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린 Jun 12. 2023

너는 나의 계절이야

이력서에는 ‘가사’를 쓰는 칸이 없다

“엄마, 빨래 좀 해. 입을 옷이 없어.” 아이의 말투가 실수한 사원을 혼내는 사장님 같았다. “엄마가 요즘 바빴어. 오늘은 꼭 해놓을게.” 아이는 청색 고무줄 바지를 입고 나왔다. 잠옷에서 잠옷으로 갈아입은 느낌이다. 누런 얼룩이 묻은 티셔츠까지 입으니 아이가 반쯤 구겨진 듯했다. 오늘따라 가방이 더 무거워 보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아이의 축 처진 발걸음이 내 책임인 것 같다. 


세탁실 문을 여니 바구니가 빨래를 토하고 있다. ‘아이는 전생에 슈퍼맨이었나?’ 팬티와 바지가 하나가 되어 뒤집혀 있다. 세탁물을 바로 세탁기에 넣으면 좋으련만 대부분 애벌빨래를 해야 하는 것들이다. ‘떡볶이를 온몸으로 먹었네.’ ‘휴지로 닦으라니까 또 옷에 닦았어.’ ‘카레는 진짜 안 지워지는데….’ 아이가 학교에 간 것이 다행이다. 집에 있었다면 잔소리를 퍼부었을 것이다. 얼룩 제거제를 뿌리고 비누칠을 한다. 아무리 문질러도 천연 염색한 듯 흔적은 남겠지만 대단한 임무처럼 비비적댄다. 세숫대야에는 양말이 한가득이다. 그냥 세탁기로 던졌다가는 빨래를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닌 상태가 된다. 거무튀튀한 발바닥 때문에 빨래통에 던지려는데 어렴풋이 피죤 향이 나는 상황…. ‘학교에서 실내화를 안 신고 다니나?’ 아이 양말에 그려진 스마일이 나를 비웃는 것 같다.  


설거지와 청소까지 마치니 열 시가 넘어 있다. 집안일은 하지 않음으로써 기억된다. 아무도 나에게 밥과 옷을 고마워하지 않는다. 다만 손 놓았을 때 “배고파. 밥 줘.”, “이거 왜 안 지워졌어?”라는 불평을 듣는다. 나도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엄마가 다려준 옷을 입고, 엄마가 치워준 책상에서 공부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른데 나의 성장을 어디에도 기록할 수 없다. 이력서에는 ‘가사’를 쓰는 칸이 없다. 


결혼 전에는 상차림이 장보기부터 시작되는 것을 몰랐다. 시금치는 다 똑같고, 미나리는 사계절 나오는 줄 알았다. 결혼 10년 차인 나는 이제 1월에는 섬초(전남 신안 지역에서 자라는 품종 개량된 시금치)를, 3월에는 미나리를 먹는다.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비금도 섬초는 첫눈처럼 달다. 짧은 잎과 보라색 뿌리에 남풍이 담긴 까닭이다. 춘분의 한재 미나리는 향기롭다. 겨우내 웅크렸던 싹이 봄을 만나 막 움텄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절의 향이 강할수록 식탁에서는 소외된다. 다듬고 데치고 무쳐서 올린 섬초 요리를 보더니 두 아이가 울상이 된다. “치킨 남은 거 없어?” 어젯밤 냉장고에 넣어둔 치킨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주니 그것으로 밥 한 공기를 다 먹을 기세다. “나물도 먹어야지.” 날카로운 내 목소리에 아이가 섬초를 점만큼 떼어먹는다. 내 고된 수고가 남긴 것은 고성뿐이다. 엄마의 일만큼 비생산적인 것이 또 있을까. 어차피 먹지도 않을, 고작 똥밖에 되지 않을 것을 매일 만들고 차리고 치운다.


계절이 없다면 어떨까. 계절이 건기와 우기뿐인 다낭에 갔을 때 그곳의 엄마들은 옷 정리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내심 부러워했다. 짧은 옷으로 건기를 보내다가 우기가 오면 가볍게 걸칠 외투 몇 개만 꺼내면 될 테니까…. 겨울을 밀어내고 봄이 올 때, 여름 끝에 가을에 다다랐을 때 엄마인 나는 다가오는 계절을 넋 놓고 사랑할 수만은 없다. 환절기에는 옷 정리를 해야 한다. 서너 살 터울 아이를 키우는 사촌들이 보내준 택배 상자가 몇 달째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상자를 모두 열어 크기와 두께를 가늠하며 아이가 입을 수 있는 옷을 꺼낸다. 잘못하면 옷 상자에만 있다가 못 입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나서 나도 아이의 옷을 버릴 것, 물려줄 것, 보관할 것으로 나눈다. 옷 배달까지 마쳐야 비로소 정돈이 끝난다.


2005년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황정민이 말했다. “무대를 위해서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하면 돼요. 그리고 스포트는 제가 다 받아요.” 결혼 전 나의 삶은 조명을 받는 쪽이었다. 나는 아직도 반짝이고 싶다. 30년 가까이 무대에 오르기만 했던 나는 그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저절로 밥상이 차려지고, 알아서 옷이 깨끗해지는 줄 알았다. 학업을 위해, 취업을 위해 뛰고 또 뛰었고 그것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생산적인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엄마는 내 무대 뒤편의 삶을 기꺼이 감당해주었다.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1월의 섬초와 3월의 미나리 따위는 제쳐 두고, 옷 정리를 안 해도 되는 계절 없는 나라를 꿈꾸며, 내 이름 석 자로 빛나고 싶었다. 


집 밖에서의 노동은 재화가 되고, 노력은 경력이 된다. 반면 집안에서의 노동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엄마의 일은 소모적이다. 빨아놓은 옷도, 치워놓은 방도 곧 더러워진다. 학교에서 살림과 돌봄에 대해 배웠다면 결혼을 안 했을까. “엄마, 심심해. 같이 놀자.” 두 아이는 나의 시간을 끝없이 필요로 하는데, 애 본 공은 없다고 싸우거나 다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살림에서 보람을 찾아보려고 애쓰지만 돌아오는 것은 “빨래 좀 해.”, “왜 맛없는 반찬만 있어?” 같은 핀잔이다.


이쯤 되면 엄마로 사는 삶을 버려야 할 것 같은데 여전히 잘 붙들고 있다. 상차림에 더 신경을 쓰고, 아이들과 놀 시간을 만든다. 이 의미 없는 날이 싫지 않다. 평생 나의 엄마를 곁에서 철없이 살았다면 어땠을까. 점점 계절을 잃어갔겠지.


하루가 다르게 하늘이 높아지던 초가을이었다. 아이가 서풍을 머금고 말했다. “엄마, 봄은 따뜻하고 가을은 시원해. 봄은 겨울이 끝나고 오니까 따뜻한데 가을은 여름이 끝나고 오니까 시원해.” 내가 답했다. “봄이랑 가을은 정말 다르네.” 봄가을을 똑같다고 여겼던 지난날의 내가 낯설었다.


위대한 것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오고 가는 계절이 그렇고, 뜨고 지는 해가 그렇고, 들이쉬고 내쉬는 숨이 그렇다. 밥을 똥으로 바꾸고, 옷에 흙먼지를 묻히고, 방을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아이가 그렇다. 놀랍다. 똥에도, 흙먼지에도, 쓰레기에도 모든 계절이 들어있다. 너는 나의 계절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그 많던 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