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직후에는 낙오를 걱정하는 게 좋을까.
대졸 백수의 끝
지난주 목요일. 대학원에 합격했다.
대학원을 뛰쳐나온 후 아무것도 하지 못한 2년, 대졸 이후로 치면 3년의 공백이 이번 여름과 함께 끝난다.
지나간 겨울에는 나름대로 굳은 결심을 했다. 공대에 들러붙어 있는 걸 그만두겠다고. 공대에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서 애썼던 지난 시간이 너무 아깝고 속상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고. 한국을 떠난 지 1년 만에 혼자 돌아가야 하는 일이 있더라도 공학 전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이 말을 처음 한 1월의 어느 날부터 6월 말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울지 않고 이 말을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공대에 붙었다. 비이공계 전공으로 지원한 학교는 떨어졌다.
첫 번째 석사과정 동안 단 하루도 제 몫을 하는 보람을 느낀 적 없다. 석사과정 학생 1인분의 연구는고사하고 수업 프로젝트와 숙제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연구실 선배들의 괜찮다는 말은 ‘선배들이 나랑 같이 뭘 해보지 않아서 내 무능함을 모르는 걸 거야’하는 마음의 소리에 눌렸다. 학교에는 디펜스 현장에서 교수에게 이단옆차기를 하지 않는 한 석사는 졸업한다는 오래된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나는 이단 옆차기는커녕 최선을 다했는데 수료조차 하지 못했다.
학습된 패배감 때문인지 합격 소식을 들은 지 열흘도 안 됐는데 낙오를 대비하고 있다. 수술 날짜가 잡히니까 속으로는 죽음을 준비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졸업을 못 한다면 그다음엔 어쩌지. 그때는 외국인 포닥 가족으로 손이 비어있는 상태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을까. 나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들에 좀 더 달려들 마음을 먹을까. 남들이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사실은 목적이 불분명한 것들을 손에 넣으려 애쓰는 걸 그만두게 될까.
적어도 겉모습과 실제 내공이 일치하지 않을 때의 괴로움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백수가 아니라 학생이니까 안도하지 않고, 졸업이든 졸업 후든 졸업하지 못한 후든 뭐든지 열심히 준비한다면.
그래서 또다시 나를 보호해주는 이름이 사라졌을 때 아무것도 못 하는 나를 미워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