검찰은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피해자가 있는 범죄 사건에서 가해자에 대한 기소 아니면 불기소와 같은 일도양단(一刀兩斷)식의 처리는 논리적, 법리적으로는 아무 하자가 없을지 몰라도 실질적인 분쟁해결이나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통적인 ‘모 아니면 도’(기소 아니면 불기소) 식의 처리가 아니라 검사에게 좀 더 유연한 사건 처리 방식을 부여한 한 것이 바로 형사조정 제도라는 것이다. 조정위원들과 사건 관계인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대화와 중재를 통해 합리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자율적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제도이다. 범죄피해자학이나 형사정책학에서는 이 제도를 종래의 ‘응보형 사법 모델’에 대비되는 ‘회복적 사법 모델’의 한 유형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 운용에 따라 성패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 제도 자체는 검사, 피의자, 피해자 입장에서 모두 매력적인 면이 있다. 


 먼저 검사는 사건 처리에 있어 부담이 경감된다. 분쟁에서 고소인에게 금전적인 피해가 있거나 피의자의 행동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형사소추할 정도에는 이르지 않는 경우, 검사 입장에서는 불기소 처분을 할 때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하지만 형사조정제도의 활용을 통해 당사자 간 합의가 되고 피해자의 피해회복이 되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사건 처리를 할 수 있게 된다. 또, 피의자의 혐의가 인정되어 기소를 하더라도 피해가 일부라도 변상된 경우에는 구형을 약하게 하거나 벌금을 감경하여 책정하는 등 합의 사실을 양형에 반영할 수 있다. 

 

 피의자는 피해자에게 피해를 변상해 주고 선처를 받을 기회가 생기게 된다. 지나치게 변상과 합의를 강조하다 보면 ‘돈으로 죄 값을 치른다.’는 인식이 만연하게 되고 형사사법 정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범죄 후의 정황은 우리 형법에서도 규정하고 있는 양형 참작 사유이기도 하다. 


 피해자는 피해회복이 될 수 있어 좋다. 피해회복이라고 하면 보통 금전적인 배상을 떠올리지만, 이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피해자의 상처 회복을 위해 피의자의 진심 어린 사과 또는 분쟁의 재발 방지에 대한 확실한 보장 등이 금전배상보다도 더 필요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서 운용하는 형사조정절차는 통상 아래와 같은 과정으로 진행이 된다. 먼저, 검사가 자기 방에 배당된 사건 기록을 검토하다가 형사조정 절차로 처리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사건이 있으면, 검찰수사관에게 사건 당사자의 형사조정 의사를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기록을 건네준다. 검찰수사관은 사건 당사자들에게 전화를 하여 형사조정제도의 취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의사를 확인한다. 이때 검찰수사관의 역량이나 의지에 따라 형사조정 의뢰 건수나 의뢰 성공률을 어느 정도 높일 수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수사관들은 무리해서까지 형사조정 의뢰를 관철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자칫하면 사건관계인들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고 또 그런 식으로 의뢰를 관철시켜 봤자 형사조정실에 가서 합의나 조정이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피의자와 피해자가 모두 사건이 형사조정절차로 진행된다는 것에 동의 내지 희망한다는 의사를 피력하면 검사는 사건기록에 검찰수사관 명의의 '형사조정의사 확인서'와 검사 명의의 '형사조정 회부서'를 첨부하여 형사조정 결과 회신 시까지 시한부로 기소중지한다는 취지의 결정문을 쓰고 기소중지 처분을 한다. 사건기록은 검찰청 사건과 소속 형사조정실로 송부되고, 형사조정절차가 진행된 뒤 그 결과물과 함께 사건기록이 다시 검사실로 오기까지 사건은 일시적으로 중지가 되어 있는 것이다. 


 당사자 의사 확인 등을 통해 사건을 형사조정절차로 의뢰하는 것이 검찰수사관의 주 업무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일단 특정 사건을 형사조정 절차로 보낸 뒤에는 해당 사건의 해결은 거의 전적으로 형사조정위원의 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에, 검찰수사관이 관여하는 바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의뢰했던 사건에서 형사조정이 성립된 것을 확인하면, 실질적인 피해회복이 이루어지거나 분쟁 해결을 위한 소모적인 힘 낭비를 줄일 수 있는 것에 대해 기쁨과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한 번은 형사조정을 의뢰하는 과정에서 정말 당황스럽고 가슴 아픈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검사의 요청에 따라 강제추행 사건 피해 여성에게 형사조정 의사를 확인하기 위하여 전화를 했더니 수화기 너머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인지 물어보고 피해 여성을 바꿔 달라고 했더니, 자신이 그 여성의 남편이라고 하더니 갑자기 흐느끼며 “제 아내가 죽었어요, 어제.”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사망시점, 사망원인 등을 추가적으로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는 즉시 검사에게 상황을 보고하였고, 며칠 뒤 검찰청 사건과에서 그 여성에 대한 관내 변사 보고가 올라와 공식적으로 사망 사실이 확인된 뒤 강제추행 사건은 종결이 되었다. 사건이 종결되기까지 계속 망인 남편의 구슬픈 목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듯해 가슴이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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