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군악대장 가족입니다만
훈련이다. 군인이니 당연히 남편도 훈련을 한다. 그간 뉴스에서 간혹 보이는 부류의 것들 인지도 모르겠다 싶은 호기심도 잠시, 군 관련해서는 남편이 알아서 하는 거라 결론 내린다. 건강에 이상 없을 정도로, 크게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잘 마무리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군인가족인 나는 우리 애들과 어떻게 잘 보낼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둔다. 아빠 없이 자는 날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엄마 품 넉넉히 열어서 아빠 없이 자도 포근하도록 마음 쓰고 싶어 진다. 아빠가 보고 싶어 울지는 않겠지만 허전함은 들 테니까. 게다가…….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보니 고민이 생겼다. 아이들을 어디다 맞기지? 당장에 애들 봐줄 사람이 없어서 난감해졌다. 하루 일을 못하겠다 할 수도 없고 임박한 타이밍에 시간표 변경도 어렵다. 어느 정도 컸다고(초등 저학년) 둘만 덩그러니 집에 두기도 그렇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새. 친분이 있는 집에서 좀 함께 놀게 하면 어떨까 싶었다. 평소 놀이터에서도 잘 놀고 서로가 왕래하면서 가까이 지내던 집이라 안심이 될 터였다. 그렇지만 쉬이 부탁을 꺼내기가 어렵다.
‘2시 30부터 6시 30분까지 고작 4시간인데 애들에게 그냥 티브이 틀어놓고 보라고 할까? 넷플릭스라면 좋아하겠지? 엄마 아빠 없을 때 하고 싶은 거 하고 있으라면 알아서 놀 수 있을 거야. 이제 컸는데, 뭘.’ 싶다가, ‘애들을 일하는 데 데리고 갈 수도 없고 어쩌지.’ 곤란해도 했다가, ‘아, 하필 4시간이나 비워야 하는 날이네, 2시간만 비워지는 날이었으면 좋으련만,’ 타박도 했다. 그러다 아무리 생각해도 캄캄해지는 초저녁, 애들만 두는 경우는 그간 없었기에 아이들의 마음도 헤아려봐야 했다. 밝을 때 귀가하는 거라면 모를까 깜깜해진 하늘에 고요한 집에서 둘만 있는 그림이 그려지자 못할 짓이다 싶다. 어느 정도 커서 둘이 있을 수 있다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또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어른 한 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은 용기를 내 전화를 걸어 서너 시간만 좀 아이들과 놀게 하면서 봐주십사 부탁을 했다. 그 말이 어찌나 입 밖에 떨어지지 않든지. 이건 나의 성향과도 연관이 있지만 같은 군인가족으로서 우리가 더 선배이다 보니 강압적으로 들리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이 더 크다. 혹여나 싫은데 억지로 ‘네, 그러죠’ 대답하는 건 아닐까? 그 집은 형제를 키우는데 우리 애들까지 가면 너무 복작이지 않을까. 아무리 애들이 순하다고는 해도 아이 둘과 넷은 또 다르기에 고민에 고민을 한다. 괜찮을까, 강압적으로 받아들이면 어쩌지, 부담이 되면 어쩌지…….
몇 번을 말하는 연습을 하다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고 의외로 고민과 다르게 흔쾌히 좋다 대답해주는 마음에 안도감이 인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아이들 간식과 퇴근길 저녁까지 포장해 귀가하기로 마음먹자 그나마 좀 편해졌다. 성의로 돈을 조금이나마 드릴까 했다가 그건 오버인 듯해서 마음을 접었다.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성의껏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이면 충분할 듯하다. 혹여나 후에 내가 아이들을 봐줄 일이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봐주면 되지 생각한다.
‘계급 사회가 아니더라도 이건 고민되는 게 맞을 거야.’ 다독이며 마음을 추스른다. ‘우리 부부 나이가 더 많아서 부탁이 쉽지 않은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지, 꼰대이고 싶지는 않잖아’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내가 원래 부탁이 쉽지는 않지’ 납득해 보기도 한다. 그래도 한 번이라도 더 고민하게 되는 건, 군인 가족이라는 계급 사회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계급 문화와 특유의 환경이 내포되어 있는 군인가족 지점에서
개인성이 강한 내가
더불어 살아가며 성장하는 일상을 담습니다.
보편성과 개인성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