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Edinburgh)'에서
"여행이시라." 그녀가 한숨을 내뱉었다. "너무 뻔하잖아."
"여행이 뭐 어때서?"
"현실을 외면하는 거 같잖아."
"왜 그렇게 현실을 과대평가해?" 이렇게 말하며 그는 내심 뭔가 묵직한 카리스마가 담신 말로 받아들여지길 기대했다.
그녀의 반응은 코웃음이었다. "뭐 나쁠 건 없겠지. 돈이 넉넉한 사람들에겐 말이야. 왜 그냥 '난 2년쯤 놀면서 휴가를 떠날 거야'라고 솔직하게 얘기 안 해? 같은 거잖아. 뭐가 달라?"
"여행은 마음을 넓혀 주거든."
_ 데이비스 니콜스, 『원데이』중...
어느 날 갑자기 두 사람은 만난다. 그 어느 하루는 1988년 7월 15일, 세인트 스위딘스데이다. 비 졸업식이 끝난 후 친구들과 거나하게 취한 엠마 몰리와 덱스터 메이휴는 아직 태양이 떠오르지 않은 푸른 새벽에 만난다. 세인트 스위딘스데이에 비가 내리면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며 유쾌하게 웃는 두 사람. 성격도 꿈꾸던 미래도 달랐던 두 사람. 그 둘은 친구로 남기로 한다. 그리고 20년 동안 7월 15일마다 두 사람은 만나고, 싸우고, 전화하고, 그리워하고, 위로하고 그리고 사랑한다. '남녀 사이에 영원한 친구는 없다'는 불문율을 깨지 못한 두 사람의 이야기, 영화 <원데이(One Day)>의 이야기다.
아침이 되기 직전 푸른빛이 감싼 도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도시로 그려진 영국의 에든버러에 도착했다. 런던에서 밤 버스를 타고 에든버러에 내리자마자 이른 새벽이란 시간을 체감하게 만든 건 푸른빛이 아니라 쌀쌀한 날씨였다. 졸업했다는 이유로 거나하게 취한 엠마나 덱스터가 아닌 난 캐리어를 열고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었다. 이른 아침이어서가 아니라 7월 하순의 에든버러는 런던과 달리 정말 추웠다. 버스에서 푹 잠들어 아직 깨어나지 않은 나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들 만큼. '왜 이렇게 추운 거야.'라는 말이 입안을 맴돌았지만, 그 말을 하기보다, 부지런히 발을 움직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판단한 난 부지런히 움직였다. 서둘러 버스터미널을 나와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에든버러 올드타운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깊이 드리워진 도시들을 여러 곳 보았지만, '에든버러'는 유독 개성이 강했다. 화려한 신시가지를 뒤로한 채 올드타운으로 걸어갈수록 'Old'라는 단어의 의미가 도시에 세겨진 게 보였다. 반듯반듯한 길 대신 울퉁불퉁 모난 돌길과 오르막과 계단의 연속인 돌길을 걸을수록 내 손에 붙들린 캐리어가 굉장히 원망스러워졌다. 버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 거리는 분명 가까웠는데, 인도와 차도 사정이 이렇게 험악한지 미처 알지 못했던 난 차가운 에든버러의 아침 공기에 땀을 식히며 걸었다.
마치 중세로 시간여행을 온듯한 기분을 만들어주는 올드타운. 상대적으로 지금의 시간과 닮아있는 18세기에 조성되어 사뭇 다른 풍경을 자아낸 신시가지. 두 구역 모두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두 시가지를 구분하는 거대한 강처럼 보이는 철길을 따라 내려다보면 보이는 거대한 월터 스콧 경 기념탑이 보인다. 월터 스콧과 로버트 번스가 활약했고, 셜록홈스를 탄생시킨 아서 코난 도일이 유년시절을 보낸 도시가 에든버러다. 그래서일까. 에든버러는 2004년 유네스코에서 뽑은 문학의 도시로 지정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문학적으로 살펴볼 것들이 가득한 이 도시에 7월 15일이 아닌 7월 끝자락에 도착한 나를 반기는 건 8월부터 시작하는 에든버러의 대표축제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Royal Edinburgh Military Tattoo)를 즐기기 위해 미리부터 찾아온 관광객이었다. 때로는 관광객과 함께 때로는 관광객과 멀어지는 에든버러의 하루를 시작했다.
