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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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란 건 없었다. 사전을 뒤져봐도 없다. 사투리도 아니다. 내가 머무는 자리, 안온함이 있는 나의 공간, 그것을 '적'이라 불렀다. 오래 찾았지만, 정의도 뜻도 소멸했다.
어원도 모른 채 헤맸던 걸까. 내 집은 없었다. 안온함 대신 집이란 단어를 대입하면 그렇다. 스스로 셈을 치르지 못한 자취방부터, 직접 구매한 집도 마찬가지다. 안온함은 충분치 않았다.
주변을 의식하며 살았다. 안 그런 척했지만, 그렇게 살았다. 그 안에 너도, 나도, 그리고 우리도 없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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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는 어머니가 계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급히 마련한 빌라는 좁다. 기억의 틈이 보이지 않는다. 뜯어진 벽지, 바랜 사진틀의 고향은 이제 없다. 내 정서의 정수인 어머니, 당신이 전부가 될 수 없음이 아프다.
발 많은 것들은 원초적 공포를 준다. 낌새만 느껴도 경기를 일으켰다. 시골집 배수구, 찬장에서 기어 나오는 바퀴벌레를 봐도 현실 같지 않다. 그저 여상하다. 나는 그곳에 없다. 내 그리움이 아니니 꿈결 같다.
내 것이 아닌 걸 안다. 바꿀 수 없음을 안다. 무력함은 무서움을 상쇄한다. 웅크려 소망한다. 아프지 않으시길. 훌쩍 앞서 가시지 않길. 여상함이 부서질 때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자기만 아는 자식을 낳은 당신의 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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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와 살던 기억이 잊힌다. 하염없이 계단을 오르던 강북의 빌라, 살아도 살아도 낯설던 새 아파트, 함께 하되 기쁨을 몰랐다. 머물되 그곳에 나의 '적'은 없었다. 선하지 않은 관성처럼 시간이 지나간다.
혼자 산다. 현실은 버겁다. 싸구려 월세는 무딘 송곳 같다. 끝없이 눌러 짜부라지게 한다. 여운이 긴 고통이다. 앞보다 밑을 보며 산다. '적'이란 말을 기억해냈다. 발 많은 벌레는 없지만, 자극도 감흥도 없다. 흐르듯 그저 여상하다.
그냥 그렇게 흐른다. 슬픔도 아픔도 없다. 조금씩 잊힌다. 가끔 에이듯 후벼 파 오는 놈도 있다. 못 본 채 모르는 채 덮고 산다. 익숙함은 잔인하다. 나이도 열정도 현실도 파먹는다. 그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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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통장 잔액이 498만 원이었다. 돈이 떨어지면 죽을 생각이었다. 김밥 하나, 바나나 우유 하나를 사며 셈을 했다. 월세와 생활비를 쓰며 계산했다. 남은 돈은 마치 카운트 다운 같았다. 잔인했으나 후회하지 않았다.
나는 죽지 않았다. 잔액은 제로가 되기 전 마이너스로 넘어갔다. 경계는 숫자가 아닌 의지였다. 찬란하든 볼품없든 스스로 정한다. 모든 것의 값을 알지만, 모든 것의 가치는 모른다. 이제 어디든 '적'이 없음을 안다. 내가 만든 단어임을 안다.
불안과 두려움을 기꺼이 안는다. 머무는 곳 어디든 나는 나로 남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