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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린 Jun 02. 2020

그리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4. 온라인 개학은 엄마 개학이었다

  온라인 개학은 엄마 개학이었다. 아이는 EBS 호랑이 선생님을 좋아했다. 선생님이 “이제 여러분이 막대 인형 만들어보세요”라며 수업을 마치면, 아이가 색종이와 가위를 찾았다. 둘째는 풀을 가지고 와서 자기도 하겠다며 자리를 잡았다. “엄마, 도와줘.” 설거지를 하다가, 빨래를 개다가 아이 옆에 앉았다. 나는 지금껏 아이와 공부한 적이 없다. 자기 전에 읽는 그림책 두 권이 다였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학습지를 풀었고, 입학 전에 한글을 읽고, 더하기 빼기를 했다. 공부 때문에 엄마와 멀어지는 아이를 여럿 보았기에, 그 정도면 충분하지 싶었다.


  온라인 개학도 수업 일수에 들어가니,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 받은 국어, 수학 문제집을 매일 두 장씩 풀었다. 물론 채점과 해설은 나의 몫. 가르치려고 하니 욕심이 한이 없었다. 글쓰기와 영어, 한자와 피아노까지 하루가 모자랐다. 아이는 하기 싫다며 울었고, 나는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열심히 해야지.” 내가 아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었다. 의무감에 목소리가 높아졌고, 아이는 간신히 그날의 책임만 채웠다. “엄마, 왜 우리 안 놀아줘?” 함께 웃던 시간이 사라졌다. 아이 공부가 끝나면 까무룩 혼자이고 싶었다.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정말 안 되는 것,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 단계에 갈 때, 자유의지를 획득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 이진우, 《니체의 인생 강의》, 138쪽.


  《니체의 인생 강의》는 ‘권력 의지’, ‘초인’, ‘영원회귀’의 개념을 거쳐 ‘자기 자신으로 사는 법’에 이른다. 낙타, 사자, 어린아이라는 3단계 변화는 곧 ‘나’에게 닿는 길이다. 낙타는 무거운 것을 견디는 힘, 사자는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자유, 어린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말한다. 낙타가 정(正)이고 사자는 반(反)이라면, 어린아이는 순수한 합(合)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무너진 나를 어서 낙타처럼 헤쳐 나가라고 다그쳤다. 그것은 고스란히 아이의 몫이기도 했다. 정해진 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의 삶을 살라고 말했지만, 정작 나는 낙타의 세계가 편했다. 성실히만 살아본 나였기에, 자유는 오히려 낯설고 무서웠다.


  계획에 어긋나고, 바르지 않은 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낙타처럼 살아야 한다고, 엄마 말만 들으면 된다고 아이를 끌어당겼다. 아이가 내 생각과 어긋나면 조바심이 났다. 신비 아파트에 나오는 모든 귀신 사연을 말하고, 흔한 남매를 보고선 아빠에게 “정답, 돼지”라고 할 때면 막아서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잠옷 차림으로 집안을 굴러다니고, “엄마가 우리를 낳았잖아. 근데 왜 혼내?”라며 두 눈을 부릅뜨고, 엄마가 시키는 것은 죄다 싫다며 고개를 돌리는, 시간이 있어 아이는 숨을 쉬었을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들어볼까요.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하며,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 최초의 운동, 거룩한 긍정이다.” - 위의 책, 144쪽.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집에 있는 간식을 모두 꺼내 주었다. 세 끼 밥만 잘 먹으면 과자나 젤리, 사탕은 마음껏 먹기로 했다. 두 아이는 “어린이날 정말 좋다”라며 신났고, 쉬지 않고 마이쭈, 초콜릿, 자갈치, 뿌셔뿌셔를 입에 넣었다. 방문에 CU 간판을 붙이고 편의점 놀이까지 시작했다. “이제 그만”이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한 번 넘긴 자유를 되찾긴 늦었. 그 작은 몸이 온통 불량스러운 것으로 채워지자, 목소리를 낮춰 했다. “얼마를 먹어도 상관 안 할 건데, 배 아프거나 똥 못 싸면 엄마도 몰라.” 첫째는 “괜찮아”라며 고래밥을 또 뜯었다. 아이셔를 손에 든 둘째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도 아프면 내가 어떻게 안 되니까 상관 써줘.” 그 천진한 말에 깜빡 넘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둘째는 신물이 올라온다며 훌쩍였다.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말했. ‘틀려도 돼, 넘어져도 돼, 실수해도 돼.’ 최초의 운동, 거룩한 긍정, 그렇게 어린아이였던 ‘나’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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