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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Jun 05. 2021

내 것을 처분해도 범죄?


 재산범죄는 대부분 다른 사람의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침해해야 성립하게 된다. 남의 것을 뺏거나(절도 또는 강도), 남의 것을 부수거나(손괴) 자기가 보관하고 있는 남의 것을 가져가거나(횡령), 배신행위로 남한테 손해를 입히고 자기가 이익을 얻거나(배임) 이런 식이다. 그런데, 자신의 물건을 가져가거나 숨기거나 부수는 경우에도 처벌하는 범죄가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바로 권리행사방해죄라는 것이다. 

 

 물론 온전히 자기의 것을 마음대로 처분하는 것을 범죄로 다스린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기의 물건이기는 하되 그것이 다른 사람이 권리의 목적이 된 경우와 같이, 처분하는데 일정한 제한이 걸려 있는 경우에 그 처분행위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형법은 “타인의 점유 또는 권리의 목적이 된 자기의 물건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 기록을 취거, 은닉 또는 손괴하여 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제323조)     

 이렇게 설명을 해도 여전히 권리행사방해죄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수사실무에서 이 죄명이 많이 문제가 되는 것은 자동차 할부구매와 관련된 권리행사방해의 경우이다. 자동차는 대개 고가(高價)이므로 금융회사로부터 대출받아 매수대금으로 충당하면서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보통 ◯◯◯ 캐피털과 같은 금융회사는 그 신용을 담보하기 위해 매매의 목적물이 되는 자동차에 근저당권을 설정한다. 추후에 대출자가 할부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저당권을 실행하고 환가 한 뒤 회사의 채권을 만족시키기 위한 조치이다. 

 


 그러다가, 대출자 즉 자동차 매수자가 할부금을 납부하지 못해 연체하게 되면 일정 절차를 거쳐 근저당권을 실행하게 된다. 그런데 대출자가 할부금을 연체하는 상황이라면, 돈이 부족해서 여기저기서 현금을 융통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미 해당 차량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아썼을 가능성이 높다. 현금을 융통하기 위해 해당 자동차에 다른 담보권을 설정하고 돈을 빌린 것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도 않을 수 있으나 이미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어 담보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자동차를 담보로 받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 설령 돈을 빌려준다고 하더라도 극히 소액이어서 대출자가 거래를 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있어 대출자가 제삼자에게 차량 자체를 인도해 주고 돈을 받는 것이다. 제삼자는 대부업자나 사채업자일 수도 있고 중고자동차 매매업자 등 자동차 관련 종사업자일 수도 있다. 차량을 인도해 주면서 그 제삼자의 인적사항이나 연락처 등을 확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상당히 많은 경우에 인도된 차량은 대포차량으로 범죄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원래 할부금 대출을 해 주었던 금융회사가 대출자의 채무불이행(할부금 연체) 사실에 기반하여 근저당권을 실행하려고 할 때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돈을 빌려 주었던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자동차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으면 근저당권 실행 및 환가 처분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행사가 방해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대출자를 형사 고소하게 된다.

  이런 사실관계를 앞서 본 권리행사방해죄의 법조문에 적용시켜 보면, 『타인(금융회사)의 근저당권이라는 권리의 목적이 된 자기의 물건인 자동차를 그 소재를 발견하기 곤란하게 하는 은닉 행위를 통해 금융회사의 근저당권 실행이라는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동차 권리행사방해로 조사하다 보면, 이 죄로 조사받는 대부분의 피의자들이 “자동차를 처분하면 권리행사방해로 처벌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권리행사방해죄라는 범죄는 처음 들어본다.”, “내가 한 행동이 은닉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항변을 한다. 물론, 이러한 항변은 인정받기 어렵다. “법률의 부지(不知)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유명한 법언(法言)도 있지만, 그걸 떠나서 비록 내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다룰 때는 다른 사람을 위해 설정되어 있는 근저당권 등 권리의 행사를 방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상식에 입각한 내용을 피의자에게 설명해 주면, 처음에는 다소 억울해하던 피의자도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그런데, 자동차 권리행사방해는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권리행사방해죄는 재산범죄 중 유일하게 소유자가 행위의 주체가 되는 범죄이다. 소유권에는 사용‧수익‧처분 권능이 있다. 비록 다른 사람의 권리의 목적이 되기 때문에 그 권능에 제한이 따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유권은 배타성을 띤 시원적(始原的)인 권리이다. 따라서, 법원에서는 대출자가 자신의 권리행사의 일환으로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리면서 차량을 인도하는 것을 권리행사방해죄로 의율 하는데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제삼자에게 차량을 인도해 준다고 하더라도, 자동차의 소재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심히 방치했거나 자동차가 대포차량으로 이용될 것을 능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 이상에는 권리행사방해죄를 잘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제삼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차량을 인도할 때 그 제삼자의 인적사항 파악을 비롯한 차량 회수를 위한 조치가 보장되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권리행사방해죄로 처벌받는 것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일반인들에게 권리행사방해죄라는 개념이 생소할지 몰라도 권리행사방해라는 말은 언론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 형법전에는 ‘권리행사방해’라는 표현이 나오는 곳이 세 군데가 있는데, 이 장에서 다룬 권리행사방해죄 외에 제123조의 직권남용죄와 제324조의 강요죄이다. 이 중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하는 범죄이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라는 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권리행사방해죄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구성요건에 ‘권리행사를 방해’한다는 표현이 있다는 점만 공통될 뿐, 주체, 보호법익, 행위태양 등이 형법 제323조의 권리행사방해죄와는 판이한 완전히 별개의 범죄이다.  직무유기죄와 더불어 공무원 범죄 발생 건수 중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는 범죄 중 하나이며, 직무유기죄와 마찬가지로 수사단계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는 비율 또한 95퍼센트 안팎으로 압도적이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에서 많은 공직자들이 바로 이 죄명으로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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