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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Feb 02. 2022

덤에 덤을 얹어주는 한국 나이

태어나서 하나, 해가 바뀌면 또 하나

엄마, 나 한국에선 몇 살이야??


한 해가 끝나가는 연말부터 새해가 밝아 오는 연시에 걸쳐 아이가 내 등에 매달려 자주 하는 질문이다.


(나) 올해 2학년이 되니까… 한국에선, 아홉 살!


(아이) 와아! 얏따~!! (やった:해냈다, 신난다의 일본어 표현)


제 나이를 셈 할 줄 알게 된 무렵부터, 에누리 없이 태어난 달에 날짜까지 따지는 일본(을 포함한 글로벌 스탠다드) 보다 태어나서 하나, 해가 바뀌면 또 하나, 덤에 덤을 얹어 주는 한국의 계산법을 아이는 퍽 마음에 들어 했다.  


하나만 늘어야 할 나이가 곱배기로 불어 있으니 한층 더 언니가 된 기분인지 가벼운 콧김과 함께 허리를 곧게 세우는 아이. 호오… 벌써 아홉 살 이라니… 내 입으로 뱉은 숫자에 새삼 놀라 입 안에서 되새김질한다.


음력으로 쇠는 한국의 설. 그러고 보니 집에 전화 한 통도 안 드렸네. 침실의 이불을 펼치며 아홉 살 언니가 된 아이에게 말했다.


(나) 설날이니까 할머니랑 전화하자~


(아이) 어! 장깜만!! (잠깐만)


띵! 또로로 띵띵, 땅따라 띵~


카톡 특유의 방정맞은 통화 연결음이 흐르는 사이, 아이가 책장으로 달려가 집어 들어온 두 권의 그림책. <연이네 설맞이>와 <떡국의 마음>이다.


한국의 명절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엄마의 나라를 알려주고 싶어 구입했던 책. 책을 읽다 ‘엄마 똣꾸(떡국) 먹고 싶어!’ 그 한 마디에 아이에게 제대로 된 떡국 한 그릇 먹이고 싶어 한국의 설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던 게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직전의 1월이었다.


아이와 한국의 설을 보낸 건 딱 한 번뿐이었는데…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날을. 우리를.


얼굴이 밀가루 범벅이 되고, 사나흘 참기를 냄새가 가시지 않을 정도로 함께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쳤던 시간. 아이에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한국의 설 풍경.


설날 아침, 얼굴만 보면 옛다 주는 일본의 오토시다마(お年玉)와는 달리, 꼬까옷 입고 양반다리 하고 자세 고쳐 앉아 새해 인사 올려야 받을 수 있는 한국의 세뱃돈도 아이에게는 귀한 경험이 됐다.


(나) 한국에선 이 떡국을 먹으면 나이 한 살을 먹는 거야.


(아이) 아~ 그럼 나는 똣꾸(떡국) 맨날맨날 먹을래! 일본에서 오조니(お雑煮) 먹고, 한국에서 똣꾸 먹고… 아! 그래서 두 살 먹는구나!


그렇게 말했던 만 다섯 살, 한국 나이론 7살이었던 아이의 눈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흘러 그 사이 나는 또 한 번의 임신과 출산으로 새 식구를 얻었다. 한국이 어딘지, 가족은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아이의 빳빳하고 새하얀 여권에 언제쯤 모국의 입국 도장을 찍을 수 있을까.


(아이)  옴마(엄마)! 하루나는 한국에서 몇 살이야?


(나) 음… 이제 한국에선 설 지났으니까 3살! (13개월)


(아이) 에~~~ 즈루이!!(ズルい:치사하다 의 일본어 표현) 똣꾸또 (떡국도) 안 먹었는데.


(나) 엄마가 주말에 떡국 해줄게. 하루나도 먹을 수 있을 거야.


(아이) 와아! 얏따~!! (やった)


완전하진 않지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추억을 나누어 주려 한다. 다 잊어도 좋다. 따뜻했던 그 느낌만은 기억해 주기를.


2022.01.31

섣달그믐 달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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