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란 Jul 14. 2018

컨스터블 그림에서 발견한 버로우 Burrow

브리튼 테이트(Tate Britain)에서



나는 다른 나라들보다 더욱 행복한 땅, 사랑하는 잉글랜드에 태어나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리고 내 조국

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워즈워스가 말했듯이, 나는 잉글랜드의 녹색 입사귀들이 살랑대고, 잉글랜드의 시냇

물들이 흘러가며 내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할 것이다.


_ 영국의 화가, 존 컨스터블 John Constable






영화 <해리포터>의 위즐리의 집과 그 주변 풍경을 떠올려보자. 영화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이 아닌,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Harry Potter And The Chamber Of Secrets>으로 해주길 바란다. <해리포터와 불의 잔 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에 나온 모습도 좋다. 세드릭 가족과 함께 포트키를 이용해 퀴디지 월드컵장으로 이동했던 장면까지 떠올린다면 더없이 훌륭하다.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아래 글을 읽어보자.



위즐리 형제들은 하품하며 구시렁대면서 몸을 축 늘어뜨리고 밖으로 걸어갔다. 해리는 정원이란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즐리 가족이라면 이런 정원을 좋아하지 않겠지만 - 잡초가 무성했고, 잔디는 자랄 대로 자라 있었다 - 가장자리에는 옹이 진 나무들이 죽 심어져 있었으며, 꽃밭마다 해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꽃들이 피어 있었고, 커다란 초록빛 연못에는 개구리들이 그득했다.



'버로우 Burrow'라는 이름 뜻과 걸맞게 은둔하기 딱 좋은 곳의 풍경이 떠오를 것이다. 오가는 자동차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누구도 좀처럼 살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우두커니 솟아 있는 오두막. 이웃이라고는 말하는데 세드릭이나 러브굿의 집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그곳. 이웃 대신 제법 큰 웅덩이가 곁에 있다. 그 주변에 담장처럼 작은 나무들에 초지 주변에 띠를 이루고 있다. 위즐리 씨가 자동차를 몰고 차고에서 나오지 않으면 바람에 나무와 풀들이 나부끼는 소리가 전해질 법한 한가로운 시골의 모습. 그곳이 바로 버로우다.



영화 해리포터 / 구글 이미지



버로우의 풍경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시골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위즐리의 집이 있는 곳은 잉글랜드의 남쪽에 있는 데본 주 Devon의 로터리 세인트 캐치폴 Ottery St Catchpole이었다. 하지만 런던을 떠나 콘월주로 이동하기 직전에 내가 본 데본 주의 모습과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데본 주의 주도인 엑서터보다는 작지만 큰 도시인 폴리머스 머물렀기 때문이다. 당연히 버로우가 있을 법한 자연친화적인 풍경을 해리처럼 둘러보지는 못했다. 물론 폴리머스에서 기차를 타고 콘월 지방으로 이동할 때 10분 정도 움직이자마자 펼쳐진 풍경은 어디에 '버로우'가 있어도 이상할리 없는 시골을 보았지만.


잉글랜드 서남쪽은 영국 내에서도 목가적인 모습을 잘 간직한 곳이지만, 이외 말고 영국에서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다 보면 비슷한 듯 닮은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영국 하면 런던이나 고풍스러운 도시를 떠올리지만, 런던 도심에서 벗어나 다른 도시로 이동하다 보면 영국의 시골 풍경을 금방 만날 수 있다. 날씨에 따라 먹구름 아래 바람이 흔들리는 짙푸른 초지, 쨍쨍한 햇빛 아래 반짝이는 초지를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폴리머스에서 팬잰스로 이동할 때 보이던 풍경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리 신기한 사실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큰 도시를 벗어나면 금방 고개 속인 벼가 익어가는 논, 작물들이 자라는 밭이 펼쳐져 있다. 혹은 강과 산과 평지가 이어진 풍경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이상하지 않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도시가 있으면, 대부분의 나라에 시골이 있는 건 비교적 당연한 일이니까.

