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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까우니까청춘이다 Jan 18. 2018

창문 틈에 붉은빛이 새어 들어오면,

창문 틈에 붉은빛이 새어 들어오면, 

나는 창문에 매달려 

바깥 풍경을 보았다  

붉은빛에 의지한 채 

마지막으로 빛을 발하는 숲, 

희미하게 떠 있는 하얀 달 

가끔 슬픈 날은 옥상에 올라가 

해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어디든 스리랑카 

붉은빛이 비치던 곳으로 

떠났던 시간,      



첫 석양 미힌탈레, 


스리랑카에서 내 첫 석양은 아누라다푸라 미힌탈레였다. 스리랑카에 도착하자마자 1주일 정도 지난 후에 아누라다푸라, 담불라, 캔디 이 세 지역으로 스리랑카 역사를 탐방하기 위해 떠났다. 첫 여행이라서 설렜지만 더위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뜨거운 바닥을 맨발로 걸어 다니다 보니 병이 났다. 힌두교 사원에서 불교 사원으로 바뀌었다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원 바위 위에서 삐 소리와 온 세상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누라다푸라를 괜히 왔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시니어 선생님이 미힌탈레에 가자고 말씀을 하셨다. 그 선생님은 랑카가 두 번째였는데 미힌탈레가 정말 아름답다며 계획에 없었던 미힌탈레행을 건의하셨다. 처음에는 차에서 쉬고 싶었지만 그래도 한 번은 가보고 싶었기에, 여행자의 열정으로 미힌탈레에 올라갔다.      


무척 덥고 힘들었지만 땀을 뻘뻘 흘리고 어설픈 싱할라로 콜라 한 잔 사 먹고 나니 뿌듯한 마음에 기분이 좋아졌다. 산 아래로 펼쳐져있던 야자수 군락들, 나무들이 사는 나라에 사람이 잠시 사람들이 세 들어 사는 것 같은 난생처음 느낀 야릇한 기분, 미힌탈레를 내려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넓은 벌판과 물웅덩이 사이로 붉은빛이 가득했다. 해는 사라질 질 때가 돼서야 세상을 감싸 안고 있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우리는 정신없이 그 자리에 내려서 사진을 찍었다. 인간이 만든 어떤 문화유산보다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던 미힌탈레의 석양을,          


석양마저 달콤한 캔디, 


캔디 호수의 석양도 참 아름답다. 처음에 정식 파견되기 전 내가 머물게 될 도시에 현지 적응 훈련을 받으러 2주 간 간 적이 있었다. 처음 만난 기관장은 한국어 코스의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나를 원하지 않는 다고 하였다. 그리고 벨리 아타에 학생 수가 많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나를 설득했다. 학생도 없는 곳에 있으면 서로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며, 사람들 또한 나를 환대해주지 않았다. 나는 왜 왔는지 목적을 잃었다. 캔디에 KFC가 있으면 뭐가 좋은 거고 버거킹이 있으면 뭐가 좋은 걸까, 그게 좋았다면 한국에 있었겠지, 나는 이곳에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빛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목적을 잃어버린 나는 학교 끝난 뒤 오후에 타운 근처를 홈스테이 아줌마와 자주 걸었다. 그리고 해지는 모습을 보았다. 가끔 캔디 해 질 녘 호수를 보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길을 배회하던 나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 위로를 건네주던 아줌마의 목소리도 만나게 된다. 그날의 석양은 위로의 석양이었다. 사실 왜냐고 물어보면 대답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항상 보았지만 늘 새로왔던 석양, 


우리 집 옥상 석양도 끝내주게 아름답다. 산에 폭 안긴 우리 집 옥상 위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나를 얼마나 설레게 했는지, 가끔 마음이 답답할 때 붉은빛이 들어오면  옥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해가 꼴까닥 넘어갈 때까지 보았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그렇게 아름답게 볼 수 있을까, 해는 담담하게 단조롭고 답답한 일상 속에 말 통할 사람 없어 전전긍긍하던 나를 위로해줬다.                



붉은빛으로 더욱 사랑스러워라 


스리랑카에는 높은 건물이 많이 없다. 최고로 발전된 콜롬보마저도 우리나라와 같은 고층 건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래서 스리랑카 모든 곳의 노을이 참 아름답다 호숫가, 야자나무, 큰 숲,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드넓은 들판, 그리고 아름다운 인도양의 바닷가까지, 



여행 때마다 잊지 않고 해지는 곳을 찾아갔다. 붉은빛이 가득한 하늘 사이에서 빛을 잃어가는 것들 그 둘의 절묘한 조화가 아름다웠다.  

   

미힌탈레, 미리사, 갈레, 캔디 호수, 어느 길가 내가 석양을 봤던 아름다운 시간들을 곱씹어 본다. 갈 때가 다 돼서야 자신의 진심을 내 보이는 태양을, 그런 태양의 호의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는 스리랑카의 너른 대지를 기억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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