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진에 왜 나는 없어?
그때 너는 엄마 배 속에 있었어. 그래서 엄마 배 속에서 같이 사진 찍었어.
아, 맞아. 나는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나, 뭐 하나 듣고 있었어.
그랬어? (머리가 복잡복잡) 그리고 또 뭐 했어?
음, 배가 너무 고파서 엄마 배 속에서 이것저것 쪽쪽 다 먹었어. 그리고 흔들흔들 왔다 갔다 했어.
좋았어?
응. 따뜻하고 좋았어.
지독한 입덧과 우울증으로 나의 임신 기간은 그리 해맑지 못했다. 무엇보다 죽을 것 같은 입덧이 도무지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태교는 사치에 가까웠다. 의사로부터 배 속 태아의 위험성을 들은 후부터는 매일 울다 지쳐 잠들고 잠들다 깨면 또 우는 날을 반복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이 편한 거라고, 애 낳아보면 알 거라고.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은 존재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보니 알 것 같았다. 죽을 것 같던 입덧과 우울증과 몸살과 속쓰림을 훨씬 뛰어넘는 고차원적인 고단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일단 모성애와 어여쁨을 느낄 여유가 없을 정도로 나는 너무 졸리고 아팠다. 나의 엄마가 당연하게 갖고 있던 ‘엄마’라는 이름은 그렇게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혹독하게 깨달아나갔다. 아기가 나온 그 순간부터 나의 고행도 함께 시작되었다. 아이는 매일매일 울었다. 울다 지쳐 잠들고 또 자다 깨서 우는 아이를 보며 누군가의 자식으로 살아가는 길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것 같았다. 아이에게도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가 고행의 시작인 것 같았다.
아이는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따뜻하고 좋았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아이 입으로 듣고 있으니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론 걱정이 되었다. 임신 기간 동안 내가 생각하고 말했던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그때 엄마의 우울했던 감정만큼은 똑똑히 담아두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제 와서 걱정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배 속에 있을 때의 기억을 ‘좋았다’고 말해주는 아이에게 감사하다. 낳아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힘들게
낳은 이상, 아이에게 배 속에 있을 때보다 더 고단한 삶을 주어서는 안 되겠다. 그때보다 앞으로 살아갈 지금 여기가 아이에게 더욱 따뜻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똑 부러지지 못해 여전히 모르는 일투성이고, 능력이 부족해 해주지 못하는 게 많지만 적어도 아이에게 후회스러운 삶의 길만큼은 걷지 않도록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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