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물려주는 일
2018. 5. 23. 15:31 ・
당대의 보석들과 함께하는 삶
월간 샘터의 발행인 김성구 산문집 <좋아요, 그런마음>을 읽다 보면, 그의 지인들에게 욕심이 난다. 이토록 당대에 이름을 떨친 훌륭하신 분들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사람이라니.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이 드는 것. 그리고 그의 마음에서 나오는 글이란 어떠할지 궁금해 지는 것.
<좋아요, 그런 마음>에 등장하는 저자 김성구의 지인들 중에 내가 가장 가슴에 크게 남은 사람은 금아 피천득 선생(1910~2007) 이다. 피천득 선생은 시인 겸 수필가, 영문학자로서 그의 <인연><수필><은전 한닢>등은 국내수필의 정수로 평가 받고 있다(p.40). 물론 피천득 선생 외의 저자의 지인인 다른 이들도 너무 훌륭하신 분들이라 따로 언급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이다.
예를 들자면, 영문학자이자 수필가(1952~2009)이신 고 장영희 교수. 장 교수는 소아마비와 세 차례의 암 투병 속에서도 교수, 영문학자로서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을 실천했으며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문학의 숲을 거닐다> 등의 저서를 남겼다(p.89).
스님이자 수필가 법정 스님(1932~2010)도 있다. 법정스님은 <홀로사는 즐거움> <산방한담> <무소유> 등의 책을 펴내고 이를 직접 실천하는 삶을 사신 분이다.(p.96). 물론 <무소유>등의 책의 판매를 통해 아주 많은 소유를 하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그는 더 큰 어른으로 남은 것이다.
수녀이자 시인인 이해인 수녀(1945~ )도 그의 가까운 지인 중의 한 명이다. 이 수녀는 자연과 삶을 따뜻하고 서정적으로 그린 시로 대중과 소통하는데, <기다리는 행복><사랑할 땐 별이 되고> 등의 책을 썼다. 이처럼 <좋아요, 그런 마음>에 등장하는 샘터 김성구 발행인과 그의 지인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당대를 풍미한 인물들의 뒷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아서 흥미롭다.
피천득 선생과 목욕탕 데이트를 하는 사이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도 저자가 시인이자 수필가이신 금아 피천득 선생에게 매해 세배를 가고, 가끔씩 목욕탕을 같이 갈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이 가장 부럽다. 대가와 함께하는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모든 삶이 생각하기에 따라 다 그렇겠지만, 대가를 옆에 둔 삶이란, 그저 소소한 일상도 지나는 것이 너무 아쉽고, 또 지나는 시간이 쌓이는 것이 생에 가장 중요한 보석과도 같을, 그런 삶이지 않을까? 이 사람과 나누는 대화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한 것. 잊고 싶지 않아 늘 메모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은 시간들. 훌륭한 사람을 옆에 두고 그와 늘 함께하는 일이란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의 인생에서 피천득 선생과 함께한 시간들은 얼마나 훌륭한 시간들이었을까를 생각하며, 나는 부러움을 숨길 수가 없다.
훌륭한 아버지를 둔 남자
아마 저자가 이렇게나 훌륭하신 분들과 가까이 친분을 유지하면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글에서 언듯 언듯 내 보여지는 것처럼, 저자 자신의 노력에서 기인한 부분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그가 피천득 선생을 비롯한 당대의 대가들과 가까운 사이일 수 있었던 까닭 중에 어쩌면 아주 중요한 부분이, 그의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샘터 창립자이신 김재순이었다. 김재순은 제13대 국회의장(1923~2016), 최인호 정채봉 등 다양한 문화인을 발굴, 지원하며 문화예술인 후원에 앞장섰다(p.182). 저자도 부모님에 대한 존경 또한 감추지 않는다. 이런 훌륭하신 분을 아버지로 두었다니, 그 영향이 어찌 없을 수가 있을까? (물론 이런 식의 섣부른 판단이란, 훌륭한 부모님을 둔 자식들로 하여금,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한 본인의 노력이 늘 낮춰 평가 당하게 되는 억울함을 불러오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아이에게 돈을 물려주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내 아이가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을 물려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거기에서 경쟁력이 갈리는 거라고 말이야.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것이야 다들 고민하는 것 일 테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그 아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세상에서 먼저 자리잡고 일을 해내고 있는 인생의 선배를 만들어 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 까 싶은 거지. 근데 그러려면 내가 먼저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전업 주부로 지내던 시절에 앞으로의 나의 미래와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언젠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했던 말 들이 문득 기억이 난다. 아이의 미래를 열어주고, 아이에게 훌륭한 사람들을 옆에 둘 수 있는 복까지 열어줄 수 있으려면 부모는 얼마나 바지런해야 하는가? (물론 내 아이는 알아서 또 잘 하겠지만 말이다. )
내 스스로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어느 모로 보나 더할 나위 없는 사람들을 근거리에 두고 왕래하며 지내는 동안, 내 아이는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면서 또한 사람을 얻게 되는 시스템. 엄마가 아이들 학원 뺑뺑이를 돌리기 위해서 엄마가 아이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엄마를 따라다니는 생활을 통해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시스템. 돈으로도 얻을 수 없는 사람을 물려주는 시스템.
그런 부모가 되는 것.
나는 그런 부모가 되었나.
나는 그런 부모가 되어가고 있나.
예전 글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이미 물려준 내 유전자 이외에 나는 무엇을 더 줄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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