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경주만 줄 수 있는 존재의 기쁨
경주? 나이 들면 살기 좋은 곳이지
나도 무심결에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현재는 미래를 위해 모두 버려두고서
나중에 살만해지면 다시 살러올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20대에게 나중에 살만해질 때가 올까? 있다면 언제일까?
적금. 보험. 청약 이런 것이 다 옛날 말이 됐고 우리를 부양할 다음 세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살만한 노후가 올 수 있을까?
우리 아버지는 암 판정 직후에나 퇴사하셨고 3개월 후에 돌아갔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 내 친구의 아버지 또한 은퇴 후 일 년 만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이제 나의 세계에서는 지금의 모든 순간들이 앞으로 내게 올 시간보다 훨씬 중요하다.
뿌리 깊은 불교문화가 그리고 눈만 돌리면 보이는 고분들, 첨성대 같은 유적들이 주는 고즈넉함을 예전에는 몰랐었다. 그저 지루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다. 이 오래된 도시는 계속해서 내게 존재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고 들려줘 왔는데, 외면한 것은 나였다.
사실 경주에 돌아간다는 결정은 내게 실패자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명절 때도 잘 가지 않았고 일 년에 한두 번 길어야 2박 3일 정도 보내다가 오는 것이 전부였다. 어쩔 때는 서울보다 더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을 정도로 까맣게 잊고 지내려 노력했던 내 고향 경주
우리가 하는 가게 옆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경주에는 문을 닫는 초등학교가 늘어가고 있지만 그나마 신시가지에 있는 학교라 학생수가 적지는 않다. 내년이면 그 학교에 입학할 나의 조카들도 반대편 아파트에 살 고 있다. 그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걸 볼 때 마음이 시리다.
저 아이들이 자라서 경주에서 살아갈까?
저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이 곳에서 살고 싶어 할까?
이제 나에게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다. 저 아이들이 나처럼 고향에서 스스로를 추방시키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 토박이가 행복한 세상을 가꾸어가자.
다리가 4개인 것 같은, 뿌리가 튼튼히 박힌 나무 같은 평화로운 삶의 기회를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