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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Dec 31. 2020

"칙칙" 대신 "유쾌"로 간다
<보건교사 안은영>

- 매력을 다 꼽을 수가 없다


9월에 공개되자마자 이틀 만에 완주했던 <보건교사 안은영>. 약간 아리송한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인 어떤 에피소드 때문에라도 한 번 더 봐야지, 생각하다 시간이 흘러 12월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연말 바쁜 일들을 어느 정도 정리해두고 다시 한번 정주행. 좋았던 장면들은 여전히 좋았고 이번엔 인물들의 표정과 거기에서 드러나는 마음들이 조금 더 깊게 들여다 보였다. 정말이지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경미 감독은 영화에서 하려는 말이 확실하고, 해야 할 말은 똑부러 지게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미쓰 홍당무>(2008)의 양미숙(공효진)도 그렇고, <비밀은 없다>(2015)의 연홍(손예진)도 그렇다. 하나같이 악착같고 원하는 것이 명확하다. 그리고 그걸 갈 때까지 밀고 나간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도 이경미 감독은 안은영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각 에피소드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하는 이야기를 기발하고 자유분방하게 풀어낸다. '누가 뭐래도 이 이야기는 꼭 할거야' 이런 태도 같은 게 있달까. 그치만 분명히 이야기를 하면서도 특유의 명랑함과 유쾌함을 놓치지 않는 모습이 그녀의 작품을 더욱 살아있게 한다. 어쩌면 이경미 감독의 이런 태도가 곧 '안은영'의 모습으로 구현된 것일테다.  


<보건교사 안은영> 포스터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강렬하고도 마음을 사로잡는 장면들이 정말 많다. 그중에서 결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인 에피소드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5화 '강선'의 이야기 

검정색 수트를 입고 어딘가 텅 비어있는 듯한 모습으로 은영의 뒤를 조용히 걷는 이, '강선'(최준영)의 이야기에서 나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를 보고 이 작품을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에피소드는 '옴잡이' 백혜민(송희준)의 이야기가 한참 전개되던 중에 시작된다. 영원을 살며 죽고 다시 존재하기를 반복하는 혜민이가 스무살이 넘어도 계속해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안은영은 혜민을 설득하고 수술할 방법을 찾으며 그녀가 "남들처럼 살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던 중 은영에게만 보이는, 강선이 등장한다. 


혜민의 삶도 아프지만 그래도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그녀에 빗대어져 강선의 뒷모습은 한없이 더 쓸쓸해 보인다. "피하지 못해 당해버린" 죽음. 안은영조차 어찌할 수 없는 죽음. 강선은 그 죽음을 돌이킬 수 없다.


안은영은 꿈 속에서 강선이 죽은 공사현장에서 하염없이 울다가, 크레인이 떨어지던 순간을 목격한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그리고 크레인에 깔린 이가 다름 아닌 은영 자신이라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 깬다. 크레인이 떨어지는 걸 뻔히 알면서도 피할 수 없어 당하고야 마는 죽음. 은영은 어린 시절 자신이 '젤리'를 본다는 사실을 믿어준 강선이를 그렇게 떠나보낸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감당해야 하며 때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서 은영은 한없이 서럽기만 하다. 



이 에피소드에서 강선의 크레인 사고는 꽤 큰 비중으로 다뤄진다. 비단 "일하다 죽었다"는 강선이의 대사만으로 끝나지 않고, 은영의 꿈속에서 구체적으로 재현된다. 크레인이 정말 떨어지고 그 아래 사람이 있다. 감독은 꼭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사람이 죽고 있다고. 이 죽음을 똑똑히 보라고 말이다. 


"이걸로 나 혼자 어떻게 싸워, 김강선". 공사현장에서 주저앉아 우는 안은영을 따라 같이 울었다. 재가 되어 날아간 강선이를 생각하며 은영의 마음에는 얼마나 큰 구멍이 뚫렸을까. 마음이 아렸다. 



1-2화 '좀비'가 된 아이들

사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시작부터 빵 터뜨린다. 은영과 인표(남주혁)가 압지석을 건드려 목련고 아이들이 좀비떼처럼 옥상으로 몰려가는 장면은 시작부터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아라(박혜은)를 좋아하는 승권이(현우석)의 '젤리'는 복제인간처럼 늘어가고 아이들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옥상으로 올라가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떨어져버릴 것만 같다. 젤리 몬스터가 아이들을 모두 삼켜버릴 참이다!


