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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Nov 07. 2023

숨가쁘게 느린, 평범하지만 비범한

소설 <스토너> 리뷰





1. 숨 가쁘게 느리고 평범하지만 비범한 소설

스토너는 정말 많은 독자들이 사랑하고 추천하는 소설입니다. 그래서인지 절대 마이너 감성인 저는 오랫동안 책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습니다.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선정하지 않았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읽을까 말까 하다가 못 읽었을 그런 소설입니다. 읽으면 무조건 좋을 책이라는 예감이 드는데도 이상하게 손이 안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놓치는 소설이 종종 있습니다. 다행히 독서모임 때문에 이런 소설을 만나고 다양한 시각과 감상을 나누게 되는 것도 큰 기쁨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스토너라는 인물은 언뜻 보면 평면적인 캐릭터의 특징 없는 인물입니다. 극적인 재미도 없어 보이는 인생을 꾸역꾸역 살았습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인생 전체를 산책하듯 느린 속도로 조망하는 소설입니다. 구조만 놓고 보면 '발단-전개-절정-결말'이 아니라 '발단-전개-결말'의 삼단 구조 정도로 봐도 무방할 정도의 고저가 없는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흐름으로 독자의 감정을 뒤흔들고 흡입력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묘한 소설입니다.


물론 주인공의 인생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요한 변곡점들을 지나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그다지 극적인 느낌이 없는 무난한 선택과 수용의 연속입니다. 다만, 그 과정을 묘사하는 방식이 워낙 아름다워서 종종 인생 전반의 이야기를 놓치기도 하고, 순간순간에 감정이입을 하다가 한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숨 가쁘게 느려터진대도 불구하고 소설의 흐름에 푹 빠져드는 경험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독특한 매력의 소설입니다.






2. 누구나 공감할 만한 표준에 가까운 삶이 닮긴 소설

이 소설의 주인공 스토너는 무려 1800년대 말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뭔가 전형적인 시작입니다만, 시기로 보면 정말 옛날이야기입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몸으로 때우며 고생고생하는데 수확은 신통치 않은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는 뜻하는 바가 있어 아들을 도시에 있는 대학에 보냅니다. 농업에 대해 제대로 배우면 농사일이 좀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1800년대 사람인 그의 아버지 입장에서는 획기적인 결정을 한 셈입니다. 이렇게 스토너는 인생에서 첫 번째 변화의 기회를 맞이하고 1910년에 19살의 나이로 미주리대학에 입학합니다.


스토너가 무난하게 농업에 대한 선진기술을 배워서 집으로 돌아와 농사를 이어받아 신식 기술을 도입해 집안을 일으키고 행복한 삶을 살았더라면 더 심심한 단편소설이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스토너는 정말 소설처럼 영문학 개론이라는 다소 지루할만한 수업 시간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한편으로 인해 영혼이 흔들리는 최초의 경험을 합니다. 참으로 소설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독자 입장에서 극 초반에 벌어지는 이 사건이 그렇게 큰 의미가 될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이 소네트 사건으로 말미암아 스토너는 평생을 영문학 공부에 바칩니다. 살면서 무언가에 매진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이렇듯 무언가 자신의 삶을 뒤흔드는 사건을 겪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좋아하고 시간을 보내고 열정을 더하는 일은 그 일을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경험이 강렬할수록 더 깊은 애정과 열정으로 그 일을 해냅니다. 스토너는 영문학이지만 독자들은 그 장면에 이르러, 그리고 스토너의 삶 전반을 지배하는 것을 조망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나만의 일과 계기가 된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런 방식의 독서는 이 소설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각자의 인생을 돌아보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인생 이력은 학업, 취업, 결혼, 직장 생활, 말년 생활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모든 순간이 주어진 환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용의 과정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 이력을 더 극적으로 줄이면 톰 행크스의 말처럼 "교수가 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지경입니다. 이렇게 단순하고 특별할 것이 없는 스토너의 이야기가 독자에게 큰 공감과 묘한 울림을 주는 것은 인생의 모든 과정에서 그가 보여주는 인내와 인고의 고집스러운 모습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능력과 환경이 좋아서 인생이 승승장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다수는 삶이 지속될수록 실패와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고 그저 버텨내는 것만도 버겁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현명하지 못했던 선택이 후회가 되는 일도 많고, 가족이나 지인들 때문에 뜻하지 않게 큰 고통을 지속적으로 받기도 합니다. 특히나 불황이 이어지고 경제적인 고통이 심해지면 더욱 사는 것이 녹녹치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인생의 질곡을 오롯이 견디고 인고하며 꾸역꾸역 살아나갔던 스토너의 모습은 이렇다 할 성공은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표준에 가까운 삶이라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위로를 얻게 됩니다.






3.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결국은 부러움이 가득한 소설

스토너의 삶이 마냥 버티고 인고하는 수용의 과정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할 수 있는 한 모든 면에서 능동적으로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내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모의 배려로 농업을 배우기 위해 형편이 어려움에도 대학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농업을 버리고 돈이 안되는 영문학을 선택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적극적인 선택을 한 것이죠.


그다음 장면에서도 적극적인 선택이 이어집니다. 모두가 나가서 조국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휩쓸던 세계 1차 대전 당시 스토너는 학교에 남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시대 당시 캠퍼스 교실에서의 수업을 거부하고 민주화 투쟁에 나서던 시기와 비슷합니다. 당시에 공부를 하겠다고 교실에 남아있던 학생은 무개념, 이기적인 인간으로 낙인이 찍혔을 것인데, 하물며 나라를 위한 전쟁에 나서는 것을 거부한 청년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얼마나 냉담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어지간한 자의식이 아니고는 선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저 인내하고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스토너는 이 지점에서도 주변의 강요를 무시하고 스스로 원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이디스를 보자마자 반하고 너무 쉽게 결혼을 결정합니다. 이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유경험자라면 누구나 한숨을 쉬고 개탄하게 됩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단순히 한 이성을 만나는 것을 넘어 가족과 가족이 이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신중해야 합니다. 가치관과 지향점이 같은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살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동반자라면 그보다 더 든든하고 행복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토너는 이 부분에서 완전히 실패하고 죽을 때까지 이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이 또한 스토너 스스로 결정한 일입니다. 더욱이 소설의 말미에 가면 스토너의 인생이 무너져갈 때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키는 것은 결국 사는 동안 그렇게 그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아내 이디스입니다. 두 번 살 수 없는 인생이라고 할 때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이 마냥 나빴던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한 단면만 보면 희극인지 비극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책을 쓰고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의 직장 생활에서도 그는 조직이 요구하는 유연한 자세를 취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자기 멋대로 선택하고 생활하는 것이죠. 직장 생활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위계가 있는 직장이라는 환경에서 자기 소신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커리어를 이어가기도 힘들어집니다. 스토너도 자신의 태도와 선택의 결과로 큰 곤경에 처합니다만 이 또한 맷집 좋게 끝까지 버텨냅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소신을 굽히지 않습니다.


스토너라는 그저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인생을 살아내었던 인물은 인생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소신대로 선택을 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는 담담하게 수용하고 참아내고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며 삶을 마무리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이 과정을 바라볼 때 애잔하고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한편 눈부시게 아름답고 참으로 부러운 삶이 것입니다. 바로 이런 특징 때문에 이 소설이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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