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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miyou Mar 02. 2021

그 무엇도 아닌  '나'일 용기가 필요할 때

김유담 중편소설 『이완의 자세 』



2020년 첫 번째 소설집 『탬버린』으로 독자를 찾아왔던 김유담 작가가 창비의 중편소설 시리즈 '소설 Q’로 다시 돌아왔다. 여자들만의 내밀한 공간인 '여탕'에서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펼쳐낼까.



“도둑년 돈이든 갈보년 돈이든 들어오기만 해라. 내가 빳빳하게 다려서 새 돈처럼 만들어 놓을 테니.”

남의 돈은 원래 더럽기 마련이라며 담담하게 때 묻은 돈을 세는 엄마 밑에서 나는 자랐다. 엄마는 바쁘다는 핑계로 내 스타킹을 빨아주지도, 교복을 다려주지도 않는 야멸찬 사람이었지만, 내게 건네는 용돈만큼은 천 원짜리 한 장까지 다리미로 다려주었다. 양말을 제때 꿰매주지 않아 때때로 내가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다니는 것도 모르는 엄마의 무신경함에 신경질을 내고 싶다가도, 졸린 눈을 비비면서 내 무용복 한복 저고리 동정만은 매번 손바느질로 새로 달아주던 엄마를 보면 맥이 풀렸다.
김유담, 『이완의 자세』, 창비, 49쪽


『이완의 자세』는 어릴 적 엄마에 의한 억척스러운 세신으로 근육의 이완에 어려움을 겪는 무용수 유라와 여탕에서 세신사로 일하며 딸을 키워낸 어머니의 이야기다. 이 서사 속의 인물들은 생을 살아내기 위해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살아가다 저마다 실패를 맛본다. 작가는 그 패배의 순간에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목욕탕은 계급장을 떼고 사람과 사람이 알몸으로 만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엄연히 서열과 위계가 존재했다. 여탕에서는 피부와 몸매 관리, 재테크, 자식 교육에 능한 여자들의 입김이 세고 서열이 높았다. …(중략)… 때밀이인데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돈을 잘 벌고, 자식을 잘 키운 여자. 엄마의 모든 행위 앞에는 ‘불구하고’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불구하고’라는 수식어는 어쩌면 ‘불과하다’와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때밀이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엄마를 추켜세우는 목소리는 역설적으로 그녀가 때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 모녀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김유담, 『이완의 자세』, 창비, 106쪽


혼자 힘으로 자식을 키워낸 어머니와 그 자식에 대한 서사를 종종 마주하곤 한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엄마와 딸의 서사도 흔하다. 좌절한 이들이 다시 일어서는 '성장담'도 익숙하다. 그럼에도 김유담 작가의 이 서사에 유독 마음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발끝이나 손끝으로 물의 온도를 확인한 후에 탕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벌거벗은 여자들을 보면서 나는 자랐다. 무용을 통해 인간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 곡선과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는지 배우기 이전에 그저 몸은 몸일 뿐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채버렸다. 그것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끊임없이 씻겨주어야 하는 살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오히려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자라면서 몸이 여자의 꼴을 갖춰갈수록 내 안에서는 망설임과 두려움이 커져갔고, 내 춤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김유담, 『이완의 자세』, 창비, 94-95쪽


악의로 가득 찬 수리부인의 험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에게 유일한 희망이 나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알았다. 엄마의 꿈이 비누거품처럼 형체도 없이 흩어져 버릴 예정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서 나는 오래도록 머금고 있었다.
김유담, 『이완의 자세』, 창비, 106쪽


온몸의 긴장을 풀고 춤에 몸을 맡겨야 하는 꿈을 꾸면서도 타인의 손이 닿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리는 유라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홀로 딸을 키워내기 위해 억척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입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다가도, 단 한번도 자기자신인 적 없었음을 고백하는 유라의 모습에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원장쌤이 예전에 그런 말을 했어. 춤이든 사람이든,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건 그만큼 자기 자신을 내어준다는 뜻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내려놓아야 한다고도. 요즘에는 계속 그 말이 생각나.”

… (중략) …

나는 만수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제대로 내어주지도 내려놓지도 못한다고, 나는 나 자신인 채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씩씩대는 만수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김유담, 『이완의 자세』, 창비, 159-160쪽


『이완의 자세』는 모녀의 서사이자 인물들의 성장 서사다. 하나하나 마음이 가지 않는 인물이 없다. 유라의 편에 섰다가, 엄마의 편에 섰다가, 만수의 입장이 되었다가, 결국 다시 유라에게로 돌아와 함께 온수에 몸을 담근다. 유라는 자신의 몸을 컨트롤할 수 없는 무용수임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 온몸의 긴장을 풀어냄과 동시에 어릴 때부터 자신을 옭아매었던 트라우마와 이별할 순간도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나는 오롯이 혼자였다. 누구의 딸도, 대단한 무용가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아무도 없는 욕조 속에서 생각을 지워야 한다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몸을 낮추면서 뜨거운 물속으로 몸을 집어넣고 앉았다. 두 가랑이를 넓게 벌려 앉으면서 두 팔을 수면 위로 띄운 채 스르르 눈을 감았다. 온몸을 휘감은 온기 속에서 내 몸의 모든 구멍이 열리고 있었다. 그 안에서 어떤 것이 쏟아져 나올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김유담, 『이완의 자세』, 창비, 167쪽




꿈꿔왔던 목표가 한순간 무너져내릴 때의 좌절감을 기억한다. 아무렇지 않은 일인 것처럼 툭- 털고 일어날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랴. 그 짙은 패배감을 끌어안고 주저앉아 오래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잘하려고, 해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몸은 굳고 스텝은 엉키게 마련이다. 때로는 포기하고 몸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것도 앞으로 나아가는 좋은 방법이다.


소설의 끝에서 온수 속에서 온몸을 이완하는 유라의 모습처럼 잔뜩 움켜쥐고 있던 것을 슬며시 놓아보자. '그 안에서 어떤 것이 쏟아져 나올지 나도 알 수 없'으니까.



* 창비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본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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