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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Jul 29. 2024

육아에 진심입니다.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깨닫는 것들

2024. 7. 29. (월)


진심이라는 것


얼마 전 SNS를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 영국 유명 축구 경기장에서 사진을 올렸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축구에 진심이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작은 도시 시흥에 살면서도, 영국 유명 축구팀을 응원하며 새벽 경기를 보느라 날을 꼬박 새우다 학교에서 잠을 자곤 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는 차에 진심인데, 얼마 전 2억이 훌쩍 넘는 스포츠카(P사)를 계약하더니 매주마다 그 과정을 내게 하나하나 설명하곤 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 드디어 다음 주에 차를 인도받는다며 출근하자마자 달려와 앞으로의 과정을 신나서 설명하는 그의 모습을 본다. 그는 차에 진심인 것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무엇에 진심일까?


물론 나도 무언가에 '진심'이었던 적이 있다. 어렸을 때는 농구에 빠져 하루종일 국내외 농구경기 중계를 보고, 경기가 끝나면 운동장에 나가 농구 시합을 했다. 악기에 빠졌을 때는 다락방 구석에 앉아 새벽까지 악기 연습을 했고, 불과 몇 년 전에는 일에 빠져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에 몰두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딱히 특정 활동이나 물건에 진심을 주지 않는다. 여전히 다양한 스포츠를 좋아하고 악기 또한 종종 연주하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일 또한 열심히, 또 즐겁게 하고 있지만 몇 년 전처럼 하루종일 머릿속에 프로젝트 일정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던 때의 몰입도와는 차이가 크다.


지금, 내 진심은 어디 있을까?


육아에 진심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내 진심은 육아에 가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내게 중요했던 많은 것들이 지금 대부분 사소해진 걸 보면, 적어도 육아가 내 가치체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확실하다.


육아(育兒)는 '어린아이를 기른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지만, 내가 실생활에서 경험하는 육아는 결코 어린아이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육아는 아내와 나, 부부간의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더 멀리는 아내와 장모님, 나와 우리 부모님 간의 관계와 생활에도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다. 즉, '육아'라는 말은 아이를 기르는 행위뿐 아니라, 그 행위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들을 함께 포함하는 개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육아에 진심이다'라는 뜻은, 단순히 아직 어린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워 '잠시' 아이들에게 집중하겠다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나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수많은 관계들이 육아를 하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 관계들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


어릴 적 내가 넘어져 피를 흘리면 아픈 나보다 엄마가 왜 화를 내셨는지, 누나와 내가 어렸을 때 아빠가 왜 비싼 '생명 보험'을 들어놓으셨었는지, 머리로는 가늠하지만 가슴으로 알지 못했던 그 마음을 육아를 하며 조금씩 훔쳐볼 수 있게 되었다. 나뿐인가? 첫 손주였던 누나를 할머니는 엄마에게 말 한마디 없이 시골로 훌쩍 데려가버리곤 했는데, 그런 시어머니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던 우리 엄마도, 이제는 꿀떡이와 찰떡이를 보고 싶어 참지 못하는 할머니가 되어 시어머니의 그 마음을 조금씩 훔쳐보시는 걸 본다.


아이를 기르며 이전에는 몰랐던 아내의 모습을 새롭게 보고, 심지어는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출장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사교성이 좋아 회사에서 '기쁨이'로 유명하던 아내는, 금방 복직할 거란 모두의 예상과 달리 과감하게 커리어를 포기했다. 주말만 되면 10시간 넘게 침대에서 뒹굴대던, 별명이 '부평구 베짱이'였던 나는 이제 누구보다 일찍 새벽을 깨우며 출근하고 퇴근과 함께 아이들과 놀다 일찍 잠에 드는 '평구 개미'가 되었다. 양가 부모님도 부모가 된 우리 부부의 새로운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시곤 한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의 일상은 단조롭지만, 육아의 영향력은 이렇게 다채롭기에 육아가 더욱 흥미로운 것 같다. 1년 간 육아휴직을 하며 아내와 '공동 육아'를 했을 때도, 복직 후 출퇴근을 하며 저녁 늦게 또는 새벽에 일어나 아내와 있었던 이야기를 할 때도, 아내와 내가 부모로서 만들어지는 것, 그리고 우리의 부모님이 조부모로서 만들어지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어찌 보면, 육아는 아이뿐 아니라 부모와 조부모도 키워내는 것이다.


육아의 가치, 삶의 가치


'육아를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풀 무언가를 가져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람마다 상황이 다르니 그런 접근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에게는 육아에 진심이면서 다른 것을 별도로 함께 가져갈 여유가 없다. 앞서 설명했든, 내게 육아는 단순히 아이를 먹이고 재우는 행위가 아니라, 나와 아내, 그 주변의 관계들을 모두 아우르는 큰 개념이기 때문이다.


육아의 일상은 지치고, 육아의 책임은 무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육아를 후회하지 않는다. 예쁜 꿀떡이와 찰떡이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철부지였던 아내와 나를 부모로 키워내고, 아이를 키워내느라 어린아이 예쁜 줄도 몰랐던 우리의 부모님을 하트 뿅뿅 조부모님으로 만들어준 건 바로 육아였다.


육아는 만만하지 않지만, 그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 5년 차, 육아 4년 차. 나는 아직까지 육아보다 더 '진심'일 것을 찾지 못했다.


무럭무럭 자라나라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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