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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miyou Mar 05. 2021

[서평] 기획회의 530호

#팬데믹 아포칼립스



기획회의 #530호의 주제는 #팬데믹 아포칼립스였다. 이번 호의 이슈만 놓고 봤을 때,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의 조합이라 궁금했다. 팬데믹과 아포칼립스라니. 530호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 중 인상 깊은 기사들 위주로 기록해보려 한다.




1. 주제 - 팬데믹 아포칼립스

530호는 기획회의 서평단으로 활동하면서 받아본 네 번째 책이었다. 두 달 동안 네 권을 받아봤는데 처음 받았던 호수의 주제가 '마스크를 쓰고'였고, 528호가 '비대면 시대, 여행 처방책', 529호는 '코로나 1주년, 얻은 것과 잃은 것' 이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받아든 530호의 주제는 '팬데믹 아포칼립스'.


네 권이 다 다른 이슈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주제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마스크와 코로나, 비대면 시대와 팬데믹 아포칼립스까지. 1년 넘게 어디서든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밖에 할 수 없는 삶을 살다 보니, 개인적으로 이제 코로나나 마스크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은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게 되어버렸다. 일상의 권태와 더불어 삶의 권태까지 이어져 새로울 것이라곤 전혀 없는 생에 또다시 '팬데믹'이라니 아쉬웠다.


물론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고, 세상의 모든 담론이 그를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권태감과 기시감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라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두 달간 출판계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과연 이것뿐이었을까? 하는 의문. 2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130쪽가량의 잡지를 창조해내는 노고를 나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그 수고로움 덕분에 그나마 나의 감각이 현실에 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다음 호수에서는 코로나라는 중심 단어를 벗어나 새로운 사안을 다루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이다.



2. 그래도 #팬데믹 아포칼립스라는 주제는...

결국 세상을 망치는 건 재난이 아닌 기득권과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점에서, 답답한 세상을 일단 초인적 힘으로 부수고 시작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선한 의지가 세상을 구할 거라는 희망이 있다. 망해버린 세상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상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다. 현실이 어느 때보다 픽션과 가까워진 지금, 그 희망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사람들은 아포칼립스를 찾는 것이다.
✐ Intro. <요즘 사람들이 아포칼립스를 찾는 이유>, 이가희(뉴돛 대표, <기획회의> 편집위원)


그럼에도 지난 3권에서 다루던 이슈와는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어 흥미로웠다. '팬데믹 아포칼립스'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보는지라, 어떤 담론들이 들어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기획회의 530호>를 통해 접한 팬데믹 아포칼립스는 일종의 클리셰라고 해야 할까, 문화의 흐름이라고 받아들여졌다.


전염병으로 인한 인류 멸망은 가장 오래된 종말 아이디어다.

…(중략)…

하지만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꾸준히 인류를 찾아왔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 재난 속에서 정말로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이 재난의 그림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굳이 특별한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는 없었다.
✐ Issue. 전염병을 통해 멸망의 공포를 그린 영화들, 듀나(소설가, 영화평론가)


'전염병으로 인한 인류 멸망'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사용된 특성이나 아이디어다. 이 오래된 주제에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특히 지금 이 시대에 왜 사랑받게 되는지를 이야기한 글들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최근에 영상화되어 넷플릭스에서 흥행했던 <스위트홈>과 <20세기 소년>이라는 웹툰으로 팬데믹 아포칼립스를 바라본 시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재난으로 인간성을 상실한 때에 이들은 공감과 이해를 통한 개인과 개인의 정서적 연대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현 상황과 대응되는 아포칼립스 장르물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실제로 겪지 않았던 시대에도 대중의 공감을 얻으며 진화해갔다. 그러므로 현재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지 않았더라도 아포칼립스는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아포칼립스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비관적 전망과 상상이 결합하여 종말을 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아포칼립스 장르가 예측 불가능하고 급변하는 세계의 불안과 두려움을 내포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선한 의지와 희망을 내비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작품들을 감상하는 우리도 이 지난한 현실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다. “세상 가장 진한 어둠도, 가장 흐린 빛에 사라지는 거니까.”
✐ Issue. 팬데믹 아포칼립스에서 찾은 인간성과 희망 - <스위트홈> <20세기 소년>, 홍난지(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3. 가장 흥미로웠던 <기획자 노트 릴레이>