영화 <원데이(One Day)>에서는 알 수 없지만, 소설 『원데이』를 읽으면, 엠마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다. 깊이 생각하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시위에 참여하고, 자신의 글을 쓰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이는데. 그녀가 공부한 곳이 에든버러였기 때문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같은 곳에서 공부했지만, 전혀 다른 사람으로 성장한 덱스터도 있지만. "그저 열심히 노력하고, 착하고 씩씩하고 당당하게, 뭔가 색다르게 살려고 애쓰는 것"이 "하루하루를 생애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는 말보다 실용적인 충고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에든버러에 머물며 공부했다 18세기부터 내려온 철학자, 사상가의 흔적이 남겨져 있는 펍이 있는 에든버러 올드타운에서 말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에든버러가 찬란했던 때는 글래스고가 부흥하던 20세기보다 조금 빨랐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스코틀랜드는 그 이전까지 잉글랜드에 비해 경제, 사회적으로 뒤쳐진 곳이었다. 하지만 18세기에 스코틀랜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그 시작을 열었던 도시가 바로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다. 1707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합병되었지만, 이후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운동이 에든버러와 글래스고를 중심으로 활약함에 따라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 프랜시스 허치슨과 같이 역사적인 족적을 남긴 사상가들이 활약했다. "18세기에는 에든버러 대학과 글래스고 대학은 잉글랜드의 상류층 자제들도 선망하는 명문 대학으로 발돋움했다." 우스갯소리이지만 "로열 마일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St Giles' Cathedral) 옆 머캣 사거리에 서 있으면 몇 분 안에 천재와 지식인 50여 명을 만나 악수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라고 하니. 18세기에 에든버러가 얼마나 찬란한 지적 수준을 자랑했을지 조금 가늠이 된다.
에든버러에 왜 철학자들이 활동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하여 정희원 씨는 "출판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독서 대중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철학자의 활동은 어느 마을의 시계와 같은 역할을 하며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집대성하며 빛을 발할 수도 있지만, '북쪽의 아테네'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한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그 변화는 한 철학자의 노력이 아니라, 그 철학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에든버러는 대중의 관심이 도시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도시를 걷다 보면, 작가들의 작품 투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호러, 괴담과 같이 으스스한 이야기도 있고 하이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신비로운 판타지 이야기에 대한 투어도 찾아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 시인이었던 "앨런 램지(Allan Ramsay; 1786-1858)는 에든버러에서 순회도서관을 설립해서 로열 마일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주었다"라고 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가 열었던 순회도서관은 영국에서 최초로 열었던 순회도서관이며, 이후 에든버러 공공도서관 설립 운동으로 이어졌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신문 읽기 혹은 독서 등 세상 이야기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결국 공동체 구성원들이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했고, 더 나은 생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실제로 책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18세기 후반 스코틀랜드에서 당대 최고 수준의 사상과 저작들이 탄생한 밑거름"이 될 수 있었다. "정말 귀 기울여 준다면 세상에 못 바꿀 건 없어"라고 자신의 책에 남긴, 엠마의 철학처럼. 18세기 에든버러에는 수많은 작가와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에든버러에서 활약한 작가 중 나에게 가장 익숙한 작가의 박물관을 찾았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바로,『보물섬』,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를 쓴 작가의 박물관으로. 사실 이 박물관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박물관은 아니다. 진짜 이름은 "작가들 박물관(The Writers' Museum)"이다. 다른 작가들도 있지만, 나에게 익숙한 이름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라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박물관 안을 들어가 보면 커다란 공간 중 상당 부분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에 관한 내용이니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에든버러 대학을 다녔으며 법학을 전공하여 변호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 『보물섬』,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로 그의 생을 설명할 수 있는데. 그는 건강이 좋지 못해 추운 스코틀랜드가 아닌 스위스, 캘리포니아, 남태평양 사모아 섬 등에서 살았다. 이곳저곳 여행했던 경험을 녹여내 우연히 만난 페니 벤더그리프트 오즈본의 아들을 위해 쓴 모험 소설이 바로, 『보물섬』이다. 그리고, 춥고 황량하고 척박했지만 자신의 고향이었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와 닮은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천천히 쌓아 올린 작가로서 명성을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하나님께서 묶으라 명하신 끈을 푸는 것은 궂은일이려니,
앞으로도 우리는 여전히 히스꽃과 바람의 자손 이리라.
