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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희윤 Nov 19. 2022

일기승전결06 : 우리가 트렌디하지 못한 이유

상상도 못한 이유

지난 일이 년 간 개인적으로 가 봤거나, 가 볼 예정이었던 소위 핫한 곳들의 기록


우리가 트렌디하지 못한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우리가 트렌디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죠.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스스로 트렌디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논외로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관점은 대개 아래와 같습니다. 1)자신은 트렌드에 큰 관심이 없고, 2)무관심한 만큼 트렌드에 별 영향을 받지 않으며, 3)앞으로도 트렌드 없이 잘 살 것이라는 입장이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적어도 오늘날엔 그런 선택권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바지를 산다고 쳐요. 트렌드에 큰 관심이 없는 마당에 아카이브를 뒤져가며 빈티지를 구할 것도, 국내에 유통되지 않는 브랜드를 찾아 해외직구를 할 것도 아니죠. 대중적인 SPA·도메스틱 브랜드를 선택하거나, 소비력에 따라 컨템포러리 또는 하이엔드를 구입하겠죠. 그 브랜드가 어느 트렌드를 / 얼마나 빠르고 늦게 차용했느냐에 따라 바지 핏은 제각각이겠지만, 아마 공통적으로 굉장히 '트렌디'할 거에요.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지인의 손에 이끌려 50년 된 노포에 쭈그려서 밥을 먹고 있거나, 파인다이닝을 전전하며 엥겔 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욜로도 아닌데 정신을 차려보면 호캉스에 와있고, 골프장에서 스윙을 하거나 캠핑장에서 불멍을 하고 있죠. 취미는 또 어떤가요. 갑자기 모든 지인의 인스타에 전시, 공예, 필라테스, LP사진이 보입니다. 미래를 결정하는 재테크마저 그래요. 주식, 코인, 미술품, NFT.. 무엇을 선택하든 트렌드의 손바닥에서 벗어나긴 어렵습니다. 


이걸 깨닫고 몹시도 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 돈 쓰고 사는 내 인생인데, 저에게 선택권이 없었다는 게요. 정확히 말하면 주도권(지갑)을 순순히 내어줬던 거죠. 트렌드 따위 모르거나 대충 알아도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인데 말이죠. 가치소비를 해도 왜 가치있는지 알고 소비해야 가치가 있지, 모르면 그냥 플렉싱이잖아요. 똑같이 주식을 해도 평범한 개미가 기관을 절대 이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다는 책은 20년 전에 나왔는데, 깨닫는 데에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그 뒤로, 제 취향(이라고 불렀던 것들)과 감각(이라 착각했던 것들)을 모두 비웠습니다. 어설프게 스스로 트렌디하다고 여기는 순간 먹잇감(타겟)이 되는 시대이니까요. 먹는 것이든 입는 것이든 유행하는 라이프스타일이든, 우선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딱 한 걸음 떨어져서 관찰·기록하고, 평균적인 시선에서 딱 반 보만 앞서는 것을 목표로 삼고요.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보일 테고, 살아가면서/일을 하면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일단은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요. 모두가 트렌디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저는 트렌디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덧) 지도 아카이빙의 장점

1. 어느 동네를 가도 시간이 맞으면 한두 곳 둘러볼 수 있습니다. 지독한 길치라 지도를 끼고 살거든요.

2. 지역별 상권이나 아이템, 타겟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비슷한 건 늘 모이게 돼있으니까요.

3. 트랙킹이 가능합니다. 방문했던 곳들의 폐업/성업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는 만큼, 자신의 안목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_승전결

개인적인 기록도 타인에게 흥미로울 수 있기를 바라며, 기승전결이 있는 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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