볼드윈 Stanley Baldwin

하지만 나라를 상징하는 장소, 공간을 생각해보라고 할 때, 시골을 꼽는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다. 시골보다 도시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나에게 우리나라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곳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서울', '부산', '제주' 등 도시를 꼽을 테니까. 그런데 산업혁명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고, 산업박람회를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열었던 대도시 런던을 가진 영국은 이렇게 말한다. "잉글랜드는 시골이고 시골이야말로 잉글랜드"라고 말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시골이라니. 처음 이 이야기를 읽고, 영국에 대해 뭘 좀 모르는 사람이 한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말은 철강 회사의 부사장까지 올랐던 영국인이 한 말이라고 한다. 게다가 영국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재무차관, 상업장관, 재무장관을 줄줄이 역임하고, 20세기 초반 3차례 영국의 총리였던 볼드윈 Stanley Baldwin이 한 말이라니. 이쯤 되면,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영국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시골에서 찾은 이유가 궁금해진다. 

 도대체 영국이 생각하는 시골, 전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왜 그 모습을 사랑했을까.


그 답을 난 미술관에서 찾았다.





해리가 "이렇게 멋진 집은 처음이야."라고 말한 버로우의 주변 풍경을 화폭에 고스란히 옮긴 화가가 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알려주었다. 바로, 존 컨스터블 John Constable, 1766~1837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윌리엄 터너 J. M. William Turner, 1775~1851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컨스터블의 작품은 영국의 국립 미술관에서 대부분 찾아볼 수 있지만, 처음 그의 작품을 본다면, 가장 영국적인 전통 영국 회화들만 따로 모아 전시한 런던 테이트 브리튼 Tate Britain을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테이트 브리튼에 있는 컨스터블 작품 자체도 좋지만, 그보다 그곳에서 보면 정말 숨은 보물을 발견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보통 서더크 역 근처의 테이트 모던에 가기 때문에, 분주한 다른 런던의 국립 미술관들 가운데 비교적 한산한 편이기 때문이다.



Tate Britain / London



1500년대부터 근대 회화 가운데, 가장 영국다운 작품을 엄선해 전시하는 테이트 브리튼은 테이트 모던 Tate Modern, 테이트 리버풀 Tate Liverpool,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Tate St. Ives와 함께 테이트 미술관 TATE 4개 중 하나다. 그런데 같은 이름의 4개의 미술관이라니. 꼭 테이트 브리튼을 가기 전에 몸을 녹일 겸 산 라테 브랜드 네로 Nero처럼. 프랜차이츠 느낌이 나는 것도 같다. 테이트 브리튼은 4개의 테이트 미술관 중 가장 먼저 지어져서, 테이트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가 된 미술관이니 본사라고 말해야 하나 싶다. (이렇게 같은 이름의 미술관이 낯설 수도 있지만, 서울에만 본관과 7개의 분관이 모인 SeMA도 있는데, 영국 전역에 4개 정도면 사실 많은 축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테이트는 사업가 헨리 테이트 Henry Tate,1819~1899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영국은 19세기부터 자국 명화를 국가 소장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 후 영국의 국가적 위상은 유럽 대륙의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빠른 산업화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해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로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이때 영국은 '졸부'와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19세기 중반까지 영국이 예술품을 대하는 태도는 경제 수준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영국에 자국 명화만을 전시한 미술관이 없었고, 1759년에 세워진 영국박물관, 1824년에 세워진 영국 국립미술관에서 조차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회화를 전시할 뿐, 영국 작품들을 보기 힘들었으니까 말이다.  이를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테이트 경이었다.


  테이트 경은 독일인에게 각설탕 만드는 특허 기술을 사들여 설탕 무역으로 큰돈을 벌었던 유능한 사업가였고,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데도 적극적이었다. “영국의 예술을 부흥하여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다음 세대에게 기쁨을 전할 수 있도록 돕자”는 회사 창립 이념에 걸맞게 대학과 병원을 세우는데도 적극 나섰을 뿐만 아니라, 음악회나 연극에도 후원하는 등 자신의 철학을 실천으로 옮겼었다. 특히 평소에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 당대 영국의 대표적인 화가였던 프레더릭 레이턴, 존 밀레이, 조지 프레데릭 왓츠와 친분을 쌓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당대에 높은 수준의 영국 화가가 그린 회화를 소장하고 있었다.


