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 최고의 힙스터
오전에 Koa Shala에서 요가 한 시간 하고 마사지까지 받은 터라 지출이 좀 컸다. 내 마사지를 담당한 유리아씨의 나긋나긋한 화법에 넘어가 페이스 마사지까지 추가하는 바람에 예상보다 돈을 더 썼다. 여태까지 받은 마사지 중 가장 만족스러워서 돈이 아깝지는 않았으나 점심 비용을 좀 아낄 필요가 있었다.
저렴하게 밥을 먹으려면, 역시 나시 짬뿌르가 진리다.
Warung Kecil Infinity와 Warung Kecil 중에 고민하다 후자를 선택했다. 둘 다 도보로 걸리는 시간도 비슷했고 Warung Kecil Infinity에서 먹었던 점심이 더 만족스러웠으나 Warung Kecil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 중심가를 따라 일직선으로 쭉 뻗은 길을 따라 걸으면 되기 때문이다. 후기가 매우 좋은 곳인데, 뭔가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 까짓게 뭐라고, 그치만 왜 그럴 때 있잖아,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데 나는 별로 일 때, 한 번 더 시도해 보고 싶은 그런 도전 욕구.
12시에 방문했는데 가게에 테이블이 별로 없다 보니 어떤 노부부와 합석을 했다. 지난번과 똑같은 메뉴를 주문했는데 이상하다, 왜 더 맛있지? 달라진 거라곤 내 옆에 챙겨야 할 아들이 없다는 것과 지난번엔 못 봤던 여자 직원의 존재였다. 물론 아들이 없어서, 내 마음이 편해서 밥이 더 잘 들어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 본 그 여자 직원의 밝은 에너지가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또한 분명했다. 그녀가 활기찬 목소리로 모든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는 덕분에 주문하는 손님들 얼굴에 미소가 덩달아 떠올랐다. 심지어 지난번엔 시종일관 무표정이던 남자직원도 그녀 옆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남자직원과 대화하는 그녀의 밝은 목소리가 명랑하게 지저귀는 새소리 같았다. 음식 가판대 뒤에 서서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밥을 먹었다.
그때, 가게 안을 온통 환하게 만드는 그녀보다 더 내 눈을 한 번에 사로잡은 사람이 들어왔다.
빨간 비키니에 큰 백팩을 메고 해변 카페로 들어왔던 그 여자만큼이나 강렬한 등장이었다.
백발의 단발머리를 하고, 소녀 같은 미소를 띤 할머니가 백팩을 메고 한쪽 팔 엔 헬멧을 들고 들어왔다.
할머니와 헬멧이라니!
여행자들 중 젊은 남자, 젊은 여자, 중년 남자, 중년 여자, 그리고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걸 본 적은 있지만 할머니 라이더를 목격한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오토바이의 이미지와 잘 어울릴법한 강인함이나 히피스러움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되려 귀여움이 물씬 풍기는 친근한 할머니였다. 하지만 할머니가 한 손으로 헬멧을 들자 이 구역 최고의 힙스터가 되었다.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할머니가 옆테이블에 앉자마자 눈을 마주치고 물어봤다.
“Do you ride a bike?”
그렇다고 말하는 할머니 표정은 딱 말해 모해 그런 느낌이었다. 진심으로 경외심이 든 나머지,
”You are so cool!”이라고 엄지 척을 날렸다.
할머니는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는 듯, 으쓱해하시며 어제 롬복에서 왔다고 하셨다.
“It’s amazing!”이라고 놀라워하며 말했더니,
뭐, 천천히 달린다고 제스처를 해 보였다.
할머니 식사 편히 하시라고 더는 묻지 않았지만,
계산을 하고 나오며 할머니와 한 번 더 눈을 마주쳤다.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할머니께,
”Have a safe trip!”이라고 말하며 나왔다.
나는 죽었다 깨나도 바이크를 탈 일은 없을 것이다.
발리에서는 고젝이나 그랩 바이크가 훨씬 저렴하고 빨리 갈 수 있음에도 아직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 겁보라 그렇다. 그러함에도 라이더 할머니의 모습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성별, 나이, 타인의 시선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멋지다. 내가 본받고 싶은 건 그들의 구체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 이면에 흐르는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신념이다. 진심으로 할머니가 끝까지 안전하고 행복한 여행을 하시길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