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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유 Feb 24. 2024

단 하나, 건강

가족이 똘똘 뭉치는 지금

2019년 코로나로 시작해 끊이지 않았던 코로나 이슈. 

최근 설날에도 또 코로나가 걸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지인분은 설날에 코로나 걸려서 가족들도 오지 말라고 했다던데.


4년 만에 나도 코로나란 것에 걸렸다. 설 연휴 차로 이동하기에 히트텍을 벗어던지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2일간 언니네 가족과 함께 다녔다. 내가 단독으로 움직인 것도 없고, 마지막날 고깃집에 가서 저녁을 먹은 것 외엔 별다른 게 없었다. 주 3일 가던 요가. 그게 다였다. 


처음엔 감기 증상처럼 왔다. 몸살 난 것처럼 몸이 으스대다가 감기인 것 같다며 2번 정도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았다. 이상하게 링거를 맞고 온날 약빨로 잠이 오지 않고 에너지가 넘쳐났다. 그때까진 코로나라곤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목이 붓고 식도염처럼 목에 무언가가 걸린 것 같았다. 새벽 1시 아이가 열이나 울기 시작했다. 열이 39도까지 올라 땀이 났다. 아기는 아프다고 찡찡거리지. 


아기는 기저귀만 채운 채 옷을 벗겨냈다. 불덩이처럼 오르는 열을 잡기 위해 가제 손수건에 물을 묻혀 계속 데어주었다. 집에 마침 타이레놀 시럽이 있어서 체중에 맞춰서 먹였다. 이제껏 예방접종 열도 안 나서 한 번도 해열제를 먹여본 적이 없었다. 열은 안 떨어지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체온을 제고 또 제었다.


보고 있던 남편이, 아직 10분도 안 됐는데 기다려보자고 했다. 순간, 아기는 열나면 큰일 난다고 했던 말이 맴맴 돌아 '알겠다'라고 했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아기 옆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편이 든든했지만, 어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애꿎은 남편에게 계속 손수건을 갈아주라며 손수건을 건넸다. 아기를 보다 지친 남편은 옆에서 잠이 들고. 나는 남편과 바톤 터치를 했다. 열이 어찌나 안 떨어지던지. 새벽 4시까지 잠이 안 와서 그때까지 오디오북을 들으며 아기 옆을 지켰다. 마지막으로 체온을 쟀을 땐 37.8 정도였다. 


아침이 밝아 오자 아기는 다시 열이 났다. 혹시나 모를 입원에 대비해 짐을 챙기고 병원 문이 열기를 기다렸다. 집을 나서기 전 집에 있던 코로나 키트를 꺼내 남편과 테스트를 했다. 난 선명한 2줄, 남편은 1줄. 

남편과 나는 코로나 내내 '우린 코로나 안 걸릴 건가보다' 하며 4년을 버텨왔다. 그렇기에 남편은 더 자부심(?)이 강했다. 사실 우리야 걸릴 수 있지만, 아기는 어쩐단 말인가. 


병원에 아기를 데리고 가서 2시간을 기다렸다. 병원엔 어찌나 아픈 아이들이 많은지. 우리 아가도 엄마에게 옮아서인지. 코로나 약양성이라고 문자를 받았다. 


코로나 동안 우리 가족은 강제 고립을 선택했다. 누구에게 옮길 데도 없지만 집에서 푹 쉬기로 했다. 아가는 첫날 새벽만 열이 났지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다만, 잠을 5-6시간 동안 안 잔다는 거. 그것 왜엔 별 다른 증상이 없었다. 받아온 감기약과 염증 약도 2-3번 먹이고, 더 이상 먹이지 않았다. 증상이 없었기에. 


중요한 건 엄마와 아빠의 증상이었다. 남편은 당일 병원에 다녀와서도 쌩쌩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부터 목이 잠기고 가래가 끌었다. 아직도 남편은 자신이 코로나가 아니라고 하지만, 꼭 검사를 해서 두줄이 나와야 코로나인가.


코로나 기간 미역국을 끓여 내내 먹었다. 그리곤, 배달음식을 시켰다. 사실 맛이 안 느껴지기에 먹고 싶은 것도 많지 않았다. 소화가 되지 않고, 약이 너무 독해서 위에서 약맛이 더 올라와 견디기 힘들었다. 친정엔 코로나인 거 알렸지만, 시댁 식구들은 아무도 모른다. 괜히 이야기해봤자 걱정만 하실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기간, 난 고립했다. 알람을 끄고, 해야 할 일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 식사, 육아에만 집중했다. 단 하나 원씽 책을 읽는 것과 퇴고는 꼭 했다. 이제껏 발산하고 나가고, 끊임없이 했던 삶에서 단조로운 삶으로 바뀌었다. 사실 이랬어야 됐다. 그런데, 난 지금의 상태에서 뭘 더 하고, 더 배우고, 더 많은 걸 하려 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이 것도 충분한데 무얼 바라고 더더하고 싶어 했을까.


난 아마도 미래 에너지를 계속 끓어와서 사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밤을 새는 날도, 많은 걸 해내는 날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쉬거나 자야 하는 날들도 있었다. 난, 매일 자고 일어나면 에너지가 충전되어 하루를 마음껏 누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단 하나는 건강이다. 내가 추구하는 삶이 무언가 많이 하는 삶, 이루고 성공하는 삶이 아닐지 모른다. 요즘 마인드나 시각화를 하며 더 큰 꿈을 꾸지만 정작 내가 바라는 삶은 소소한 행복일지도 모른다. 


소소한 행복도 내가 건강해야 누릴 수 있다. 코로나 이후, 미각을 잃고, 목소리를 잃었지만 건강을 잃고 보니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었다. 2024년엔 건강이 나에게 이슈이다. 건강해야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 또한 사랑하는 가족을 안아줄 수 있고,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기간 칩거하다 시피하며 가족과 똘똘 뭉쳐 집에서 보냈다. 이게 가족인가! 함께 웃고,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함께 편안한 밤을 보내는 것 내가 꿈꾸며 사는 삶의 기본이 되는 것 같다. 이제 가족과 함께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를 보낼까. 늘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한다. 그 삶 속에 건강이 꽃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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