플라스틱 칼의 에너지는 떨어진 지 오래, 비비탄총을 쏴도 에너지가 한참 부족하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절체절명의 시간. 그래도 안은영은 포기하지 않는다. 옥상으로 겨우 올라온 홍인표의 손을 잡고 에너지 만땅 충전 후, 비비탄 총알은 마지막 순간 젤리 몬스터의 입 속으로 정확히 명중!


바람은 잠잠해지고 아이들은 다시 정신을 차린다.


옥상의 철 울타리가 조금씩 휘어질때마다 심장이 쫄깃쫄깃해진다. '설마 아이들이 떨어지지는 않겠지', '근데 떨어질 거 같아 어떡해!!'  내내 이런 마음이었다. 



그래도 이경미 감독이 아이들을 추락하게 두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유는 있었다. 이 이미지는 내게 20140416을 기억하게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씨네21> 맨 마지막 페이지 칼럼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바다’의 의미망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김애란의 지적은 세계와 관계 맺는 당대인의 태도·욕망·무의식이 언어에 매우 빠르고 적나라하게 기입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바다’가 더 이상 범상한 비유로 쓰이지 않는 세계는 ‘그 이전과는 다른’ 세계다." 

출처: <씨네21> "[오혜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불완전한 언어와 투명한 진실" 
http://www.cine21.com/news/view/?idx=5&mag_id=96625


나는 그 날 이후 '바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의미망도 완전히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영상 또한 하나의 강력한 언어라고 할 때 젤리 몬스터에게 빨려 들어가기 직전 아이들의 모습이 다르게 읽혔던 것이다. 감독이 그걸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이 드라마가 히어로 안은영의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이 장면에서 아이들은 젤리 몬스터 입 안으로, 그러니까 바닥으로 떨어지면 안 되는 당위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살아남았고 일상을 되찾는다. 


 

안은영의 얼굴


두 번째 관람에서는 안은영의 얼굴을 유심히 봤던 것 같다. "알면서도 피하지 못하면 어쩌겠어, 당해야지!" 자신의 운명이 X발, 욕이 나오도록 싫지만 학생들을 지키는 학교의 보건교사로서 은영은 꿋꿋하다. 그녀는 아픔과 상처를 외면할 수 없는 감수성을 지녔다. 


아마도 학업 때문에 자살했을 학생의 끝없는 울음을 볼 때, 어릴 적부터 친구인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아이 정현이(이해온)를 만날 때, 강선이와 대화를 나눌 때, 그리고 옴잡이 혜민이의 사연을 들을 때. 은영은 그들이 안쓰럽고 아리다. 그 마음이 얼굴에서 전해진다. 이미 거기에 있는 죽음 앞에서 쉬이 위로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며, 결국 각자의 몫은 각자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라는 단호함 속에서도 그 마음이 투명한 얼굴 속으로 비춰보여서 덩달아 그 아이들을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정유미가 아니면 누가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결연함과 따듯함, 단호함과 현명함, 내면의 깊음과 투명함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인물. 잘 떠오르질 않는다. 



그 외에도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

정말 그렇다. 농구부 지형(권영찬)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을 학교 내 왕따나 계층의 이야기, 시리즈 말미에 '젤리'에 씌인 아이들과 선생님이 혐오의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는 장면 등은 감독이 꼭 전하고 싶었을 메시지였을 것이다. 


매켄지(유태오) 선생님이나 화수(문소리)라는 인물의 다음 이야기는 이후 시리즈로 공이 넘어가긴 했지만, 오묘하고도 잘 알아채지 못하게 주변에 존재하는 어떤 '악'의 스펙트럼을 생각하게 한다. 


에너지 충만한 장난감 칼로 젤리들을 처치하는 모습이나, 하트 모양, 옴 모양, 사람 모양의 젤리들을 보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다. 


은영이 인표의 손을 잡고 충전을 하는 장면, 둘의 티티카카하는 장면도 과하지 않은 귀엽고 담백한 로맨스 정도로 표현되어 즐겁다. 



개성있고 신선한 배우들이며 중독성 있는 음악들은 또 어떻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결말은 열려 있고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인물들도 많아 다음 시리즈를 벌써부터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아마도 이 첫 번째 시리즈를 넘어서긴 힘들지 않을까 벌써부터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이런 신선한 느낌,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 할 말은 하는 꿋꿋함, "칙칙" 대신 "유쾌"로 가는 위트. 이런 것들을 이어내고 넘어설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가 쉽겠나. 



정세랑 작가의 원작은 읽어보지 못했다. 두 번째 보니까 소설도 보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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