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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Apr 03. 2024

백스윙

[안기자 골프 2] 골프의 길(도)을 찾아서

거짓말. 이건 거짓말이야. 어쩜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있지? 전반 9홀이 끝나고 맥이 탁 풀렸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제1원리를 깨달을 때, 어떤 사악한 영이 자신에게 잘못된 생각을 불어넣어도 ‘당(생각)하는 나’의 존재는 확실하다고 했는데, 맞다, 파인리즈CC 파인 코스에서 사악한 영이 안기자에게 장난질을 치는 게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


첫 홀이야 화면조정 시간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2홀에서 쿼드러플 보기, 3홀에서 양파, 4홀에서 더블 보기, 5홀에서 다시 양파….(이하 정신 건강에 해로우니 생략.) 아프다는 김차장은 펄펄 날고, 밤새 운전한 김사장도 씩씩하게 전진하고 있는데, 내게서는 ‘씩씩’하는 콧김소리만 들린다. ‘괜찮아, 잘했어. 천천히, 한 번 더.’란 주문을 외울 힘도 사라졌다. 그냥, 힘들 뿐….


이번 고성 라운드를 앞두고 죽음을 생각했다. ‘연습이 힘들어 죽겠다.’, ‘안 맞아 짜증 나 죽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필드에 나가는데 나만의 스윙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들다가, ‘나중에 죽음의 순간에 내 인생을 찾지 못하면 참 슬프겠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18홀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은데, 81세 인생(추정)은 오죽할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사실 나는 내가 평생에 싱글 골퍼가 되거나, 빠른 시일에 보기 플레이어가 될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농사를 지으며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고, 고수익 투자보다 낮잠을 택하는 안기자는 필드에 자주 나갈 수 없다. 매일 집 옆에 쳐놓은 그물에 대고 치고, 일주일에 한 번 연습장 가고, 분기별로 김사장, 김차장과 함께 라운드를 가는데, 어떻게 ‘생각대로’ 잘 칠 수 있겠는가.


안기자의 낮은 한숨이 들렸는지 김차장이 다가왔다. “원래 필드에서 연습장에서 치는 거에 30%만 나와도 잘 치는 거야.” 난 지금 3%로 안 나온다고! 김사장이 거들었다. “골프는 결국 잔디밥이야. 경험이 쌓이면 될 거야.” 그냥 쌀밥은 안 되고? 멀리, 울산바위가 보였다. ‘안기자 혹시 호연지기라고 들어봤나? 숨 크게 들이쉬고 지금은 백스윙하는 시기라고 생각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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