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줄무늬 파라솔이 바람에 들썩인다.
그 위로는 초록색 야자잎이 신바람 나게 펄럭인다.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 위로 하얀 파도가 철썩인다.
선베드에 누워 햇볕을 즐기기도 하고
소파베드에 앉아 나무 그늘과 바람의 콜라보를
만끽하기도 한다.
그러다 어떤 모습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빨간 비키니에 커다란 백팩을 멘 엄마와
흠뻑 젖은 채 타올로 몸을 말리며 따라 들어오는 아들.
역시 해변 앞 선베드에 자리를 잡았다.
와, 저거다!
빨간 비키니에 큼지막한 백팩이 왜 이렇게 힙하지?
당장이라도 따라 하고 싶을 만큼.
마음만큼은 저런 자유로움과 멋짐을 뽐내고 싶은데
현실은 바다에 들어갔다가 애를 어떻게 씻길까
수영복 속까지 달라붙은 모래를 어쩌지
걱정부터 드는 K-엄마다.
이 여행이 끝나기 전에 한 번쯤은 해볼 수 있을까?
일단 당장 아이콘 발리로 달려가 빨간색 비키니를 찾아봐야 하나, 큼지막한 백팩도 없는데, 이래저래 어렵다.
무엇보다 아이도 나도 모래가 묻으면 털어내기 바쁘다.
비록 나만의 fantasy로 남겨둬야겠지만
한량처럼 지내니 사람구경 하는 재미가 있다.
우리 숙소에 함께 지내는 호주 가족도 흥미롭다.
엄마와 아들 셋이 왔는데 첫째와 둘째는 초등학교 4-5학년쯤 돼 보이고 막내는 초1이나 됐으려나.
애들 있는 집은 어디나 비슷한가 보다.
매일 조식 오픈시간이 되자마자 나가는데
그 집도 항상 그때 나온다.
어제는 어딜 갔었는데 어땠다는 둥
오늘은 어딜 갈 거라는 둥
아줌마들의 수다가 시작된다.
엄마 혼자 아들 셋을 데리고 다니는데
뭐랄까, 전혀 힘을 들이지 않는 느낌이다.
우리는 아이 하나만 데리고 다녀도 전전긍긍 어쩔 줄을 모르는데 그 엄마는 노련한 지휘관 같다.
그게 호주와 우리의 육아방식의 차이 때문인지
아들 셋을 키워낸 그녀의 내공인지는 모르겠지만.
꾸따 비치워크쇼핑몰에 갔는데 오픈 전이라 계단에서
기다렸다. 어디 소속인지는 모르겠지만 명찰을 착용하신 아주머니들이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셨다.
우리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통하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통통한 볼살과 사라진 앞니 두 개!
유달리 앞니가 빠진 자리가 커서 웃을 때마다 조그마한 송곳니 두 개가 삐져나와 아기 도깨비 같다.
몇 살이냐 어디서 왔냐 물으면서
쑥스러워 웃는 아이의 송곳니가 삐죽 보일 때마다
귀엽다며 아이 볼을 너도나도 꼬집었다.
아이도 관심이 싫지 않았는지 발리에서 익힌 필살기를 보여주었다.
‘살라 마빠기.’
‘아빠 까발.‘
한 문장 한 문장 말할 때마다
앞니가 없어진 자리가 도드라졌고 아주머니들은 웃고 난리가 났다. 아이는 쐐기를 박고 싶었는지 자기가 배운 나머지 한 개가 뭐냐고 물어봤다.
’뜨리 마까시.‘
아주머니들은 아들 볼때기가 닳도록 꼬집으며 좋아했고 아들은 히죽히죽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시골 외갓집에서도 할머니 따라 마을 회관에 가서 동네 할매들의 예쁨을 한 몸에 받곤 했다. 그래서 유달리 할머니들에게 스스럼이 없는 아이. 발리 아주머니들을 보니 우리 시골 할매들이 떠올랐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