고향에서 멀리 떠나 있지만, 아, 그것은 여전히 너와 나를 위해 있도다.
지금 북쪽 나라엔 금작화가 바람에 훨훨 날리는구나.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의 첫 장에 자신의 사촌인 캐서린 더 매터스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 혹은 시에서 느껴지듯이 그는 스코틀랜드, 자신의 고향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소설의 무대는 런던이었지만. 마치 셜록 홈스가 활약했던 곳은 런던이지만, 에든버러에서 난 홈즈와 왓슨 박사가 거닐었던 거리가 이곳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잠겼듯이 말이다. 지금 런던의 번화가만을 다녔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에든버러는 가스등이 켜진 안개가 자욱해 어떤 도시 괴담이 벌어져도 이상스럽지 않은 오싹한 분위기가 풍기는 게 더 큰 이유가 아닐까.
박물관은 작품보다 작가들이 사용했던 수장품 위주로 전시되어 있었다. 작가가 가지고 있던 책, 친필 사인이 들어간 책, 편지들, 체스판, 깃펜 등 개성이 묻어나는 물건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어쩌면 작품 이야기보다 작가 개인에게 집중하고 있어 『보물섬』,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등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며 박물관에 들어섰다면 조금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든버러를 문학의 도시로 일군 주역들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들러보면 좋은 곳이다. 특히, 보물섬을 쓸 때 활용하지 않았을까 의심이 가는 예쁜 조개껍질과 낚싯대는 보는 순간 『보물섬』을 떠올릴 수 있었다. 런던을 무대로 해서인지,『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에 대한 자료는 눈에 띄지 않아 결국 발견하지 못한 채 박물관을 나왔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외에 에든버러 출신 작가를 잘 몰랐던 나는 작가의 이야기를 확인하는 즐거움보다, 상상하고 추론하는 즐거움이 더 큰 곳이었다. 스코틀랜드의 향토적인 작품을 쓴 로버트 번스(Robert Burns)가 글을 쓸 때 사용했던 테이블이 눈길을 끌었다. 이 테이블을 로버트 번스는 오랫동안 사용했으며 이 테이블에서 좋은 시가 많이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내가 이 물건에 관심이 간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죽을 때까지 사용했던 물건이라는 설명 때문이었다. 그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시인의 마지막을 함께한 책상이라는 설명은 꽤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구글에 검색했다. 그의 이름을. 우연히 검색했는데, 꽤 반가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익숙한 선율이자, 연말에 들을 수 있는 노래 Auld Lang Syne (우리말로 '작별; :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들을 수 있다.)의 작사가이자 작곡가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순수한 작품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으로 인정하고 있다. 많은 민요가 작곡가가 누구인지, 작사가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로버트 번스는 어느 노인이 흥얼거리던 노랫말을 기록한 민요라고 전해진다. 그래서 다른 시인의 시에서도 유사한 가사가 종종 발견되기도 한다. 이 곡은 우리는 이별의 순간에 자주 부르지만 12월 31일에 한 해를 보내면서,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는 축가로 부르는 곡이라고 한다. 내가 여행하던 때는 송구영신과 먼 7월 어느 날이었지만 단 하루 머무는 에든버러라는 도시를 여행하며 듣기에 딱 좋은 곡이었다. 잉글랜드와 달리 스코틀랜드는 문화적으로 조금 더 먼발치에 있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익숙한 노래를 들으니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울퉁불퉁하고, 투박하게만 보이던 스코틀랜드가 조금은 친숙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박물관을 나와 로열 마일을 따라 걸어가려다, 방향을 틀어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로열 마일은 "에든버러성과 동쪽 지대의 홀리루드 하우스 궁전을 잇는 하이 스트리트"인데, 말 그대로 과거에는 왕족과 귀족들만 걸을 수 있었던 길이라 로열이란 이름이 붙었고, 그 길이가 1마일 정도라 로열 마일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이 길을 걸을 수 없었던 시민들은 좁은 골목길로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에든버러에는 좁은 골목길 클로스(Close)를 찾아볼 수 있다. 