내가 생각하는 ‘나무 한 그루 베어내는 것보다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은 내용이 좋은 책이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책. 그것이 새로운 시각이든 따듯한 인간적 감동이든 삶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라 생각했다. 디자인이나 책의 만듦새는 부차적이라고 여겼다. 그런 좁은 시각을 깨고 디자인과 만듦새의 가치를 일깨워준 책이 『두 번째 지구는 없다』였다.
✐ 기획자 노트 릴레이 2. 자연과 사회에 힘이 되는 책, 송보배(RHK 기획편집2팀 과장)


내가 출판계 진출을 희망하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비하인드, 일명 편집후기는 늘 흥미롭다.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두 번째 지구는 없다』라는 베스트셀러를 다루고 있어 더 눈길이 갔는지 모른다. 처음 신간 소개를 봤을 때 방송인 타일러가 ‘환경’에 대한 책을 낸다고 해서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거기다 표지가 RHK치고는 심플하고 단순해서 갸웃했다. 이 책을 만든 편집자의 뒷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어 좋은 지면이었다.


『두 번째 지구는 없다』는 국제적인 친환경 마크인 FSC 인증을 받고, 콩기름을 사용했으며, 잉크 사용을 최소화해 디자인했다. 종이 낭비를 줄이기 위해 기본 판형을 선택했고, 띠지도 만들지 않았다. 잉크 사용을 줄이는 아이디어는 타일러 작가의 것이다. 얇은 선으로 지구를 표현한 표지나 종이 전체가 아닌 가장자리에만 파란 선을 넣어 구분한 각 장 대문 페이지도 작가의 아이디어다. 타일러 작가는 책의 디자인과 제작 전반에 적극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만큼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작가에게 절실한 것이다.

…(중략)…

『두 번째 지구는 없다』가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타일러 작가가 진심으로 기후 위기를 걱정하고, 발로 뛰며 알린 덕분이다.

…(중략)…

변화라고 하기엔 너무 사소한 것들이지만, 변화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 믿는다.
✐ 기획자 노트 릴레이 2. 자연과 사회에 힘이 되는 책, 송보배(RHK 기획편집2팀 과장)


기획 단계에 책의 주제를 선정하는 과정에 있어 작가와의 의견 나눔부터,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만큼 책 전체의 만듦새에서 환경을 가장 신경 쓴 이야기까지. 편집자분이 이 책을 담당하기 이전에 책을 대했던 태도와 이후 변화한 태도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편집자 지망생으로서 책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4. <회색인간> 김동식 작가 인터뷰

<회색인간>이라는 소설의 표지를 봤을 때, 아 읽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입시 준비를 할 때 '붉은 모델'이라는 주제로 산문을 쓰는 연습을 했었는데 그 그림이 8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김동식 작가가 처음 등장했을 때 기사를 몇 개 읽었던 것 같은데, 문단의 역사에 이런 책은 없었다 와 비슷한 뉘앙스로 기억한다. 미스터리 스릴러였나, 궁금한 이야기들로 엮여 있을 것 같았는데 아직 채 읽지 못한 책이다.


나는 그에게 어디에서 글쓰기를 배웠는지를 먼저 물었다. 사실 이것이 가장 궁금했다. …(중략)… 글쓰기를 배워 본 일이 없고 살면서 읽은 책도 교과서 몇 권 말고는 없다고 답했다. 나는 이 인터뷰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글이라는 게 반드시 배워야만 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선생님이나 롤 모델 정도는 필요한 법이다.

…(중략)…

그에 대한 흥미가 더욱 생긴 나는 그에게 “정말로 누구에게 글쓰기를 배운 일이 한 번도 없으신 건가요?” 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 있긴 있네요” 하고 말을 이었다.
✐ 김민섭의 책 쓰기 14. 글쓰기를 배우지 않고도 글을 쓸 수 있을까 – 김동식 작가와의 만남(1), 김민섭(작가, 북크루 대표)


그런 김동식 작가의 인터뷰라니. 이전 호에서 김민섭 작가의 글들도 좋았던 것 같지만, 이번 인터뷰를 읽는 것은 더욱 흥미로웠다. 글쓰기를 배우지 않은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거기다 잡지나 신문에 연재되는 글의 핵심은 다음 호에 실릴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어 구매로 이끄는 것일 텐데 이번 <글쓰기를 배우지 않고도 글을 쓸 수 있을까>는 정확히 그 역할을 해냈다. 김동식 작가는 누구에게 글쓰기를 배웠던 걸까?


