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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까우니까청춘이다 Mar 08. 2018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이 영화를 재밌게 본 건 아니지만 제목이 너무 강렬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화이다. 사랑도 통역이 될까, 스리랑카에서 늘 이 질문을 했던 것 같다. 잠시 왔다 떠나는 봉사였다면 나는 ‘단연코 통역이 되지 않는 낯선 언어일지라도 우리의 마음이 통하는 것이 있다‘라는 긍정적인 이야기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현실은 가혹했다. 언어와 문화의 벽이란 도무지 넘을 수 없는 커다란 산 같았다.       


처음 아이들을 만나고 수업을 시작했을 때는 아이들과의 장벽을 크게 느끼진 못했다. 그때는 천사들의 합창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착한 선생 코스프레를 하며 살아갔다. 아이들도 내게 착한척(?)을 많이 했다. 하지만 우리들이 점점 서로를 알아가고 난 뒤 서로 안에 통하지 않는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반 아이들은 한국나이로 20대 초반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교실이다. 그렇기에 나는 처음에 대학생 정도의 성숙함을 기대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어학수업이다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농담들도 많이 했다. 처음에는 그게 분위기를 띄우는데 도움이 되고 아이들과 나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친해진 분위기를 이용해 아이들이 떠들기 시작하였고 선을 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 중 아주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약간 중동사람처럼 생긴 학생이었다. 아버지가 무슬림이고 어머니가 싱할라(불교도)인 독특한 가정이었다. 그 아이의 매형이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한국에 갈 준비를 하였고 사설 학원도 다녔기에 한국 사정에는 아주 빠삭하였다. 그랬기에 진도는 우리 반 중에 제일 빨랐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알지도 못할 질문들을 자꾸 하고 그것들에 대한 답을 요구했다. 나는 다른 친구들이 아직 잘 모르니 다음에 배우자고 이야기를 하면 그 뒤부터는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한국어 듣기 파일을 핸드폰으로 재생했다. 그런 무지막지한 행동에 나는 당황했고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됐다. 

     

내가 흥분해 화를 내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나는 짧은 싱할라로 있는 힘껏 화를 냈다. 물론 싱할라는 처음부터 꼬였고 제대로 의사전달을 하기 에는 내 싱할라 실력이 모자랐다. 아이들은 내게 한 마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고개만 까딱거릴뿐,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나면 잠시 조용하다가 딱 십분 뒤에 분위기는 다시 흐트러졌다. 가만히 놔두면 아이들은 한국인인 나의 주변에서 싱할라로 대화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조그만 섬에 갇혀버렸다. 그때 정말 외로웠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섬에 갇힌 느낌, 정말 외톨이가 된 느낌, 

   

한 번은 화를 너무 많이 내고 집에 갔다. 무슨 일로 그렇게 화를 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 기분은 기억이 난다. 몸에 힘은 쫙 빠지고 아이들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화를 낸 내가 과연 선생자격이 있는 것인지 후회했다. 1시에 퇴근하고 나서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어떻게 봐야할지 한참을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나의 모든 마음을 설명해준다면 아이들이 지금보단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들어줄 수 있었을까. 나의 사랑은 아이들에게 가닿지 못하는 것일까, 한참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학교에 갔다. 아이들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어서 한참 고민했는데 정작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내게 인사를 했다. 허무해진 나는 한참 멍을 때렸던 것 같다.        


아이들과 나는 그 이후에도 지금과 같이 싸운다. 나의 마음을 한 번에 다 잘 이해시킬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우리에겐 언어의 장벽과 문화의 장벽이 큰 담으로 남아있다. 사랑을 통역할 수 있을까, 끝내 통역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를 이해하고 끊임없이 믿어야 가능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기에 우리는 겸손해져야 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무거움을 깨달으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2017년 캔디, 아룻뽈라 나의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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