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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Oct 04. 2024

육아 때문이 아니라 육아 덕분에

사랑'받는' 것만큼이나 좋은, 사랑'하는' 느낌

2024. 10. 4. (금)


육아 기차는 휴일에도 멈추지 않는다.


이번 주는 화요일과 목요일이 휴일이라, 이른바 '퐁당퐁당' 출근을 했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는 경우, 이렇게 휴일이 중간에 껴 있으면 쉬는 것 자체는 좋지만 그만큼 안 쉬는 날에 야근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내가 검토를 하고 확인을 해주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아니나 다를까. 공휴일이었던 화요일과 목요일 사이에 낀 수요일, 밤늦게까지 야근을 했다.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라 간단히 씻고 바로 잠을 청했다. 그렇게 눈을 잠깐 감았다 떴더니 몸이 묵직했다. '뭐지' 싶었던 찰나, 두 아이가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던 것.


그렇게 육아의 일상이 시작되었더랬다.



"너무 힘드시겠어요. 일하랴 육아하랴..."


얼마 전, 옆자리 동료가 나는 '슈퍼맨' 같다며 말했다. 동료는 포르셰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나 혼자 산다'의 삶을 직접 살아가는 사람인데, 왕복 3시간 통근하며 일하고, 주말에는 육아를 하는 내가 존경스럽다는 것. 그런데 분명 '존경'이라는 단어를 하고 있지만 눈빛에 조금도 '부럽다'거나 '저렇게 되고 싶다'는 느낌이 없었다. 안쓰러움으로 가득 찬 존경이랄까.


힘든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 후 허겁지겁 저녁밥을 먹고 두 아이와 놀고, 같이 양치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일상이 일반적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 것은 당연지사, 만약 둘 중 하나가 (또는 둘 다) 아프기라도 하면 그 일상이 조금 더 고되다.


그런데 뭔가, 일 하는 것'도' 힘든데, 육아 '까지' 해서 더 힘들다는 표현이 내게는 낯설다. 육아는 분명 신체적으로 힘이 들지만, 그 힘든 정도보다 정신적이나 정서적으로 내 삶을 훨씬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있다. 신체적으로 힘이 들어도, 웃음으로 가득 찬 내 퇴근 후 저녁이 증명해 주듯 말이다.


결혼 전 내 삶은 매우 자유로웠다. 특히 공휴일이나 주말엔 새벽 2시까지 놀다가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서점이나 카페에 가기도 하고, 친구들과 농구나 축구를 하기도 하고, 또 새벽에 축구 경기를 보고 다시 느지막이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오죽하면 별명이 '베짱이'였을까.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 그런 여유는 언감생심이지만 '아내와 두 아이가 없던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두 손과 두 발을 다 들어서라도 반대할 것이다.


왜일까? 왜 나는 편하고, 자유롭고, 쉬웠던 젊은 날의 일상보다, 불편하고, 제약이 많고, 어려운 지금 육아의 일상을 선택하는 것일까?


엄마 자유부인 하는 동안 쇼핑하고 자전거 타고


사랑하는 맛


사랑하는 맛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을 때'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줄 때'도 행복하다는 것을 부모가 되어 조금씩 더 알아가는 중이다. 육아는 그 자체로 내 체력을 소모시키지만, 동시에 내 마음과 정서를 충전해 준다. '당신이 느끼는 사랑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대답하기가 참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퇴근 후 저녁이나 휴일에 아내,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육아'라는 이름의 일상이 나를 웃고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일상의 예시가 '지지 빠빠이'다. 나는 아직도 18개월 된 둘째 찰떡이가 응아를 하면 공주님 안듯 안아서 세면대에서 엉덩이를 닦는데, 이미 무게와 덩치가 상당한 찰떡이를 안고 '지지 빠빠이~' 노래를 부르며 화장실로 향하는 나를 보고 아내는 '이제 세면대에서 안 씻겨도 된다'고 손을 젓는다. 그런데 함께 '지지 빠빠이~' 노래를 부르며 온몸에 힘을 빼고 아빠 비데(?)를 즐기는 찰떡이를 보면 아내와 나 모두 웃음이 터져버리곤 한다. 찰떡이가 온몸에 힘을 빼고 나를 바라보며 '지지 빠빠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아 매번 무거움을 무릅쓰고 세면대로 향하곤 한다.


응아를 손으로 닦는 게 더럽지 않다는 것도 아니고, 11kg가 넘는 아이를 안아서 엉덩이를 닦는 게 쉽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부모로서 느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사랑을 주는 맛'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주말만 되면 화장실까지 쫓아오는 둘째


육아 때문이 아니라 육아 덕분에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다. '너도 힘들어봐라'라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사랑 주는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부모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육아는 힘들다. '쉬운 육아'라는 키워드도 종동 보이는데, '비교적' 쉬운 방법론이나 잘못된 사항들을 교정하기 위해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지, 불완전한 사람인 부모가 또 다른 불완전한 사람인 아이를 보호하고 잘 자라도록 키우는 육아, 그 본연의 어려움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모가 된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편안함'이 무조건 '행복'을 의미하지 않듯, '힘듦' 또한 무조건 '불행'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들을 키우며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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