빽빽한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작은 골목길은 때로는 두 사람이 간신히 걸을 수 있을 만큼 좁은데 나름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작가 박물관에서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긴 하지만 중세 마을 골목에 선듯한 기분이 든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며, 로열 마일보다 클로스에 가까이 있는 이 작가 박물관의 위치 선정이 탁월하지 않았나 싶다. 박물관에서 내가 만난 작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예상 독자는 로열 마일을 우아하게 걷는 사람이 아니라, 클로스를 걸으며 바쁜 하루하루를 지내는 대중이었을 것이다. 바쁜 일상 중에도 궁금해서 읽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를 만드는 게 작가들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18세기 에든버러에서 활약했던 작가들은 그 바람을 이룬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점심을 먹고 천천히 칼턴 힐(Calton Hill)을 올라갔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철학자 듀갈드 스튜어트(Dugald Stewart) 기념비와 거대한 신전의 파사주를 만든듯한 건축물이 있는 칼턴 힐은 마치 아테나의 아크로폴리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덕에 우뚝 솟아있는 갖가지 기념물을 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에든버러 명소 중 하나다.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언덕을 올라, 도시의 풍광을 내려다보면 꽤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언덕 한쪽에 걸터앉아 올드타운이 마치 에든버러 성의 연장선인 듯 검고 거대한 성채처럼 보이는데, 하나 둘 내가 지나온 곳을 눈으로 담다 보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대도시 마천루나, 웅장한 자연 풍광과 또 다른 무언가. 즉, '시간의 무게'를 버텨온 도시가 주는 감동이 마음에 훅 들어온다.
그렇게 가만히 도시를 내려다보며, 애드 시런의 노래를 하나 들었다. Castle On The Hill. 어린 시절 일기장을 옮긴듯한 가사 중에 한 부분이 딱 귀에 들어왔다. 내가 옛날에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가사였다.
And I miss the way you make me feel, and it's real
(그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준 네가 그리워, 진심으로)
We watched the sunset over the castle on the hill
(우리가 함께 언덕 위 성 너머로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던 그때)
앤 해서웨이를 꽤 좋아했던 때, 몇 번 보았던 영화 <원데이(One Day)>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물론 저무는 태양이 아니라, 이미 떠오른 태양빛을 받는 도시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떠올랐다. 엠마와 덱스터가 걸었던 언덕은 내가 있는 곳에서 멀리 보이는 또 다른 언덕이지만, 칼턴 힐에서도 영화 마지막의 진한 여운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 <원데이(One Day)>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 시작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1988년 7월 15일이다. 왜 이들이 20년간 7월 15일을 특별하게 간직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비밀이 담긴 뒷 이야기가 펼쳐진다. 술에 취한 채 처음 만나 하룻밤을 함께 보내길 기대했던 덱스터와 그 하룻밤이 어려웠던 엠마는 어색했던 그 만남은 엠마 집에서 끝내지 않았다. 덱스터는 엠마에게 부모님이 자신을 데리러 오기 전까지 걸으며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엠마는 에든버러 올드타운을 지나 에든버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언덕 위로 데리고 간다. 4년 동안 에든버러에 머물러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올라가 보지 못한 홀리후드 공원(Holyrood Park)의 아서스 시트(Athur's Seat)로. 아서스 시트(Athur's Seat)는 에든버러 성에서 동쪽으로 1.5㎞에 솟아 있는 해발고도 250m의 바위 언덕이다. 에든버러 시내는 물론, 포스상 하구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엠마는 들뜬 듯 에든버러 시간이 내려앉은 도시의 전경이 하나 둘 보이는 그 거대한 언덕(Big Hill)을 오르며, 덱스터는 산(Mount)에 오르는 것 같다며 투덜거린다. 덱스터를 달래며 언덕을 오르던 엠마는 이렇게 말한다.