  1889년 테이트 경은 8만 파운드 기부금과 자신이 수집한 65점의 회화를 국가에 기증하며, 지금의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 근처나 런던 시내 중심부에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을 짓고자 했다. 하지만 런던 전역에 이미 많은 박물관들이 들어선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1897년 테이트 경이 원했던 자리는 아니지만, 템즈 강가 핌리코 Pimlico 습지대에 들어선 밀뱅크 Millbank 자리에  공식적으로 문을 연다. 개관 초기에는 ‘밀뱅크 갤러리 Millbank Gallery’라고 불리다가, 1930년부터 영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미술관 건립에 기여한 테이트 경의 공로를 기려 ‘테이트 갤러리’라고 불렸다. 지금은 2000년에 테이트 모던이 문을 열면서 테이트 브리튼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런던 사람들에게 테이트 브리튼보다 테이트 갤러리로 불린다고 한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테이트 브리튼이 들어선 밀뱅크 지역은 은행 같이 느껴지지만, 사실 감옥이 있던 곳이다. 그것도 19세기 초반에 지어져 유럽에서 가장 큰 감옥이었다. 그 이름은 당시 유럽에서 꽤 유명했다. 예를 들어 영화 <아가씨>의 원작으로 알려진 『핑거 스미스』와 함께 세라 워터스의 3부작 중 하나 『끌림』의 무대가 바로 밀뱅크 교도소다. 이젠 밀뱅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유지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1890년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892년에 범죄자들을 오스트레일리아로 추방시키고 난 후 그 자리에 미술관이 들어선 것이다.


 기술이 발전한 요즘이야 상관없지만 습지대는 미술관에게 좋은 입지조건은 아니다. 1928년 테이트 브리튼은 홍수로 전시실이 침수된 적도 있었으니 여전히 눅눅한 늪지대 밀뱅크의 이미지를 지운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금 테이트 브리튼에 들어가면, 그 순간 눅눅한 습지대에 대한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 2011년 3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밀뱅크 프로젝트’를 통해 테이트 브리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유리로 된 돔을 얹어 원형 홀을 만들었고, 과거 침수로 인해 복잡하게 바뀌었던 전시 동선을 관람하기 좋게 정리했다. 이전에 가본 적 없는 난 깔끔한 테이트 브리튼만을 느껴 비교할 수 없지만,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테이트 브리튼은 좋은 곳이었다.


 테이트 브리튼에 도착해, 가장 먼저 유리 돔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니아 연대기』의 「마법사의 조카」 속 주인공 디고리가 된 것 같았다. 물웅덩이를 통해 지극히 영국적인 테이트 브리튼의 세계로 떨어진 기분이랄까. 드디어 영국적인 이 세계에서, 영국인이 사랑한 풍경을 찾아서 걸어갈 때다.



Tate Britain 현판 / London



 영국의 시골 풍경을 사랑했던 컨스터블은 서퍽 주 Suffolk의 스타 우어 밸리에서 태어났다. 런던에서 떨어진 시골 마을이었던 그곳의 온화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그는 행복한 유년 시기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컨스터블에게 스타 우어 밸리에서 기억은 특별했다. 자신의 에너지를 다 쏟아 그리고픈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자연"이라는 이야기에 의아한 생각이 들지만, 그에게 자연은 평생을 다하고픈 사랑이 그 자체였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자연의 화가’가 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히는 데서 진정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컨스터블이 활동했던 시기에 유럽에선 '자연주의' 화풍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대세가 아닌,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렸다. 머릿속에서 상상한 역사 속 장면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화폭으로 옮겼다.


물레방아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 버드나무, 오래된 모습의 강둑, 나는 그런 것들을 사랑한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나는 그것들을 그릴 것이다.


