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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유 Mar 07. 2024

나 오늘, 나랑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거든!

기다려! 빨리 갈게!

요즘 새벽마다 아기가 배가 고프다고 이가 아프다고 울고 보챈다. 아기들은 이가 다 날 때까지 새벽마다 깨거나 운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걸까. 새벽 5시에 내면소통 책을 같이 읽는 모임도 며칠 째 참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 새벽 3시에 깨서 4시 반까지 안 자는 건 너무 하잖아. 5시까지 버티다 이내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들기 전에 10시 20분에 있는 요가도 취소했다. 잠을 못 자서.. 못 일어나 것 같단 생각에.

다이어리를 듬성듬성 쓰고 있는데, 버젓이 내 손으로 적은 일정들이 기억났다.


10시 20분 요가

1시 스타벅스 글쓰기


다행히 난 9시쯤 일어났다. 4시간 정도 자고 일어난 샘이다. 아침에 전화를 드려서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연락을 드렸더니 수업에 참여 할 수 있다고 하셨다. 휴. 다행이었다. 난 회사 다닐 때도 그러더니 5-10분 차이로 늦을 것 같아 대중교통을 포기하고 택시를 불렀다. 새벽도 아닌데 거의 총알택시 수준이었다. 뻥~ 뚫린 동서고가로를 달려 요가원에 도착했다. 무려 20분이나 일찍. 몸을 풀고 계신 선생님을 뒤로 한 채, 통창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바람에 따라 흘러가는 게 눈에 보였다. 


난 늘 나에게 불친절했다. 출근하는 시간이 50분이면, 일어나서 씻는 시간, 버스 기다리는 시간, 걷는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딱 그 시간만큼만 시간을 주었다. 늘 허둥지둥 대고, 늦지 않기 위해 종종걸음이었다. 늘 아무런 변수도 생각하지 않고 최소시간안에 완벽하게 도착할 수 있을거란 계획을 세웠던거다. 물론 오늘 택시를 탄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경제적으론 나에게 불친절했을지 모른다. (만약 돈이 없었다면, 늦잠을 자고, 비싼 택시비를 내가며 스트레스를 더했을지도 모른다.) 오늘 요가를 쉬었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잠을 깨워 운전을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행동이 느리고, 판단이 빨리 서지 않았기에. 그럼에도 내가 생각한대로 일정을 소화해 내고 싶었다.


택시를 타고 요가원에 가는 동안 쉬어갈 수 있었고, 일찍 도착해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또 눈을 감고 명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부턴 택시비 들이지 않고, 지각하지 않게 요가원에 와야지 다짐했다.)


요가를 마치고 근처에서 밥을 간단히 먹었다. 그리곤 요가원 건너편에 있는 스타벅스를 찾았다. 음료를 시켰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꺼냈다. 내가 나와하기로 했던 두 번째 약속. 마침 알람이 울렸다. "스벅 글쓰기"


자리를 진득하게 잡고, 4시간 동안 집중해서 퇴고 작업을 했다. 나와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아기가 나의 잠을 설치게 만들었지만, 나는 오늘 내가 하기로 한 요가와 퇴고 작업을 해냈다. 


다음날은 차를 가지고 나갔기에 요가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남편과 점심을 먹으며 오후 계획을 이야기했다.


"당신아. 오늘은 일정이 어떻게 돼?"

"나? 오늘 1시에 00대학교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나랑 글쓰기로 약속이 있어."

"응? 당신이 당신이랑 약속이 있다고?"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남편은 내가 오늘도 나가서 퇴고 작업을 하겠다는 말에 흔쾌히 가라고 했다.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내가 남편에게 내뱉은 말이니 안 갈 수가 없었다. 이렇게라도 내가 생각한 벙커에 나를 데려다 놓지 않으면 또 미루게 될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문득 내가 어떤 사람과 1시에 스타벅스에서 만날 약속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날은 아기도 잠시 보고, 남편이 커피와 간식을 사러 다녀와서 2시에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내가 누군가 약속했다면, 일정이 있다고 서둘러 움직였겠지.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마음이 조급했을 거다.


정말 아주 중요한 미팅이었다면, 난 점심도 마다하고 이동하고,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난 늘 나와 약속을 미뤄왔다. 중요한 미팅과 만나야 할 사람이 없었다면? 

움직이지 않았을 거다. 약속이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렸을 거다.


내가 만나자고 약속했던 나는 '내'가 오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개팅에서 폭탄남을 만난 것처럼 퇴자를 놓았을 거다.


난 늘 다른 사람들과 약속이 중요했지, 나와의 약속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나와의 약속은 다른 사람과의 약속에 밀렸다.

소개팅에서 폭탄남보다 더 못했던 나였다.


요즘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한다. 약속 시간에 늦어서 허둥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찍 준비한다. 내일 외출 일정이 있으면 미리 가방을 챙겨두고, 부수적인 시간 계산을 해서 나갈 시간을 정한다. 적어도 최소 10분 전에 도착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내 체력을 고려해 하루에 많은 일정을 잡지 않는다. 컨디션이 좋을 때 집중할 수 있으니, 최소한의 일정을 계획해서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나 지금 나랑 약속 있어"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 누구와의 약속보다 내가 나와하기로 한 약속을 기억해 주는 것.

그리고 나를 퇴짜 맞게 하지 않는 일. 나에게 중요한 일을 해내는 힘.

이것이 진정 나를 위한 친절이 아닐까?




요즘 하고 있는 자기 친절

1. 하루 4시간 나에게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2. 내가 나와 약속을 지키기

3. 내가 서두르거나 허둥지둥대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기

4. 하루에 많은 일정 잡지 않기

5. 방해 받지 않는 시간 확보하기

6. 나의 계획을 역산(거꾸로 계산)해서 미리 준비하기

7. 나의 건강을 위해 하루 운동 꼭 하기

8. 중요한 일이 끝나지 않았을 때 다른 집안일이나 잡무에 치우치지 않기

9. 나의 컨디션과 감정에 따라 일정변경하지 않기

10. 중요한 일 할 때, 휴대폰 무음, 카톡 알림 끄기, sns 안들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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