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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Dec 12. 2024

미래 소년 코난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


우붓에 온 지 5일째.

아이는 이곳에서 새로운 학교에 다니고 있다.

Wood School.

이름처럼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이 모두 나무로 지어졌다. 아이들은 밤새 비가 내려 축축한 마당을 맨발로 뛰어다닌다.

학교 수영장에는 아이들의 수영복이 빗물을 맞으며 여기저기 걸려있다. 수영 수업은 월요일과 목요일이라고 들었는데, 아이 말로는 다들 그냥 물속으로 첨벙첨벙 뛰어든다고 했다.

매일 마당을 가로질러 신나게 뛰어다니다는 개들을 만나는데, 아들말로는 비를 피해 교실로 들어와 얌전히 앉아있을 때도 있다고 한다.

교실 건물 옆에 있는 닭장에서 울어대는 수탉의 우렁찬울음소리는 그다지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밖에 나갈 때마다 손소독제에 물티슈까지 싸들고 다니며 위생을 신경 쓰는 우리 K-엄마들에게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나도 행여 아들이 맨발로 뛰어다니다 발을 다치진 않을지, 벌레에 물리진 않을지 노파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사누르에서 다녔던 SIS는 체계적인 교육과정에 따라 운영되는 곳이라 아이가 앞으로 다니게 될 학교와 크게 다를 게 없는 곳이다. 영어를 사용하고 다른 국적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것 말고는. 반면 Wood School은 대안학교에 가깝다. 우리가 교실의 모습을 떠올리면 응당 있을 거라 생각하는 책상과 의자가 없다. 아이는 이 학교가 훨씬 좋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첫 번째는 아이스크림을 줘서, 두 번째는 공부는 1개나 2개 정도밖에 안 해서란다. 그럼 나머지 시간에는 뭐 하냐고 했더니 마당에 나가서 공 가지고 드리블도 하고 게임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고 했다. 무슨 공부를 하냐고 물었더니, 바다 쓰레기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아이에게 짓궂게 한 번 더 물었다.

“영어 못하는데 그게 바다 쓰레기 얘기인지 어떻게 알았어?”

“그거야 그림 보면 알지. 내가 그것도 모르겠어?”

교실에서 해양 오염에 대해 배운 아이들은 오늘 바닷가로 체험학습을 갔다. 해변가에 나뒹구는 쓰레기를 줍고 게임과 모래놀이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교실에서 글로 바다가 쓰레기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는 것보다 직접 현장에 가서 땀을 흘리며 쓰레기를 줍는 것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한 경험을 통해, 이 문제의 심각성을 머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공감하는 사람은 실생활에서도 환경을 위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종종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아이가 탐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들 키우는 부모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도대체 왜 아들은 난간만 보면 올가 가고 싶어 안달이 나는 걸까?

다칠까 봐 겁이 나는 건 엄마의 당연한 감정이다.

놀이터에서도 한시도 눈을 떼기가 힘들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말한다.

“하지 마. 위험해. 조심해야지.”

그러다가 한 번씩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다.

아이의 성장 욕구를 내가 막아서고 있는 건 아닐까.

발리에 와서 체조 수업을 보내고 새로운 환경의 학교에 보내면서 나의 불안을 조금 내려놓고 있는 중이다.

사실 체험학습을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속으론 이런저런 걱정이 들었다.

‘혹시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아이가 없어지면 어떡하지?’

하지만 매번 걱정된다는 이유로 아이가 새로운 걸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막을 수는 없기에, 혼자 떨어져 행동하지 않기, 선생님의 지시 없이 바다 들어가지 않기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에 대해 아이와 약속한 후 보내주었다.


어제 아이는 새롭게 Padel이라는 운동 레슨을 받았다.

라켓이나 동작이 테니스와 꽤 비슷했다.

아들은 탁구와 비슷하다고 우겼다.

대체 어디가?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아들은 테니스 경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탁구는 올림픽 때 TV 중계로 본 적이 있다.

파델은 더 높은 그물을 넘겨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탁구와 비슷하다는 자신의 논리를 펼치는 아들을 보며 성장한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지금껏 경험한 세계를 기준으로 보면 탁구가 Padel과 가장 유사한 종목일 테니까.

아이는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책을 통해 자기 세계를 끊임없이 넓히고 있다.

대화나 독서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것들을 체험하고 도전하는 게 이 긴 여행의 진짜 목적이지 않을까?

80일간의 여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목적이 모호했다. 아이가 실제 영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영어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지만, 이 시간 안에 아이의 영어 실력이 월등히 좋아지지 않을 거란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제야 비로소 명확하게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경험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도록 이곳에 온 것이라고.


책을 통해, 영상을 통해, 부모나 교사를 통해 배울 수도 있지만 경험을 통해 배운 지식은 머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에 각인되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뿐만 아니라 옳은 행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즐거움을 느낀 경험은 아이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체조수업을 5회 참여했어도 아이는 아직 물구나무서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파델 수업을 3-4회 한다고 해서 기술을 제대로 익힐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자꾸 아이에게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제안하는 이유는, 도전해서 느끼는 성취감과 즐거움의 경험이 앞으로의 선택에 밑바탕이 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어떤 아이들은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걸 해봤더니, 할 만하던데? 재밌던데?’이런 경험이 있는 아이는 선뜻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변화 앞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 앞에서 주저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과감하게 헤쳐나가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남들이 다하니까 따라 하는 사교육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에서 탐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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