John Constable, Fen Lane, East Bergholt(1817) at Tate Britain

 1812년 컨스터블이 쓴 글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는 정겨운 영국의 시골 풍경을 진심으로 사랑한 화가였다. 컨스터블이 그린 영국의 전원 풍경은 단순히 평온한 시골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있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은 한적한 시골의 어느 한순간을 포착해 그린 것인데, 힘 있는 붓 자국 덕분에 조용한 시골길에 생동감이 전해진다.

 컨스터블 그림을 보는데 문득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여름방학에 할머니 댁으로 갔을 때, 올려다보았던 하늘이 생각났다. 개울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한 뒤, 따뜻하게 데워진 넓은 바위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내 몸을 지나가는 그림자가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바로, 구름이 태양을 지나가는 순간이다. 그때 눈을 살짝 떠서 바라보면, 커다란 구름 끝에 비친 silverline이 보였다. 실눈을 뜬 채 올려다 보면 보이던 그 모습. 밝은 태양빛이 구름에 부서져 흩어지는 모습. 그 모습은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의 그림을 보는데, 툭 머리에서 그때 그 장면이 나와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난 답을 찾았다.


영국인들이 컨스터블을 사랑한 이유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테이트 브리튼에 있는 컨스터블의 그림은 1800년대 영국 그림이 모여 있는 곳과 터너 컬렉션이 있는 두 곳에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컨스터블과 터너 두 사람 다 영국의 국민 화가이지만, 테이트 브리튼에 터너 컬렉션은 있어도, 컨스터블 컬렉션은 없다. 처음에는 컨스터블보다 터너가 더 사랑받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최근 20파운드 지폐의 주인공이 될 만큼 터너의 인기가 높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에든버러에 있는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에서 컨스터블 그림을 발견했을 때 내 생각은 바뀌었다.


Scottish National Gallery의 존 컨스터블 그림 /  Edinburgh


 영국은 두 명의 국민 화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한 명(터너)은 한 곳에서만 집중해서 볼 수 있게, 또 다른 한 명(컨스터블)은 어느 미술관에서든 볼 수 있도록 전시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렇게 한 이유는 두 화가의 작품의 특징과 연관되어 있다. 터너의 작품은 초기와 후기의 작품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후기 작품은 물체의 형태는 흐릿해지고, 폭풍, 안개, 빛과 같은 자연 자체가 주인공이 되어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래서 난 터너의 작품 앞에 서면 독일의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안개 위의 방랑자 (1818)>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터너의 작품들은 테이트 브리튼을 비롯해 런던의 미술관에 두고, 흐름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청명한 여름, 어느 늦은 오후의 풍경을 그린 컨스터블의 작품들은 모두 다르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교적 일관성 있는 컨스터블 작품은 영국 미술관과 박물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인이 사랑하는 풍경을 담은 컨스터블의 작품을 영국 어디에서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영국의 전원이 어느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어디에서나 그의 그림이 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만큼, 아마 영국이 컨스터블을 몹시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가 또 있을까?  어느 하나로 콕 집을 수 없고, 어디에나 숨어 있는 버로우와 컨스터블 그림은 아무리 생각해도 닮았다.


끝으로 그리스 신전과 닮은 우아하고 고전적인 테이트 브리튼에서 컨스터블의 작품을 즐겼다면, 장소를 옮겨 트라팔가 광장에 장엄하고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내셔널 갤러리 The National Gallery (London)로 갈 것을 추천한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테이트 브리튼으로 절대 내주지 않을 컨스터블의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34번 방에 들어가면 바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그림 중 백미라고 할 수 있는 <The Hay-Wain(1821)>가.

그리고 이걸 보는 순간, 진짜 해리가 아늑하다고 느낀 버로우가 단번에 겹쳐 보일 것이다. 지극히 영국이 사랑하는 그 풍경이 말이다.


John Constable, The Hay-Wain(1821) at The National Gallery (London)




<참고 문헌>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이은화, 아트북스 (2011)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박지향, 기파랑 (2006)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조앤 K. 롤링, 문학수첩 (2014)

TATE 홈페이지 http://www.tate.org.uk/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부터 드래프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