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집에 한번 놀러오라고 그래.
…
왜? 안 놀러 온대?
남편은 수시로 늦는다. 야근과 주말출근이 내 남편만의 사정은 아니라고 해도 나는 왠지 세상 일 그 혼자 다 하는 듯한 야속한 기분이 든다. 남편은 보통 아이가 잠든 후에 들어오는 날이 많고 아이가 깨기 전에 출근하는 날은 더 많다. 그러니 아이는 아빠 얼굴도 못 보고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두 사람이 서로 얼굴도 못보고 사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불안한 마음이 든다.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이라도 보는 나는 남편의 존재감은 잊지 않고 사는데, 그나마도 못하고 사는 아이는 아빠에 대해서 잊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쯤 되니 나 혼자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고단함은 문제가 아니었다. 육아는 해도 해도 어렵지만 분명 갈수록 실력이 느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아이에게 아빠의 자리가 얼마큼인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잊힐까봐 걱정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더 안타까웠다. 남편은 아이와의 사이가 소원해질까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었다. 본격적으로 놀아주는 시간에는 금방 지쳐 나가떨어지더라도, 그런 시간조차 부족해지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홀로 육아를 도맡아하는 아내에 대한 걱정 안에는 아빠의 존재가 줄어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다.
남편은 오늘도 늦는다. 남편과 통화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거나 표정이 굳어지거나 했던 모양이다. 늘 그렇듯이 오늘도 아빠 없는 식탁에서 아이와 둘이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남편과 통화를 하는데 아이가 옆에서 태연하게 말한다.
아빠 집에 한번 놀러오라고 그래.
아이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멍한 표정으로 잠시 얼어있다가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했다. 남편도 씁쓸한 웃음을 흘린다. ‘응 꼭 놀러갈게.’ 딴에는 대답을 해준다며 농담 같지도 않은 농담을 건넨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전하고 싶지 않아 또 잠시 멍하게 있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한마디를 더 건넨다.
왜? 안 놀러 온대?
차라리 웃으며 이야기 해주었으면 이렇게 씁쓸하지는 않았을 텐데.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아이에게 대답해주었다. ‘놀러 온대.’
아빠 오늘은 나가지마. 나랑 놀아.
이른 아침 아이와 아빠가 거실에서 벌이는 실랑이에 잠이 깼다. 나가지 말고 놀아달라며 떼를 쓰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떼어놓고 출근을 해야 하는 아빠의 마음이 다 이해가 되니 선뜻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었다.
아빠가 돈 많이 벌어 와서 맛있는 거 사줄게.
아니야 나 돈 많아. 돼지저금통 아빠 줄게. 그러니까 나가지마. 우리 이걸로 맛있는 거 사먹으면 돼.
이날은 아이가 결심이 대단했다. 거실에 있는 묵직한 돼지저금통을 꺼내 아빠 앞으로 단번에 들고 왔다. 다급함에 무거운 것도 못 느꼈던 모양이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하다. 그러나 나는 결국 우는 아이를 아빠에게서 떼어놓는 일을 하게 되리라는 걸 안다. 떼어놓는 사람도, 그 사이에 도망치듯 출근하는 사람도 마음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지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 삶에서 현실은 늘 승리하는 법이니까. 아이의 울음소리 보다는 남편의 월급 통장이 우선이니까. 현실을 이길 자신이 없는 우리 부부는 결국 아이를 울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아이의 울음소리는 특히 더 마음에 아프게 맺혔다.
아이는 자기가 잠들어 있을 때 아빠가 살금살금 다가가 이마에 뽀뽀를 하고 한참을 바라본다는 걸 모를 거다. 그것은 남편이 아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었다. 그나마라도 할 수 있음이 다행인 남편은 그 시간마저 감사했다. 편한 마음으로 집에 놀러 올 아빠를 그리며 잠든 아이의 밤이 오늘도 짠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원망의 마음도 가질 수 없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서로가 알기 때문이다.
아이의 돼지 저금통 하나에 감사하며 현실을 이길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지지 못해서 미안한 것이 아니라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한 현실을 우리가 더 깊게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훗날 내 아이가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날이 오면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저녁 만큼은 꼭 물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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