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읽는인간 Feb 03. 2022

내가 원한 게 바로 이런 게야!

친언니는 없어도 찐 언니는 있을 수 있지!

드라마에 일가견이 없는 나는 일드도 미드도 심지어 한드(?)도 아는 바가 없다. 그런 나에게도 요염하게 정주행을 유혹한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응땡 시리즈의 #응답하라1988 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현생 때문에 정주행을 끝까지 마치지는 못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다’고 느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어딘가에서 본 1화의 첫 장면 때문이었다.


극 중, 한 동네 사는 이웃들끼리 밥때가 되니 서로 자기 집 반찬을 나눠주겠다며 골목을 사이에 두고 이 집 저 집 왔다 갔다 분주하게 이동하는 정신없는 장면이 나온다. 보다 못한 누군가가 “이럴 거면 같이 먹지!”하며 소리치는 장면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왜 아니겠는가. 나도 그 심부름 셔틀, 진~짜 여러 번 다녔다. 누구네 아빠가 낚시 가서 잡아왔다며 검은 봉다리에 꿈틀 거리는 정체불명의 생물을 건네면, ‘아유~~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봉다리 안을 살펴보는 엄마. 주방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거 저 집 좀 갖다 주라’며 타파에 비닐에 꽁꽁 싼 파김치를 ‘엊그제 담갔는데 엄마가 맛 좀 보시래요…’ 하고 오라 한다. 귀찮은데… 꼬라지가 말이 아닌데… 하는 건 다 핑계고 얼른 갖다 오라며. (눈 찔끔 감고 빨리빨리 하는 엄마 특유의 제스처가 아직도 생생하네!)


워낙에 많이 하는 김치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잔칫날도 아닌데 전을 부쳐도 많이, 나물도 잡채도 많이, 심지어 어떤 때는 찹쌀밥 같은 것도 노나 먹었던 것 같다. 과일이 한 박스라도 들어온 날이면 그것도 소분을 하고, 식용유나 밀가루가 없으면 빌려주고 빌려오기도 하고.


그땐 그 심부름이 그렇게 귀찮았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사무치게 그립다. 문 꽁꽁 닫고 옆집 1203호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지금보다, 아무개 엄마, 어쩌구 아저씨로 통했던 옆집 식구, 동네 사람들과 나눴던 마음이. 그 정겨움에 한 번 더 취해보고 싶어서. 정주행을 마치지 못한 건 나중에라도 또 보려고 그랬던 게 아닐까.


한국도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외국 나와 있으니 특히 더 많이 생각이 난다.


혈혈단신 타지에서 지내면서 계절마다 가족들 앞으로 오는 오츄겐(お中元, 추석 선물)이며 오세보(お歳暮, 설 선물)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하물며 연하장도 내 앞으로 오는 건 몇 장 없는데 누군가 나를 생각하며 마음을 보낸다는 거… 도착했을 때 너무 기쁘고 설레고, 이 땅에도 내 사람 있다 뫄!! 싶고.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15년 가까이 구경이라곤 못해본 씨~뻘건 양념게장. 더 늦었으면 그게 무슨 맛인지 잊어버릴 뻔했다. 게와 게 사이를 질척거리도록 메우고 있는 양념은 또 어떻고. 보는 순간 참아왔던 오만가지 감정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흰 밥에 가위, 열 손가락 딱 대령하고 영혼까지 쪽쪽 빨아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중간중간 식욕 자극하는 청양 고추도 야무지게 먹어주면서!


안 주고 안 받는 일본의 문화가 어느 땐 편하다고 느꼈다. 근데 받아보니 아니다. 더 주고 더 받는 우리네 마음이 아직 좋은 걸 보니 나는 뼛속까지 응팔인가 보다.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

콩뿐이랴. 닭다리도 게 다리도 나눠 먹는 게 훨씬 맛있다.


아니지!

“이럴 거면 같이 먹는 게 훨 맛있지!!!!”


Thank you. 나의 찐 언니

2022.02.02



▶︎글이 되지 못한 소소한 일상은 읽는인간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ishigaki.j/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