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퇴근 후 19시 즘, 종로 쪽에서 친구 한 명을 만나 식사와 반주를 했다. 오래간만에 대학생 시절 즐겨 먹던 닭갈비를 먹으면서 반주를 곁들여 평범한 식사 자리를 가졌다. 두 시간 정도 식당에 머무르며 식사를 마치고, 인근에 있는 막걸리와 전을 파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1차에서도 적지 않은 양의 식사와 술을 한 탓인지 포만감 때문에 그렇게 많은 양의 안주를 먹을 수는 없었다. 결국 2차 식사자리에서도 1시간 반 정도 머물다가 자리를 파하게 되었다.
1차 밥값, 술값을 친구가 계산했기 때문에 2차 식사자리는 내가 계산할 생각으로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친구가 갑자기 밥값 계산을 하려는 나를 빠르게 제지하더니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한다. 밥값은 누가 내더라도 상관없지만, 또 지불에 대한 규칙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 명이 식당에서 식사할 때 1차에서 한 사람이 계산하면 2차 계산은 다른 사람의 몫인 것이 암묵적인 룰 아닌가? 나와 친구 사이에 서로 ‘내가 내겠다.’며 상대방을 가볍게 밀치기도 하면서 두어 번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난데없는 실랑이에 카운터를 지키던 식당 사장님은 다소 지루해 보이기도 했지만, 마치 익숙한 풍경이라는 듯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래도 상황에 대한 난처함과 빨리 계산자가 확정되었으면 하는 기대감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빨리 실랑이를 끝내야 할 것 같아, 내가 다시 한번 “아까 네가 샀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살게.”라고 하며 카드를 던지듯이 카운터에 올려놓는 순간... 친구가 결정타를 날리는 것이 아닌가? 짜증 내듯이 내뱉은 친구의 말은
“아이, 이거 무슨 싸구려인데...”
지루하고 피곤하긴 해도, 아름다운 양보의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사장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록 고가의 음식은 아니지만, 자신이 파는 음식을 싸구려라고 비하하다니... 틀림없이 기분이 몹시 나빴을 것이다.
그런 결례를 저지르면서까지 나와 친구가 필사적으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음식 값이 1, 2차 다 합쳐도 10만 원이 안 되는 큰 부담 없는 가격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갑에서 돈이 좀 나가도 큰 부담이 없거니와 베풂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다는 자기만족에 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출연(出捐)하는 금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호의를 베풀기 어려워짐은 물론이고 의무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조차 이행을 주저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가 사기나 횡령 같은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한 푼이라도 덜 주려고 아등바등 채무액에 대해 다투기도 하고, 분쟁 상대방과의 관계가 어떠하든(가족, 친지, 오랜 친구, 오랜 지인 등) 한 치도 본인이 손해 보는 일은 없도록 해 달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한다. 돈을 받는 입장에 있는 사람도, 말로는 자신은 돈에 큰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머릿속 정교하게 작성한 손익계산서로 합의나 금전거래를 미루거나 비트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세무서에서 근무하는 선배 이야기를 들으니, 거기도 마찬가지란다. 돌아가신 부모의 유산이 거의 없는 경우에는 분쟁이 일어나는 일이 드물지만, 유산이 수억 원, 수십억 원 그 이상 가면 갈수록 상속인들이 형제, 가족과의 싸움에 비장함과 냉정함으로 무장하여 임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그래서, 수십 년 전 부모가 자녀에게 과외비를 대준 것과 같이 세무서에서 직권으로는 도저히 파악하기 힘든 사실조차 종종 심사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예전에는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씁쓸함을 느낀 적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단순히 많이 보다보니 무감각해져서인지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