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크하르트 톨레 <붙잡지 않는 삶> 책 리뷰
1. 이 책은 대관절 무엇인가?
에... 에크하르트 톨레는 세계적인 메이저 영성 지도자이자 명상 서적 분야 부동의 저자입니다. 달라이 라마, 틱낫한과 함께 삼두마차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즐겨 읽는 달리기 관련 에세이들이 하나같이 '여러 이유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고 삶이 무너져 있었는데 우연히 달리기를 접하고 점점 건강도 회복하고 기력과 활력을 얻었다. 너무 좋구나. 당신도 뛰어라.' 이런 내용인데, 톨레는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오다가 명상을 통해 삶을 회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은 케이스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깨달음을 모두에게 나누는 그런 느낌으로다가 영향력을 끼치는 영적 지도자가 된 분인 것 같습니다.
그나마 톨레는 나머지 두 분과 달리 헐벗은 상태가 아니라 양복 입고 생활하시는 것 같아 삼대 영성 지도자 중에서는 가장 현대적인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분의 책들이 토탈 천만 부 이상은 훌쩍 책이 팔린 것 같으니 어쨌거나 대단한 양반임은 틀림없습니다. 영미권에서 이런 명상 열풍은 대단해 보입니다. 그들이나 우리나 갈수록 살기 힘든 세상이니 마음을 지키라는 메시지는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약간 양상이 달라 보입니다. 부동산 대 열풍, 영끌, 파이어족 등을 보면 느낄 수 있듯 한국인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분들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명상 분야가 마이너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노력하며 경쟁하는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톨레의 가르침이 과연 얼마나 먹힐까 싶기도 합니다. 무속 논란, 사이비 종교 등과 어정쩡하게 엮여서 도매금으로 취급될 위험도 있어 보입니다.
어쨌거나 이 책은 생각과 감정의 함정은 무엇인지 관찰하고 과거의 얽매임, 미래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현존하는 진짜 나를 찾는 실천 방안을 서술한 책입니다. 원래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고 번역된 그의 저서 <The Power of Now>의 실천 가이드인 <The Practising The Power of Now>를 번역한 책입니다.
이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흥미로운데, 영문 원서를 AI가 번역하고 이를 교정하고 엮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흰 고래의 흼에 대해서>에서도 극적으로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어쩌면 앞으로 사람들은 전문 번역가의 번역보다는 AI가 번역한 문장을 더 선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학술저서가 아닌 이상 번역에 있어 뭐가 더 나은가의 판단에 "익숙함"이라는 항목이 크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 번역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문맥과 표현을 중시하는 번역이 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ChatGPT를 사용하지도 않음에도 이 책의 번역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붙잡지 않는 삶>이라는 제목과 눈 감은 여성의 모습이 그려진 여백 가득한 표지는 이 책의 성격과 너무 잘 어울립니다. 책 제목을 만약 "현재의 힘 연습하기" 뭐 이런 식으로 생 직역으로 붙였다면 팔아먹기 힘들었을 겁니다. 엮은이가 워낙 이 분야 베테랑이시라 팔리는 제목과 표지를 잘 뽑았습니다. 일단 선택되기는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2. 이 책은 대관절 뭘 하자는 것인가?
<붙잡지 않는 삶>은 제목처럼 붙잡지 말자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에 매몰되지 말 것, 감정을 나라고 오해하지 말 것, 과거에 사로잡혀 있지 않을 것,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지금"을 놓치지 말 것, 현재의 실존을 느끼고 연습할 것을 조언하고 이를 위한 실제적인 실천 방법을 단계별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존 연습이라는 원제를 달고 출간된 것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인식부터 실존하기까지 단계별로 나아가는 연습을 가이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보통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와 초자아 등을 분리하고 있는 것은 유사합니다. 저자는 일단 자아와 분리된 진짜 '나'를 발견하는 것이 나를 찾는 여정의 시작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를 위해 생각에서 벗어나고 마음을 도
구처럼 사용하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알아차리는 방법 등을 조언합니다.
이후에 구체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차근차근 소개합니다. 관찰에서 짧은 현존을 깨닫는 어드밴스드 단계를 소개하고 다양한 방식의 치유와 깨닫기를 제안합니다. 더 나아가면 나를 넘어 관계에서 나를 관찰하고 진짜 관계 맺는 법을 설명합니다. 점점 저자의 가이드를 따라가면 점차 내면이 고요해지고 안정되며 진짜 감각과 진짜 나를 만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책이 너무 좋았습니다. 약 1/3지점까지는 최근의 복잡했던 저의 심경을 돌아보고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반복적으로 얽매이고, 가족들의 생존과 관련해 미래를 끊임없이 걱정하고 불안해하던 스스로를 관찰하고 조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마음이 많이 가벼워지고 현재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3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했고 책값을 충분히 뽑았습니다.
1/3 지점 이후의 조언들은 사실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제가 명상 훈련을 해 본 사람도 아니고 실천 편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해보기도 어렵고 여유도 없어서 필요성만 인식했습니다. 솔직히 바쁘다 바빠 현대인들에게 저게 되겠나 싶은 생각이 더 컸습니다. 한 몇 달은 여행이라도 가서 마음먹고 수련을 하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앞 부분의 조언보다 후반부 조언이 더 와닿고 삶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습니다.
3. 이 책은 그래서 누가 읽으면 좋은 것인가?
만약 내가 지금 마음이 심란하고 고민이 많아서 뭔가 방법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다면 이 책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인생의 항해에 암초를 만나 표류하고 있다면 마음을 챙기는 한 방법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마음이 너무 힘들 때 이 책의 조언이 오히려 짜증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뭔가 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해 매진을 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을 여유가 없거나 읽어도 조언대로 할 여지가 부족할 겁니다.
어차피 명상이나 마음 챙김 등에 전혀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아예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사실 호불호가 전혀 없을 책입니다. 이 책을 찾아서 선택하고 시간을 들여 읽는 사람이라면 이 분야에 관심이나 필요가 반드시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미 명상 분야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 있고, 익숙하며 관련 책을 이미 읽어본 분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고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이 책을 읽는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굳이 예외를 든다면 본인이 속한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을 선정하는 바람에 생판 관심 없는 분야 책을 읽어야만 하는 경우일 텐데, 이런 경우는 굉장히 고전할 수 있습니다. 워낙에 인간은 생소한 것을 받아들이는데 취약합니다. 이게 옳고 그런가 또는 좋은가 나쁜가와 상관없이 익숙지 않은 것은 일단 거부하는 것이 생존 본능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이유에서건 어느 정도 명상이나 마음 돌봄 분야에 사전 지식이 있는 분이 읽어야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책인 것입니다.
<붙잡지 않는 삶>은 결국 이 책을 읽는 시점에 독자의 상태가 어떠한가, 책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신뢰하는가, 어느 정도 마음과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가, 마음 챙김에 대한 필요가 알마나 간절한가, 생애 주기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 등의 여건에 따라 간절한 책이 될 수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많은 삶의 갈림길 중 자신을 찾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한 가지 갈림길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