"내일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우리는 오늘 하루를 함께 했잖아."
(Whatever happens tomorrow, we've had today.)
웃음 띤 얼굴로 말하는 엠마는 일부러 경쾌한 발걸음에 자신의 감정을 숨기다, 진심을 이 말로 전했다. 어쩌면 우연일지도 모를, 하지만 대학시절 동안 남몰래 짝사랑했던 상대와 만나서 처음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했던 엠마에게는 특별한 오늘임을 말하는 고백이었다. 그 뒤에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우연히 또 우리가 만나게 된다면, 그것도 괜찮아, 우리는 친구가 될 거니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로 그 여운이 꽤 선명하게 남아 있다. 자신의 마음과 덱스터가 같지 않다는 걸 알기에, 엠마는 자신의 마음을 보이면서 동시에 숨기고 있었다.
엠마가 넌지시 속마음을 드러내다가 다시 숨겼던 이유는 그녀에게는 덱스터가 오늘을 특별하게 만든 사람이지만, 덱스터에게 자신이 오늘을 특별하게 만든 사람이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가 아니라면, 좋아했고 지금도 좋은. 오늘을 함께한 덱스터와 함께한 오늘이 어느 하루로 끝날 것을 알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엠마의 감정선이 잘 표현된 장면이었다. 그리고 덱스터는 친구도 가능하지만,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전이나 그 후로나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데 서툴었던 덱스터답게 장난스럽게 말이다. 자신도 모르게 엠마가 자기 마음속 깊이 자리했음을 모른 채 말이다.
나에게 영화 <원데이(One Day)>에서 가장 두 사람의 시간이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촬영지를 꼽으라면, 단연 '에든버러'라고 말할 것이다. 런던, 파리 등등 아름다운 장소가 많았지만, 영화의 시작과 끝을 채운 에든버러가 만드는 분위기의 힘이 있다. 시간의 무게가 깊이 내려앉은 도시는 두 배우의 연기만으로 채울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사랑을 상상하게 만들어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하는 풍광 대신, 차갑고 묵직한 도시 모습은 두 사람이 남긴 미묘한 사랑의 감정이 대비된다. 사실 영화에서 도시 자체가 부각되는 건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에든버러인지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칠고 투박한 에든버러는 두 사람의 시작점과 닮아 있었다. 친구와 연인 그 사이 중 이미 한쪽으로 기운 자신의 마음도 상대의 마음도 알지 못한 혹은 모른척한 두 사람과 말이다.
에든버러 올드타운을 걷고, 도시 곳곳을 걸으며, 난. 1988년 7월 15일의 무대로 '에든버러'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특히 칼튼 힐에 올라선 그 순간에 그 이유가 좀 더 분명해졌다. 시간의 무게가 묻어나며, 그 도시를 먼발치에서 관찰할 수 있는 언덕을 가진 이 도시가 무대라 다행이지 않았나 싶다.
세상을 통째로 바꾸는 게 아니라, 네 주변 일부분부터! 네 열정과 네 전동타자기를 가지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열심히, 음… 뭔가를 하는 거야. 예술로 삶을 바꾼다든지. 뭐 그런 거. 친구들을 소중히 아끼고, 원칙에 충실하며, 열정을 가지고 후회 없이 잘 사는 거.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기회가 닿으면. 사랑하고 사랑받고.
에든버러에서 보낸 단 하루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월터 스콧 경과 스코틀랜드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던 또 다른 모습도 있다. 하지만, 이 기록 속 나의 하루는 후회 없는 하루를 채운 순간순간이었다. 다가올 내일이 어떨지는 몰라도 행복했던 오늘이었다. 영화 <원데이> 속 엠마가 된 듯 에든버러를 걸었던 하루, 더없이 자유롭지 않았나 싶다. 별거 없이 여행하며, 중간중간 생각하고 싶은 대로 열심히 생각하고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음악을 들었던 그 하루가 참 좋았다.
참고도서
18세기 도시, 정병설 김수영·주경철 외, 문학동네 (2018)
원데이, 데이비드 니콜스, 호메로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