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은 첫 학기 플랫 메이트이다. 늘 활짝 웃는 얼굴로 건강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그린 핑거답게 아보카도 씨앗을 발아시켜 잎을 틔우고, 부엌을 초록 식물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만든다. 미세플라스틱과 기후 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체감하며 무언가 행동으로 실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 캐럴의 글이 올라왔다. 앞으로는 가급적 석유화학 성분이 들어간 옷을 사지 않고, 채식을 실천하려 한다는 선언이었다. 공언을 통해 실천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3년의 학부 과정을 한 학기 당겨 조기 졸업한 후, 오슬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했다. 모든 게 낯설었던 오슬로에서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플랫을 만든 일등 공신이었던 캐럴에게 그간 정이 많이 들었었나 보다. 그 후,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소식만 알 뿐 따로 연락은 주고받지 않았다. 생일 초대는 5월 학기 중이라 가지 못했다. 사실 현지인들 사이에 떠듬거리는 영어로 어색하고 뻘쭘하게 있을 내 모습이 머릿속에 선연했기에 갈 생각아 아예 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그 해 여름 스페인 까미노를 걷고 있을 때, 또 한 번 초대 메시지를 받았다. 진심으로 초대한다는 생각이 들어 불쑥 가겠다고 답해버렸다. ‘쏭, 언제든 환영해. 내 고향으로 와.’라는 스치듯 했던 지난 약속을 기어코 실현시키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까미노 순례길에서 돌아오자마자, 캐럴의 고향으로 향했다. 근무 중인 그녀를 대신해 공항으로 마중 나온 엄마 루네와 아홉 살 동생 샌빅을 만났다. 동네 명승지에 들러 바다 풍경을 보고, 인근 바이킹 유적지에 갔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과 사람들, 이런 식의 환대가 어색하기도 하지만 고맙기 그지없다. 수줍은 듯 담백하다. 오빠 잰스, 친구 이네, 파트너 빅터의 할머니 메타, 빅터의 고모 캐서린 등 캐럴을 통해 많은 인연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만난 노르웨이 인들을 합친 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소개받은 셈이다.
유학생들은 대부분 유학생 그룹과 어울리게 된다. 현지 로컬과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 내게 캐럴의 가족과 친구들은 노르웨이에 대한 생생함 몰입을 맛보게 해 주었다. 인연을 쉽게 맺지는 않지만 한 번 맺어진 인연에 대해서는 각별한 노력과 애정을 발휘한다는 노르웨이 사람들을 알게 되어 기쁘다. 캐럴이 쏘아 올린 인연의 공이 점점 더 큰 세계로 나를 데려다준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캐럴은 철마다 안부 문자를 보내온다. 내겐 참으로 귀한 인연이다. 긴 겨울과 극야는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소중하게 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준다. 외로움과 무료함을 채워주는 건 결국 사람을 통한 애정과 온기라는 걸 몸소 체험하게 된다. 만남만이 고위도 극지방의 척박한 환경을 녹여준다.