5. 책방 주인의 사람 냄새나는 서점 이야기

지난 세 권의 서평에서도 '서점 리스본'의 정현주 대표가 쓴 <당신의 서점>에 대한 생각을 자세히 썼다. 다음 호를 기다리게 되는 글은 (4)처럼 중요한 부분에서 이야기를 중단하고, 다음 호로 넘기기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도 있지만 <당신의 서점>처럼 매번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글을 쓴 사람의 톤을 사랑하게 되는 글의 매력이 진짜가 아닐까 생각한다. 벌이나 나비가 그렇듯, 향기가 풍겨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글 말이다.


이 글의 주인이 전직 라디오 작가라는 사전 지식이 더해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독성이 뛰어난 글이라고 생각한다. 라디오를 듣는 것 같은 포근함과 나직함이 있는 글. 읽고 나면 당장이라도 서점 리스본에 달려가고 싶어진다.


저녁 8시면 사람들이 모여 고요히 책을 읽었고 9시 30분이 되면 대화를 시작한다. 당일 읽은 책을 소개하고 좋았던 부분을 낭독한다. 이어서 읽을 책을 서로에게 추천하다 보면 신이 나서 다음 날 출근도 잊는다.

…(중략)…

어쩌면 나는 거트루드 스타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통장은 가난해도 사람은 부자인 서점이라서 말이다. 잔고는 비웠다 채워지고 다시 비워지기를 반복하지만 부디 사람은 쌓여가기를 바란다. 사람을 남기기 위하여 이제 다시 일어나 책 팔러 간다.
✐ 당신의 서점 04. 리스본 아지트의 시작, 거트루드 스타인의 집, 정현주(서점 리스본 대표)


이번 호수에서는 '리스본 아지트'에 대한 글을 쓰셨다. 저녁 8시에 모여 함께 읽고 나누던 시간들에 대한 회상. 지금은 존재할 수 없는 공간과 시간이기 때문인지 더욱 아득한 향수가 느껴졌다. 이 경험을 읽으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 풍경은 마치 환상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와 그 사이에서 풍겨우는 냄새를 그리워하게 한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함께'일 때를 추억하며 버티는 하루의 슬픔을 선명하게 한다.


6. <이 시대의 사랑> 리뷰

하지만 그중에서도 김혜순과 더불어 최승자라는 시인이 보다 충격적이고 그로테스크했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그들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여성으로서 사랑과 죽음과 세계에 관하여 ‘센 말’ ‘눈치 보지 않는 말’을 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러한 여성시는 아직도(혹은 앞으로도 영원히) 새롭고 낯설다. 감각적인 조판과 실험적인 편집, 검소하거나 얌전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아름다운 형광 표지로 2020년에 재발간된 『이 시대의 사랑』이, 정말로 작년에 새로 쓰인 시집처럼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1981년에 최승자가 뱉은 말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불편하고 매혹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내는 바, 그것은 이 시대의 사랑이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점, 이 시대의 사랑이 여전히 그 사랑을 대가로 여성을 향하여 식민지-되기 혹은 죽음- 되기를 끈질기게 요구한다는 점이다.
✐ REVIEW. 이 시대의 최승자, 김상혁(시인)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이 2020년 새로운 판형과 커버로 출간되었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표지. 1980년대에 세상에 나온 시집임에도 2020년대에도 여전히 팔릴 수 있고, 읽히게 되는 이유에 대해 쓴 글이었다. 무려 4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여전히 낯설고 새로운 여성 시인의 시집. 그 메시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리뷰였다.




어느덧 <기획회의> 서평단으로 2주에 한 번 잡지를 받아본 지 두 달이 되었다. 꾸준히 뭔가를 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 반복되는 패턴으로 읽고 쓰는 것 또한 익숙하진 않다. 하지만 이렇게 감각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다음 호에는 나의 권태감을 박살 낼 수 있는 신선한 ISSUE를 담은 책이 배송되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계절이 오는 것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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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단 활동을 위해 본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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