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읽는인간 Mar 10. 2022

살아가고 있다

더디지만, 멈춰있는 것 같지만, 나아가고 있다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 조용히 이불속을 빠져나온다. 물 한 모금과 어스름한 하늘. 읽다 만 책 한 줄과 알람이 쌓여 있는 핸드폰으로 텅 비었던 몸을 채운다.


인기척이 느껴지기 전에 아침을 해야지. 주방 불을 켜기 전, 난방으로 거실을 덥혀 놓고 고타츠에도 전원을 올린다. 잠에서 막 일어난 아이들은 이불속 온기를 떨궈내지 못하고 아기 고양이 마냥 고타츠 속을 파고들곤 하니까.


계란말이와 베이컨

바게트 빵과 버터


마가린을 찾는 사람도 있으니 그것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젓가락과 버터나이프, 티스푼이 담긴 통도 잊지 않는다. 커피를 내린다. 갓 볶은 콩 까지 아니더라도, 우리 집 사람들은 갓 갈아 낸 콩으로 내린 커피가 아니면 싫단다. 나부터도 그렇다.


버터 오일이 마음에 들어 몇 년 간 애용하고 있다. 가스레인지에선 고소한 버터의 향과 지글거리는 베이컨 소리, 카운터에선 커피 포트가 요란하게 물을 끓어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롯이 혼자 있는데도 주방이 왁자지껄하다. 하루가 시작된다. 제일 먼저 만난 얼굴은 시어머니. 오하요 고자이마스, 잠긴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건네면 식탁 위에 머릿수대로 접시를 올린다. 허전한 식탁을 무엇으로 더 채우지? 토마토와 오이를 자른다. 치즈도 꺼낸다. 어제 먹다 남은 키마 카레도 데워 놓으면 누군가는 먹겠지.


덜컥. 방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귀를 쫑긋 세우고 2층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작은 발소리를 듣는다. 반나절 동안 잠겨 있던 목을 가다듬는다. 아침을 기억하는 소리가 될 테니까.


(흠흠) 

오하요~
잘 잤어?



아침이 왔다.

살아가고 있다.


2022.03.0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