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60살의 내가 40살의 나에게
2023년, 나는 의도하지 않게 심리치료 20회를 들어야 했다. 우울증 진단, 심리치료 같은건 협박용 진단서로 쓰는건줄 알고 살았던 내가 나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덕분에 나의 MBTI가 ENFJ라고 굳게 믿고 살았는데, 나는 절대 F형 인간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고, 뼛속까지 ENTJ라는 것을 상담사 선생님이 알려주었다. 이밖에도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볼 수 있는 검사를 받았고, 상담 이후 엄마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내 생각도 조금 바꾸게 되었다.
자라온 환경에 대해 말하는 내내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나를 선생님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고생스러웠을 것 같은데 선영씨는 담담하네요."
내 어린시절에 대해, 자라온 과정에 대해 말하며 한번도 눈물 흘린적 없었다. 분명 이 정도 어린시절이면 대부분의 내담자는 눈물을 펑펑 쏟는단다. 나는 뭐, 이젠 괜찮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말해보라는 말에 내가 아는 권위적이고 재수없었던 아빠의 모습 그대로를 말했다. 검사에서도 내가 서술한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나왔나 보다. 이번엔 어머니에 대해 말해보란다.
엄마. 엄마는 좋다. 초등학교 1학년, 8살 때 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는데 맛있는 냄새가 났다.
"선영아 주방으로 와봐."
주방으로 달려간 나는 엄마가 만들고 있던 큰 햄버거를 발견했다. 내 얼굴만한 햄버거. 그 햄버거를 한입 먹었는데, 살면서 먹었던 햄버거 중 가장 맛있었다. 그날은 너무나 생생해 주방에 스며들어오던 주황빛의 희미한 햇살과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미소까지 기억난다. 엄마, 너무 맛있어. 사랑해.
나를 상담사는 갸우뚱하며 쳐다봤다. 알 수 없는 잉크방울을 보고 무엇이 떠오르냐고 했던 것에 낄낄대며 답했다. 상담사가 나와 번갈아 쳐다보는 저 그림. 저 잉크방울에 대한 답변이 내가 엄마를 생각하는 진짜 모습일까?
"그게 엄마에 대한 기억이예요?"
"네"
".....선영씨 엄마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은데요."
상담사와 내가 앉아 있던 흰색 방. 테이블에 놓여있던 전자 시계. 무슨 말인지 묻지도 않는 나를 한동안 쳐다보던 상담사의 눈빛과 갸우뚱하는 내 모습은 그 공간에 정지된 듯 여전히 머릿속에 있다. 입을 떼고 싶었지만 떨어지지 않아 묻지 못한 말. "그게 무슨 소리예요?" 늘어지듯 길게 흐르던 시간은 사무실 안에선 정지한 듯 했고, 내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갈 쯤
"선영씨가 아는 엄마와 실재의 모습은 다를 수 있다고요. 오늘 상담은 여기까지 할께요."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비명같은 문장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 무슨 소리였는지 정확히 물어보라고. 하지만 나는 차를 몰고 그대로 집으로 왔다.
작년의 심리상담 이후 나는 좀 변했다. 아니, 소송 이후 변했을 수도 있다. 원래 사람을 안 좋아하고 무관심했지만 요즘은 관심있는 것을 제외한 모든것에 놀랄만큼 차갑고 냉정하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쉬운 것은 손절이다. 가족이든 오랜 친구든 그게 누구든 상관없다. 그리고 가끔 엄마에 대해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괴롭다. 상담 이전에는 한번도 엄마를 원망하거나 나쁜 일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
얼마전 엄마와 밥을 먹으며 이젠 나이가 40살이라 아기를 낳고 싶어도 못 낳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는 그럴지도 모른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지금 애를 낳으면 아기가 20살에 대학가면 난 60살이잖아. 그럼 아기는 누가 챙겨줘."
엄마는 내 말을 듣고선 웃으며 말했다.
"선영아 걱정안해도 돼."
"왜?"
"20살까지만 키우면 그 뒤엔 지 알아서 다 큰다. 뭘 그런걸 걱정해."
엄마는 인자한 미소로 웃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문장 그대로 나는 진짜 20살부터 모든것을 알아서 했다. 상담때문이었을까. 밥먹던 손을 부르르 떨었다.
"엄마는.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어?"
"......?"
"20살 까지도 안 키워줬잖아. 남의 집에 살게 했잖아. 그리고 20살부터 알아서 큰다고 얼마나. 내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알아?"
"........"
"20살부터 나 혼자 잘 큰게 엄마한테 자랑이야?"
".......미안하다. 선영아."
"나는. 아기한테 다 해줄꺼야. 20살에 대학가면 이쁜 옷도 사주고, 자취집도 구해줄꺼야. 여행도 보내주고, 시집 장가가면 집도 사줄꺼야. 왜인줄 알아? 자기 혼자 크려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우는지 아니까 그래."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고 엄마집에서 뛰쳐나왔다. 엄마는 연신 문자로 미안하다고 보냈지만 나는 요즘 좀 그렇다.
20살의 귀미딸 윤선영. 그 사람은 정말 작은 캐리어에 옷 몇개를 넣어 서울로 올라왔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지만 남자친구도 사겼다. 장하게도 과외를 하며 모은 돈으로 배낭여행도 갔다. 그때의 난 철이 잔뜩 들었었다. 힘든 내색을 한 적도 없고, 울긴 했어도 부모님을 원망한 적 없었다.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서 살아가려 아둥바둥 거리며 뭐든 열심히 했다. 조금 부족하고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우울했던 적 한번 없었다.
40살의 난 누가 봐도 철이라곤 없다. 뒤늦게 사춘기라도 온건지 반항적으로 굴며 "싫은데요"라는 말이 입에 붙어있고, 아등바등 한 것도 없지만 이보다 더 잘살고자 노력하는 것도 딱히 없다. 하는 소리라곤 시덥잖은 농담에, 어디 따뜻한 나라로 놀러갈 생각만 하고 있다.
우주 어딘가. 블랙홀은 중심부로 갈 수록 시간이 느려진다고 한다. 그래서 먼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 과거의 내가 같은 공간 속에서 만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만약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20년전의 윤선영, 그 사람을 만나면 꼭 안아주며 참 많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세상과 다른 기준에 맞서 싸우며 나만의 방식대로 잘 가꾼 나를 전달해줘서. 20대의 반짝이던 눈동자 그대로 40살에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애쓰며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만약 20년 뒤, 60살의 내가 40살의 나를 만난다면. 뒤늦은 방황이었지만 부모님과 사람들을 너무 미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아껴주는 사람으로 전달해줘 고맙다는 말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