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첫 등교 날.
한국에서는 아직 유치원을 다니고 있을 아이가
머나먼 발리에 와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친구들이 아이 유치원 졸업식날, 초등학교 입학식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런 지고지순한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분명 내 MBTI는 F였는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간혹 “T세요?”라는 말을 듣곤 한다.
내가 T여서 그런 건지,
본게임이 아니라 예행연습처럼 느껴져서 그런 건지
친구들이 묘사하던 그 벅찬 감격이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염려는 되었다.
첫 등교를 앞두고 자려고 누웠는데
아이가 문득 말했다.
“내일 학교 갈 생각 하니까 떨려.”
‘떨린다’는 단어 하나에 얼마나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묻어있는 걸까?
처음이었다.
4살 때 이사를 가면서 어린이집을 옮길 때도,
유치원에 입학할 때도
아이는 떨린다던가 무섭다던가 그런 감정을
한 번도 내비친 적이 없다.
6살, 7살 새로운 반에 올라갈 때도
친한 친구들과 같은 반 하고 싶지 않아?라고 물었을 때
어차피 지나가다 만나니까 괜찮다고,
새로운 친구들 사귀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아이였다.
처음 발리에서 학교 다니는 거 어떠냐고 물었을 때도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좋아.”라고 대답했다.
너무 순순히 따라간다길래
되려 내가 불안해서 몇 번을 확인했다.
“너 지금 다니는 유치원도 그만둬야 해. 그럼 친구들과 헤어지는 거야.”
“알아. OO이랑 OO은 같은 초등학교 가니까 초등학교 가서 만날 수 있어.”
“발리 학교에서는 우리말을 쓸 수 없어. 다 영어로만 수업하고 선생님이랑 친구들과도 영어로만 말해야 해. 너 영어 못하는 데 괜찮아?”
“괜찮다니까.”
그래서 처음으로 내뱉은 ‘떨린다’는 그 말이
더 크게 마음에 와닿았다.
아이에게도 크나큰 도전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불안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새로운 환경에서
무던하게 적응해 나가는 아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아이도 마찬가지였는지, 떨린다는 말이 무색하게
금세 곯아떨어졌다.
그랩을 불러 학교로 이동했다.
이번주 도시락 메뉴를 고르고 유니폼을 구매하고
스쿨버스 일정을 얘기한 후 아이를 데리고
아이 반 앞으로 갔다.
클래스 리더라는 친구가 맨 앞에 서있고
그 친구를 마주 본 채 긴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리더에게 악수, 하이파이브, 허그 등 여러 방법으로
인사를 한 후 들어가는 듯했다.
아이 차례가 되자 담임 선생님이 영어로 설명해 주셨다.
긴장했는지, 얼음이 되어버린 아이.
얼떨결에 악수를 하고 교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처음으로 걱정이 되었다.
하교할 때 아이는 어떤 표정으로 나올까?
등교할 때 보니까 울며 들어가는 아이들도 있던데.
언제나 씩씩했던 아이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게 될까
순간순간 마음을 졸였다.
오후 3시에 맞춰 아이 반 앞으로 가서 기다렸다.
아이의 환한 얼굴을 보자마자 마음이 놓였다.
“학교 어땠어?”
“뭐 괜찮았어. 보통.”
그래놓고는 집에 와서는 진짜 좋았다고 말을 바꿨다.
교재도 없고 하루종일 점토, 운동 이런 것만 해서 재밌었다고, 선생님이 자기 그림보고 ”Beautiful”이라고 칭찬해 줬다고, 옆에 한국인 친구가 있었는데 영어를 정말 잘한다고, 신나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들어 댔다.
친구들이 영어로 어렵게 얘기해서 낄 수가 없었다길래,
그래서 속상했냐고 물었더니,
“난 혼자 노는 게 좋아서 괜찮아.”라고 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유치원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노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해마다 유독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주말에는 딱히 친구들을 찾지 않는다.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잡는 것도, 우리 집에 초대하는 것도 필요 없다고. 효자가 따로 없었다.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는 게 너무 어렵고 불편해서 아직까지 유치원 엄마 친구 하나 없는 나로서는, 아이 친구 엄마랑 약속을 잡는 게 정말 크나큰 스트레스였기에!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조금 더 말귀가 트이고 친구들이 친숙해지면
함께 어울릴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끝까지 친구가 안 생겨도,
아이 말대로 혼자서도 즐거운 아이니까
그냥 믿고 걱정 근심일랑 내려놓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