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책 리뷰
1. 에리히 프롬 형님 죄송합니다...
음... 그 유명한 에리히 프롬 형님을 그동안 외면해 왔습니다. 한 때 책이라고는 읽지 않던 시절에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너무 사전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읽기 시작했다가 학을 뗐던 기억 때문에 영원히 작별을 고했었습니다.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래서 도대체 사랑의 기술은 언제 알려준단 말인가.'하며 바이바이 했던 것이 어 롱롱 타임 어고인 것입니다.
독서 모임에서 에리히 프롬의 책을 선정할 때 속으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원래 독서 모임이란 스스로는 절대 고르지 않을 것 같은 책을 읽는 것이 또 제맛이기에 그럽시다고 대답했던 것이 신의 한수였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는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한 번쯤 걸음을 멈추고 읽어보아야 할 책이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근래 들어 소설을 제외하고 이렇게 집중해서 읽었던 책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주의를 환기해 주는 책이었습니다. 뭔가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개인의 인생과 인생의 의미와 사회와 세계 속에서의 인간을 다이나믹하면서도 냉철하게 짚어주는 약도 같은 책입니다. 작게는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정신적인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고, 더 나아가 인류가 바람직한 세상을 이루어 내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조언하고 있습니다.
이 형님 사랑의 기술을 빌미로 뭔가 단순한 걸 어렵게 설명하는 기술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매우 죄송합니다. 그 땐 제가 너무 어렸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반 짐승처럼 살던 시기에 형님을 만나서 진가를 전혀 몰라봤습니다. 거 뭐, 이제라도 알아봤으니 된 거 아닙니까? 앞으로 잘 알아 모시면 전화위복이 될지도 모르지요. 어차피 형님은 먼저 가셨지만...
2. 진심으로 삶을 사랑하는 방법들
프롬 형님은 이 책을 통해서 개인의 관점에서 삶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점점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지의 문제를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프롬 형님의 말년에 연구를 도왔고 자료를 정리했던 풍크 형님이 편집과 배치를 잘 한 것이겠지만요. 어떤 면에서는 편집자의 사견이 어느 정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아무리 정확하게 의도를 옮겨도 한 다리 걸치면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것이 우리 인생사가 아닙니까?
그러나 책의 내용은 프롬 형님이건 풍크 형님이건 누구건 상관없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어떻게 좋았느냐고 설명을 장황하게 하고 싶지만 그러면 책 요약이 되어버릴테니 리뷰에 줄거리를 쓰지 않는 저의 일반적 패턴에서 너무 벗어나 그냥 막연하게 좋았다고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개 좋았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동안 헤드 스모그 현상처럼 멍하니 책을 읽었던 과거를 반성하게 만들었을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도 솔직히 제일 좋았던 것은 프로이트를 은근 열심히 까는 내용이 나오는 부분이었습니다. 무식한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프로이트가 일반 대중에게 심리학입문 분야에서 너무 과도한 지분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듯하지만 주장이 좀 너무 변태 같잖아요. 프로이트의 주장을 듣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변태요 정신병자처럼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성적인 부분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고 말입니다.
융도 좀 어렵고 아들러 심리학은 너무 아들아들.. 아니 야들야들해서 아쉽습니다. 그러다가 프롬 형님의 정신분석학적 글을 읽으니 뭔가 마음이 뻥 뚤리고 속이 확 좋아졌달까? 쉰 소리는 하나도 없고 곁가지도 없고 그저 스뜨레이뜨로 직진하는 말들이 너무 공감이 되었습니다. 핵심만 짧게 정확하게 정의를 내려주고 진단해 주니 제 삼자의 언어로 나를 들여다본 기분이 들어서 온 몸 정신 구석구석을 세척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자는 거냐면, 물질과 돈이 우선시 되면서 사물화된 인간, 값어치를 따지는 인간이 된 사회에서 스스로를 분리해야 합니다. 사물과 등가교환되거나 치환되는 내가 아니라 사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인간은 존재 자체로 귀하고 의미있는 것이라는 하나마나한 부처님 말씀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인간에서 이타적 인간으로, 수동적 인간에서 활동적 인간으로, 소비하는 인간에서 존재하는 인간으로 창의성을 회복한 인간으로 전환을 이루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기적, 이타적, 수동적, 활동적, 창의성 등의 단어들의 정의와 의미가 국어사전의 의미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걸 하나하나 설명하기에는 제가 매우 귀찮기 때문에 역시나 여러분이 직접 읽어보셔야 합니다.
3. 프롬 형님이 고대하던 세상이 도래하지 않을 수 밖에...
사랑의 화신 에리히 프롬 형님은 핵무기가 당장 터질지도 모를 일촉즉발의 냉전 시대를 가슴 조리며 보낸 형님이십니다. 그런데 이걸 그냥 '아이 무서워, 폭탄 쏘지마~~'하고 끝내기에는 본인이 너무 전문가라.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훅 보내버리는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가 아닙니까? 그러니 이 황당하고 불안한 세상에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이 그 얼마나 안타까웠을 것인가 말입니다. 사랑의 화신이라니깐!
그리하여 니네 왜 이렇게 위험에 둔감한 줄 아냐? 너희가 왜 이런 세상에 불안 없이 생각없이 사는 줄 아냐? 이 답답한 인간들아~~ 라고 이 글들을 막 쓴 것입니다. 그동안 이 형님과 척을 두고 살았기 때문에 어떻게 사셨는지 잘 몰랐습니다만, 조금 찾아보니 핵무기 확산 방지 평화운동을 직접하신 행동파입니다. 실천하는 비판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라고나 할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형님이 비판하신 사회 각 분야의 문제들이 작금에는 더욱더 강화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돌아가셔서 이 험한 세상을 보지 못하신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인간들의 진정한 해방과 사회의 변혁을 추구하고 아름다운 인본주의적 세상과 공동체를 꿈꾸셨던 프롬 형님의 유토피아는 형님의 마음 속에만 존재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저서를 통해 그 유토피아를 기억하고 자각하고 꿈꾸는 사람들이 생겼다면 다행이다 싶습니다.
이 글의 중 후반에 등장하는 프롬 형님의 방법론들은 읽을수록 안타깝고 공허합니다. 마르크스의 글을 읽으면서도 똑같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스마트하고 훌륭한 분들은 세상을 다르게 보고 아름다운 방법론을 제시합니다만, 전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잘 읽어보면 이 분들은 그 방법론을 막연한 꿈처럼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신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이것만 알아준다면, 요런 내용에만 동의해 준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신념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렇습니다. 이 분들이 가진 가정 중 정말 크게 틀린 부분입니다만, 모든 사람들이, 아니 적어도 대다수의 인간들이 나와 비슷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한 것입니다. 다들 본인처럼 더 중요한 가치에 의미를 두고 행동하며 이타적일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죠. '나처럼 자기 욕심을 어느 정도 제어하고 절제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논리 전개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득실을 인생의 최우선 과제이자 인생의 목표처럼 행동하며 살아갑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결정적일 때 그렇게 행동합니다. 물론 이타적이고 함께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하는 훌륭한 분들도 있지만 상대적 소수이자 약자인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은 날로 살기 어려워져만 가는 느낌입니다. 함께 잘 살자는 모토는 점점 빛이 바래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롬 형님의 이 글들은 더욱 의미가 커지는 것 같습니다. 뭔가 눈이 번쩍,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을 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