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에 온 사람들은 우리를 포함한 외국인이 여섯 명, 파키스탄인 네 명이었다. 원래 이 투어는 독일어로만 진행이 되는데 이날 투어를 신청한 모두가 외국인이었다. 그래서인지 황급히 영어가 가능한 독일인이 호출된 것 같았고 파키스탄인 네 명 중 한 명은 독일어가 가능한 사람이었다. 원래 투어를 진행하는 분이 독일어로 말하면 영어로, 파키스탄 말로 각각 통역을 하는 방식으로 투어가 진행됐다.
176m 지하에서 끌어올린 미네랄워터
맥주를 만들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홉
파키스탄어, 독일어, 영어로 투어를 진행한 세분
그동안 가본 맥주공장은 일본에서 가본 기린, 산토리, 아사히 맥주공장 정도다. 다른 나라에도 이렇게 맥주 공장 투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일본은 말그대로 '공장'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특히나 작년에 나고야 기린 공장에 갔더니 전 공정을 가리고 있다가 설명할 때만 커튼을 걷어서 공개하는 형식이어서 뭘 그리 꽁꽁 숨기나 싶었었다. 설명하는 사람도 로봇 같이 정해진 말만 기계처럼 해서 오디오 가이드로 들어도 충분한 느낌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저 할아버지는 이 브루어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브루어리에 엄청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월드 베스트 비어"를 외쳐서, 통역하려던 젊은 독일남자가 민망한 듯 웃으면서 "월드 베스트 비어"를 다시 한번 반복했다. 동생이랑 둘이서 할아버지의 뻔뻔한 자랑에 웃고, 수줍게 전달하는 젊은 독일 남자의 모습에는 뭐 저렇게 귀엽냐고 감탄했다. 그는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성심성의껏 할아버지의 말을 전달해줬다. 우리가 영어를 좀 더 자유롭게 편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한마디라도 더 나누려고 궁금증을 쥐어짜서 질문을 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기에 열심히 리액션만 했다.
브루어리 투어 중 기대됐던 과정이었다. 바로 뽑아 마시는 영 비어! 거품만 피쳐로 한가득 받아서 걸러내고는 한잔씩 따라줬다. '신선하다'는 말은 딱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었다. 시원한 걸 넘어서서 신선하다는 느낌? 냉동실에 살짝 얼려 살얼음이 낀 맥주도 시원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리 맛있다고 명성이 자자한 맥주도 생산지에서 바로 뽑아내는 이 맥주와는 비교불가일 것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전 공정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오픈했다
아잉거는 국내에서 자주 보기 힘든 맥주다. 대형 마트에 가면 병맥으로 팔려나.독일 가기 전까지는 이 맥주를 몰랐기 때문에 모르겠다. 아잉거는 캔맥주를 생산하지 않는데, 캔과 플라스틱은 재활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리병은 5년에서 최대 10년까지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노 폴루션'이라고 했다. 맥주의 원료도 다 지역에서 나는 것들을 쓰고, 에너지도 거의 자가발전해서 쓴다. 정말 훌륭한 사상을 가지고 그걸 제대로 실천하는 기업의 모습이었다. 환경 때문에 캔맥주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조금 놀라웠다. 한국 돌아가서 아잉거 맥주가 보이면 볼 때마다 마시거나 사둬야겠다고 다짐했다.
한 시간 반이 넘게 공장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들었는데, 시간을 보고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나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친절한 설명과 친절한 독일인의 통역, 그리고 투어객들의 경청하는 태도. 모든게 잘 갖추어진 투어였다. 설명이 끝나고는 시음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가이드북에서는 총 15종의 맥주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시음할 수 있는 맥주는 총 여섯 가지였다. (Lager Hell, Jahrhundert Bier, Urweisse, Brauweisse, Kellerbier, Altbairisch Dunkel)
이 중에서 우리는 Kellerbier, Urweisse, Jahrhundert bier 세 가지를 맛봤다.
- Urweisse(Top-fermented, dark wheat beerl alcohol content: 5.8%, original wort: 13.3)
- Jahrhundert bier(Bottom-fermented, bright export beer; alcohol content: 5.5% original wort: 12.8)
에딩거 브루어리와는 달리 따로 제공되는 안주는 없었다. 그부분은 조금 아쉽지만 정말 오로지 맥주 맛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하자. 통역해준 남자가 먼저 떠나기 전에 인사를 하면서, 근처에 여기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있으니 거기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맥주를 더 즐기라는 말을 했다. 안 그래도 투어 시작 전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봐 뒀던 곳이었다. 한적하게 맥주 한잔 하며 식사하기 좋을 것 같았다. 투어가 끝나자마자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가서 맥주와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같이 투어에 참여했던 인원들이 차례로 다 와서 서로 반가워했다.
셀러브레이터는 복비어의 일종인데 복비어는 맥주를 얼려서 얼음을 걷어내고 남은 엑기스를 다시 얼려서 또 얼음을 걷어내는 과정을 반복해서 만든 맥주다. 그래서 알콜 도수가 높은 것은 20%도 넘어가는데, 이건 6.7%였다. 얼핏 보면 그냥 흑맥주 색깔이네 싶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루비 빛깔을 띄었다. 견과류와 카라멜향이 감돌았다. 디저트비어라고 소개하고 있기도 했고, 무슨 상을 받은 유명한 맥주인 듯했다. 맛이 강해서 식사와 함께하기보다는 디저트비어 라는 소개에 맞게 그냥 맥주 자체만 즐기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바이젠은 바나나향이 훅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향긋한 신맛도 많이 났다. 동생은 독일에서 마신 바이젠 중 파울러너 바이젠이 제일 맛있었다고 했는데, 나는 아잉거 바이젠이 제일 맛있었다.
'자이언트 슈니첼'이 유명하다고 해서 그걸 시켰다. 남산 왕돈까스 크기 정도 되는구나 싶었다. 왕돈까스에 비해 튀김옷이 두껍지 않아서 덜 부담스러웠다. 소스에 흠뻑 젖어 나오지 않아서 더 좋았다. 여기서도 딸기잼을 같이 내주었다. 독일에서 딸기잼을 생각보다 자주 먹었어서 딸기잼을 한 병 사오기도 했는데, 돈까스 먹을 때 꼭 같이 찍어먹어 봐야겠다. 맥주 가격도 3.3유로(셀러브레이터는 3.5유로)로 뮌헨 시내에 비해 1유로는 더 쌌다. 뮌헨에서 맥주 마실 때 500ml에 4유로를 넘길래 맥주의 본고장도 맥주가 그렇게 싸진 않네 했는데, 3.3유로라고 해서 5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이렇게 맛있는 맥주를 마실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프레즐도 하나 시켰다. 독일에서 맥주 마시면서 프레즐 참 많이 먹었는데, 여기 프레즐이 제일 맛있었던 기억이다. 겉이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고. 저 소금을 떼지 않아도 많이 짜다는 느낌도 안 들었다.
아잉거 브루어리에서 생산된 맥주는 좋은 원료를 바탕으로 지역.환경친화적이며 자신들의 맥주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맥주다. 세상에 더 맛있고 훌륭한 맥주들이 많겠지만, 직접 만드는 사람이 자부심을 가지고 만드는 맥주라면, '월드 베스트 비어'라고 칭해도 아깝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비록 4만5천원을 공중에 날려버렸지만, 에딩거가 아닌 아잉거 브루어리에 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아잉이라는 조용한 동네에서 아잉거 맥주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어서 말이다. 아잉거 바이젠 맥주가 벌써 그리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