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쯤 일어나 씻는다. 씻고 나와 장난감으로 가득한 거실과 부엌을 정리한다. 분리수거도 하고 택배도 뜯고 로봇 청소기에 물도 채우고 나면 벌써 7시가 가까워 온다. 서둘러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들고 집을 나선다.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느덧 저녁 7시가 좀 넘는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한두 시간 놀다 양치를 시키고 잠에 들 때면 10시 정도. 야근이 있거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중에는 이런 일상의 반복이다.
미혼 친구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 대단하다. 회사만 다니는 것도 힘든데'라고 한다. 단조롭지만 꽉 찬 나의 일상이 대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저 일상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회사를 다니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새벽에 일어나면 대충 이런 느낌
회사는 직원의 정신건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나만 하더라도 처음 입사했을 당시 상사와의 갈등으로 인해 거의 우울증에 걸릴 뻔했다. 당시엔 결혼 전이었는데 편두통도 심해지고 없던 목디스크도 생기고 정말 말도 아니었다. 나를 괴롭게 하던 상사는 결국 내부 조사를 거쳐 징계를 받고 다른 회사로 떠나게 되었고, 이후 2~3명의 각기 다른 상사 분들과 일을 했지만 그때의 힘든 경험 덕분인지 나름 원활히 직장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다.
회사를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하다. 지금 다니는 회사? 완벽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많이들 퇴사하는, 굳이 줄 세워서 본다면 일하기 쉽지 않은 회사에 속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직원 개인에게 '회사'란 결국 수백 명 전체 조직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실제 내가 출근해서 만나는, 실장 팀장 팀원을 포함해 몇십 명 남짓의 사람들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개인적으로 육아의 관점에서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를 판단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1. 웃으며 퇴근할 수 있는가?
회사에서 생긴 일, 이른바 '독소'를 집까지 끌고 들어가지 않는 것은 개인의 성숙도와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스트레스를 흠뻑 뒤집어써야 하는 회사라면 아무리 성숙한 사람이라도 견뎌내기가 힘들다.
그래서 하루가 어느 정도 고되었더라도, 퇴근하고 지하철로 향하는 길 웃으면서 집으로 향할 수 있는지 여부가 모호하긴 해도 일종의 기준이 되는 것 같다.
2.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가
지금 회사에서 이제 7년 차에 접어드는 터라 연차가 적지 않다. 그런데도 연차가 부족하다. 아이들이 아픈 건 워낙 잦은 일이고, 아내가 내가 아플 때. 그리고 어린이집 행사나 가족 행사만 고려하더라도 연차 일정이 꽉 찬다.
'육아'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범주가 가족 단위로 넓혀지므로, 그때마다 회사에서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지 여부가 육아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것 같다.
3. 육아 이야기를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
조금 엉뚱해 보일 수도 있는데,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이 '분위기'라는 게 생각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팀 내에서 점심시간이나 종종 커피 타임 때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묻고 이야기하는 분위기인지 아닌지에 따라, 위 2. 에서 말한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지 또는 아래 4. 에서 말하는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지 여부가 어느 정도 각(?)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은 회사마다 분위기나 문화가 달라 딱 잡아서 '어떤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정할 수는 없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를 예로 든다면, 회사 전체적인 문화는 딱딱한 편이지만 담당 임원과 팀장님으로 구성된 하위조직 분위기가 꽤 유연한 편이라, 수시로 식사를 하거나 회의실에 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레 육아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일정이나 상황에 대해서 조직장들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편이라, 그 '흐름' 속에서 내가 갑자기 연차를 쓰더라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곤 한다.
4.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정책을 사용할 수 있는가?
아빠 육아휴직? 물론 쉽지 않다. 알고 있다. 나도 2023년에 1년 간 다녀왔지만 결코 쉽지 않다. 아직은 아빠의 육아휴직을 회사라는 조직 입장에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사회 분위기이기도 하고, 그 사회 분위기 때문에 실제 누군가 육아휴직을 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대체 인력을 뽑는다는 등)에 대해서 준비가 안 된 회사가 더 많을 것이다. 우리 회사도 그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선구자 (우리 회사의 경우 내가 선구자가 되어, 이후 많은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가고 있다) 덕에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정말 좋은 회사라고 볼 수 있겠다. 꼭 육아휴직이 아니더라도 상황에 따라 또 목적에 따라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제도도 마찬가지이다.
회사를 바라보는 기준?
생각나는 대로 몇 개의 기준을 적긴 했는데, 결국 미혼일 때와 결혼했을 때,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는 '회사'를 바라보는 기준이 바뀌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는 대기업 여부, 연봉, 직책, 위치, 좋은 시설 등, 눈에 보이는 정량적인 것들도 직원 개인적으로는 회사를 평가하고 바라보는 기준이 될 수 있지만, 특별히 육아를 하면서 회사를 다니다 보니 정량화된 기준들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는 것을 느낀다. 함께 일하는 팀장 또는 팀원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과 만들어나가는 내가 8시간 이상 머물게 되는 그 조직의 분위기 같은 것들은, 정확히 데이터로서 측정되거나 정량화할 수 없지만 분명 아빠이자 직원으로서 회사에 다니는 내 정신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입사하면 뼈를 묻어야 한다고 믿던 우리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지금 나만 하더라도 회사에서 7년 차가 되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오래 다녔네!' 하며 놀란다. 지금 회사에서 얼마나 더 다닐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회사'를 바라보는 내 기준에는 위에 설명한 내용들이 담겨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