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단 둘이 다녀온 1박 2일 캠핑
2024. 7. 15. (월)
당신 혼자 신청했다는데?
퇴근 후 씻고 나오니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 첫째 꿀떡이 어린이집에서 <아빠 어디가>라는 아빠들의 1박 2일 캠핑 프로그램 공지가 나왔는데, 선착순이라는 말에 괜스레 다급해져 아내에게 '일단 연차를 낼 테니 신청부터 하라'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어린이집에서는 작년에도 신청자가 아무도 없었고, 이번에도 신청한 아빠가 나 혼자라는 것. 다행히 선생님들의 간절한(?) 설득 끝에 한 분의 아버지가 추가 신청을 하셔서 외로운 단독 카라반은 피할 수 있었다.
단 둘이 캠핑, 묘한 긴장감
작년 한 해 육아휴직을 통해 첫째와 많은 추억을 쌓았지만, 엄마 껌딱지인 첫째와 아내 없이 단 둘이 여행을 가 본 적은 없었다. 아빠와 잘 놀다가도 밤만 되면 엄마를 찾는 성향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자신 있다'며 큰소리는 쳤지만 묘한 긴장감이 있었다. 출발 며칠 전부터 아내도 나도 '캠핑 가서 아빠와 잘 것이다'라고 지속적인 예고(를 가장한 경고)를 했는데, 이상하게 꿀떡이가 좋다 싫다 반응이 없어서 더 긴장이 되었다. 최악의 경우 밤에 집에 돌아올 동선과 시나리오도 생각했으니.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걱정은 기우였다.
캠핑 당일. 아침에 출발할 때 꿀떡이가 카시트에서 '엄마랑 찰떡이는 안 가?'라고 물었을 때 식은땀이 살짝 흘렀지만, '오늘은 너무 신나고 재미있는 걸 할 거라 아기인 찰떡이는 엄마한테 맡기고 아빠랑 신나게 놀러 갈 거야!'라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꿀떡이는 이후 엄마를 찾지 않았다.
소집 장소인 월미도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 음악에 맞춰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도착해서도 배 시간을 기다리며 미리 준비한 킥보드를 타기도 하고 오락실을 구경하기도 하고 재미있게 놀았다. 차를 타고 배를 타는 것은 내게도 첫 경험이었는데, 배 자체를 처음 타보는 꿀떡이는 처음엔 조금 무서워하더니 금세 적응해서 열심히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더운데 차갑고 힘든데 재밌고
캠핑 일정은 어마어마하게 빡빡했다.
30도를 훨씬 웃도는 더운 날. 배를 타고 영종도에 도착하니 바로 갯벌 체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뙤약볕에 갯벌 장소까지 한참을 걷고, 옷을 갈아입은 후 단체 체조를 하니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결국 갯벌에 도착하자마자 꿀떡이도 나도 녹초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갯벌에서 게도 구경하고 모래 놀이를 하긴 했는데, 꿀떡이 얼굴이 잘 달군 소시지처럼 빨개져서 서둘러 워터 슬라이드로 복귀해 물놀이를 했다. 그 사이에 점심으로 짜장면도 먹고.
물놀이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마자 산에서 맨발 걷기, 밧줄 놀이, 조릿대 배 만들기를 쉬지 않고 진행한 다음 산 놀이터에서 30분을 넘게 더 놀았다. 보통 꿀떡이는 1시~3시 사이에 낮잠을 자는데, 이 모든 일정이 끝나니 이미 3시는 훌쩍 넘기고 말았다.
아침 9시에 집에서 출발했으니, 낮잠도 자지 않고 무려 6시간 넘게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후 4시 반이 되어서야 숙소인 카라반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정은 바로 다시 시작되었고, 저녁 7시부터 '동화책 읽기 대회'가 열리니 서둘러 저녁식사를 마치라는 공지가 나왔다. 같은 어린이집에서 함께 참가한 아버님과 고기를 굽고 바리바리 싸 온 음식들을 챙겨 아이들을 먹이고 나니 어느덧 저녁 7시가 되었다.
우리 어린이집에서는 내가 동화구연 대표였는데.....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는가. 하루종일 강행군을 잘 버티던 꿀떡이가 대회 시작과 함께 내 품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결국 대회 도중 잠이 든 꿀떡이를 카라반에 먼저 눕히고, 후다닥 뛰어 나와 다른 집 자식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잊지 못할 추억이 만들어졌다. 시상식은 언감생심. 다시 카라반으로 돌아와 나도 꿀떡이 옆에서 곯아떨어졌는데, 나중에 원장선생님께 '참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미있는 건, 참가상 상품으로 받은 의자가 꿀떡이의 취향저격(?)이라 엄청 좋아한다는 것.
그렇게 얼떨결에 꿀떡이와 '엄마 없이 첫 1박'을 보낸 아침, 꿀떡이는 엄마를 찾기는커녕 오히려 '집에 가지 말자'며 신나 했다. 둘째 날 아침은 비가 많이 왔는데, 카라반 창문으로 손을 뻗어 비를 맞는 아이들의 모습이 동화 같이 예뻐서 내 마음이 몽글몽글 해질 정도였다.
아이도 처음, 아빠도 처음
아이와 단 둘이 캠핑을 다녀와보니, 아이와의 여행은 아이가 어릴수록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선뜻 엄두가 안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행만큼 아이와 단기간에 많이 가까워질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번 '아빠 캠핑'은 아이에게도 처음이고 아빠인 나에게도 처음인 경험들이 많아서 좋았다. 차를 탄 채로 배에 타는 것도, 대형 새우깡을 들고 간 탓에 배 위에서 갈매기들에게 뒤덮였던 경험도, 카라반에서 보낸 하루도 모두 처음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엄마 없는 1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막상 여행을 다녀와보니 그건 막상 중요하지 않고, 여행의 순간들마다 아이와 함께 느끼고 맞이하는 수많은 '처음'들이 더 가치 있는 것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벌써 한 달이 흐른 지금. 꿀떡이는 아직도 종종 '갈매기'와 '카라반 2층 침대' 이야기를 한다. 내심 질투가 나는지 '꿀떡아. 우리 온 가족 다 같이 카라반 놀러 갈까?' 묻는 아내의 물음에 꿀떡이는 씨익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아니. 캠핑은 아빠랑만 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