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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사삼공삼 Apr 21. 2021

튤립

그리고 글 기다리기

거의 모든 식물을 문제없이 잘 길러내는 나지만, 고전을 면치 못한 종류의 식물이 몇몇 있다. 구근 식물, 그중에서도 튤립이 그렇다. 추운 기운이 슬며시 가시고 봄이 올 듯 말 듯 하면, 으레 붉고 탐스러운 그 꽃송이가 그리워져서,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후다닥 양재 꽃시장으로 달려가곤 한다. 그리고 겉으로는 심사숙고하는 척하면서 마음속에서는 온갖 난리를 피우다가, 양손에 튤립 구근이 가득한 채로 집에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올해는 꼭 제대로 된, 큰 꽃송이를 피워 올리리라, 다짐하면서.


올해도 역시. 지난 1월 말, 타오르는 듯한 붉고 큰 꽃이 프린트된 스티커를 붙인 비닐봉지 속에 튤립 구근 다섯 개를 담아서 룰루랄라 집으로 가져와 흙 속에 파묻었다. 그리고 물을 화분 밑으로 흘러내릴 때까지 충분히 준 다음, 위에 가볍게 흙을 더 덮어주었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춘천의 겨울을 이 튤립 구근이 버텨주길 기도하며. 발을 힘껏 화분 저 아래로 뻗고, 짙은 초록색 머리를 샴푸의 요정처럼 번쩍 들어주길 바라면서. 


튤립 싹이 올라올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분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다. 얼마나 자랐나 궁금해서 어설프게 흙을 엎으면, 겨우 자라난 뿌리가 끊어져서 죽거나 비실비실해진다. 물을 더 주어서도 안 된다. 이파리가 햇빛을 마주하고 광합성을 시작하기 전까지 물은 전혀 필요가 없으니까. 오로지 맨 처음 구근을 흙에 맡긴 그날 뿌린 물 한 번으로 튤립은 이파리를 밀어내야 한다. 


참을 인자를 백 번은 더 쓰며 기다렸더니, 올해는 다섯 개 중 세 개의 이파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가장 먼저 볕을 맞이한 녀석은 벌써 이파리가 세 개나 된다. 약간 쪼글쪼글하고 어설픈 첫 번째 이파리와 제법 튤립답게 날카로운 두 번째 이파리, 그리고 이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세 번째 이파리가 어여쁘다. 곧 이파리 사이에 겹겹이 숨겨둔 꽃을 저 하늘로 끌고 올라가겠지. 조금만 더 지나면 붉은 튤립이 태양 아래에서 활활 타오를 것이다.


튤립을 기다리는 것은 글쓰기와 비슷하다. 글이 될 생각을 의식 아래에 얕게 파묻어 둔다. 이 이야기로 글을 써야지, 하며 그 생각에 물을 준 다음 기다린다. 의식 저 아래까지 깊숙이 생각의 뿌리가 뻗어 나가고, 자아의 쨍한 빛을 받으러 이파리를 들어 올리다 마침내 온전한 꽃 한 송이를 피워낼 때까지. 그제야 남루한 인간의 언어로 그 아름다움을 번역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어설프게 머릿속을 휘저으면 덜 자란 생각들이 가라앉은 유자차 껍데기처럼 불편하게 떠오른다. 그런 날엔 분명 글을 쓰다 길을 잃는다. 마치 뿌리가 없는 이파리나, 줄기가 없는 꽃을 개발새발 그려 놓은 듯한 문장을 몇 개 나열하다 보면 아, 아직 이 이야기는 말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반면 잘 익은 생각은 손이 근질거려서, 당장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지경이다.


아직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남은 튤립 두 녀석이 흙 속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들의 시간이 오기를 기다려야겠지. 마찬가지로 모든 생각이 꽃을 피워내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라는 밭에는 언젠가 꽃을 피울 수많은 생각이 숨어 있다.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기다리는 것.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함부로 뒤적거리며 억지로 쓰는 것. 해야 할 일은 그곳에 무엇인가 자신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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