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빙스톤 Feb 01. 2022

환타












내가 재수학원에 다니던 시절 재수학원의 담임선생님 이야기다. 

담임선생님은 나이가 많고 키가 작달막한 국어 선생님이었는데, 성격은 까칠했고 머리는 벗겨져 있었으며, 말투는 사나웠다. 그럼에도 공부는 꽤나 가르쳤는데, 돌이켜보면 꽤나 가르쳐줬던 그 실력덕에 재수학원에서 살아남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담임은 좀처럼 조퇴 싸인을 내주지 않았고, 좀처럼 칭찬하지 않았으며, 좀처럼 정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그분에게 정이 별로 없었던지라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길에서 멱살잡이를 하더라도 생면부지인줄 알 것이다. 

담임은 국어 시간마다 쓸모없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꼽으라면 국민학교 시절, 소풍을 가서 환타를 마셨던 이야기다. 그날 마신 환타가 기억 속 진하게 남아있는지 같은 래퍼토리를 몇번인가 반복했는데, 나는 처음과 재방송, 재재방송까지 모두 흥미롭게 들었다. 





쥐색 정장바지를 즐겨 입고 땅꼬마 같았던 머리 벗겨진 담임은 어린시절부터 집이 잘 살았단다. 현재는 부산 재수학원 담임을 하지만, 본인은 시골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라 했었다. 그 시절 소풍의 메인 오브제는 허연 쌀밥에 소금을 곁들인 주먹밥었지만, 담임은 엄마와 할머니가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싼 김밥과 계란, 과자, 그리고 환타를 가져갔었다고 한다. 담임의 친구들은 김밥을 한입이라도 먹어보려고 사정사정 했고, 뒤이어 나오는 계란과 과자에는 눈이 돌아가 무릎을 꿇고 손을 벌리는 지경이었다고 한다. 

부잣집 아들의 체면 상 먹을 것을 모조리 나눠줬던 담임에게도 환타는 소중했단다. 

환타라는 것은 소풍때가 아니면 감히 먹어보지도 못하는 귀한 음식으로, 그날 소풍에 가져온 환타는 N대 독자인 담임을 위해 할머니가 소중한 쌈짓돈으로 사준 음료였다. 행여 환타가 친구에게 발각되어 한입씩 나누어 주게 될까 소풍 내도록 노심초사 하였고, 가방 깊은 곳에 꼭꼭 숨겨뒀다. 마침내 소풍이 끝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뭐라도 훔친 사람처럼 후미진 골목길로 들어가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이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가방 깊숙히 넣어두었던 환타를 꺼냈다.  

뜨거운 여름. 

환타가 시원했을 리 없다. 

하지만 담임은 하루종일 환타를 생각하며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고, 드디어 그 환타를 영접할 시간이 온 것이다. 

"촤악. 피식."

내리쬐는 태양아래 열 받은 가방 속 깊이 숨겨져 있던 환타는 식을대로 식어버렸다. 그럼에도 상관없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구석진 골목길에 쪼그려 앉아 환타를 입으로 가져가 꿀꺽꿀꺽 마셨다. 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고, 담임은 환타를 원샷 때린 후, 입가에 흐르던 국물을 옷소매로 쓰윽 닦고 노을을 바라봤다. 식어빠지고 따뜻한 환타가 노을과 무척 잘 어울려 "이걸 위해 내가 하루종일 기다린 보람이 있어."라는 자축했다고 하는데, 이건 담임이 이야기의 조미료를 친 것이 아닌가 한다. 

결론없는 담임의 환타 이야기였다. 그리고 담임은 그놈의 환타 이야기를 몇번쯤 더 들려주었고, 그때마다 버전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식어빠지고 따뜻했던 환타가 담임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환타였단 것이다. 

웃기게도 난 가끔 환타가 먹고 싶다. 콜라도 사이다도 아닌 오렌지 색 환타가 말이다. 






파키스탄 - 이란 국경인 퀘타 타프탄 국경을 건널때였다. 모두들 안된다고 말리던 그 국경을 건널 수 있다며 용맹하게 로컬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새벽무렵 파키스탄 사람들은 사막에 나와 홍콩 친구를 내동댕이 치고 떠났고, 그 뒤로 사막에서 4박 5일을 보냈다. 숙소에서 만났던 홍콩인 가강은 천식이 있었고, 3일째 되던 날 사막 한가운데서 피를 토하다 쏟아지는 별을 보고 "나는 행복해 소냐."라고 외쳤다. 나는 전갈에 물려 죽을뻔 했다. 사막 수비대의 감옥에는 잡혀온 탈레반들이 있었고, 나는 이란으로 넘어가기 마지막날 사막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다 환타가 먹고 싶었다. 하지만 가진 돈은 없었다. 

환타가 먹고 싶다며 소리내어 엉엉 우는 나에게 가강은 아껴두었던 파키스탄 동전을 하나하나 세어 손에 꼭 쥐어주었고, 나는 수비대에서 근무하던 레비스 아저씨에게 "제발 환타 파는 곳에 데려가 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아져씨는 내 말을 알아듣더니 오토바이에 태워 사막의 작은 슈퍼로 데려갔고, 나는 그곳에서 환타를 살 수 있었다. 작은 한병은 꺼내 원샷을 했고, 남은 돈으로는 2L짜리 환타를 샀다. 

소중한 환타를 품에 안고 수비대로 돌아와 가강과 함께 사막 옥상에 자리를 깔고 앉아 쿠키를 적셔 먹었다. 은하수가 보였고, 별똥별이 떨어졌다. 

말은 필요없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환타였다. 





작가의 이전글 딸이자 며느리인 당신의 행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